동네 생활, 산책

by 고양이삼거리

며칠 전에는 날이 따뜻하고 햇살 좋은 때, 이사 와서 처음으로 혼자 산책을 했다. 장 보러 가거나 카페에 가거나 어딘가로 가는 일 없이 혼자 거리로, 산길로 나섰다는 건 이제 여유가 생겼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건조하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고, 봄 비도 내리고 있다. 오늘은 경칩이고 학교는 개강하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오랜만에

혼자, (익숙한)

거리를

걸었다.


주말이어서 산 아래 둘레길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이 순간을 위해서 이 동네로 이사를 했다. 원래 가려던 지점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한 구역 아래, 어쩌면 생활은 조금 더 편리한, (특징이라면) 빌라촌으로 이사를 왔다. 사실 이곳은 전혀 선택지에 있지 않았었고, 10여 년 전, 한창 작은 단독주택들 한 두 채씩 사들여 새로 짓는 현장들로 온 동네가 공사 중인 듯한 인상의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빌라촌' 이미지를 가진 곳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지을 곳은 다 지은 것인지 공사들은 마무리되었고 동네는 안정기에 들어선 것 같다. 반대로, 우리가 살던 동네는 주변환경과 집들이 어우러져 초등학교, 중학교를 하나의 생활권에서 보내기에 딱 좋은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구역이었는데, (물론 빌라 공사는 여기저기에서 벌어졌다.) 몇 년 지난 후의 일일 테지만,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곳곳에 늘어난 현수막들과 더 이상 지어지지 않고 중단된 공사장, 빈 집들이 동네 분위기를 미묘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이사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사를 하고 보면 자라는 생활을 따라가며 필요한 변화들을 때맞춰 잘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셋이 같이 잠자던 가장 아늑하고 햇살 좋은 곳을 r이 자라면서 그의 공간으로 한 칸 내주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 여럿이 놀러 와도 여유로운 큰 방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적정한 도시 생활권이면서 산에 가까워졌는데 전보다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서 학교 통학하기에도 크게 불편함은 없는 것 같다. 집은 이전 글에서 몇몇을 투덜거린 부분이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연식이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단열도 잘 되고 깔끔한 마감들 가진, 특별히 다시 손볼 곳은 없는, 손 덜 가는 편한 집이다.


삼거리 살 적에 나는 그 동네와 집을 무척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사하면 잃어버릴 것들을 아쉬워하곤 했고 그래서 멀리 가지 않고 근처로 옮기기도 했었는데, 이제 금세, 그런 생각은 옅어 저 가고 새로운 동네에 적응했다.


첫인상은 물러갔고, 이건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유형의 주거이고 반쯤 아는 동네였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고 관찰하는 것은 의미 있다. 오래된 주택가 상권 유지가 잘되어 있어서, 시장, 큰 마트, 식당, 카페, 치킨 피자집들이 이용하기 편하고 어수선한 큰 길가 외관과 다르게 한 겹 안으로 들어오면 조용하다. 경계는 시끄럽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낮은 주택가가 이어지는 본체는, 뭐, 대부분 흔히 말하는 집장사 집의 외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면면이 보면 차이를 가진 것들이고 따져보면 의도가 드러난다. 남은 단독주택들도 있고, 꽤 괜찮은 건물도 종종 눈에 띄므로 오르내리고 휘어지며 이 길 저길이 도로를 따라 반듯이 가다가 좁아지고 꺾이고 없어지는 옛 동네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들어서서 옥상에 올라가면 훤하게 잘 보인다. 우리 집을 비롯한 비슷한 연식의 빌라들은 옥상을 비교적 깔끔하게 만들어놓은 것 같다. 빨래 널기에, 행성행렬을 맞이하기에, 달맞이하기에 좋았다.


작은 그룹으로 모인 한 건물 안 작은 생활권에 관리사무실의 관리가 없지만 중요한 일은 반장님 제안의 반상회를 통해 가볍게 관리가 되고 있고, 1층 공용현관 앞이 소통의 장으로 공지사항이나 계단 청소일, 관리비 납부현황이 부지런히 때맞춰 업데이트된다. 공용공간이 각자에게 맡겨진 것보다 이렇게 소정의 관리비를 내고 주기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편하다. 반장님이 월요일마다 정리하시는 재활용 구역은 아주 깔끔하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이상한 구석도 없다. 적당하게 지킬 것은 지키는 것 같다. 방송이나 안내가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공지 없이 관리가 느슨하니까 피로도가 내려간다. 1층 필로티 주차도 무리가 없다, 방식이 가볍고 무난하게 정리된다.


다만 더 좋은 집과 동네를 만들 수 있는 설계의 여지는 지금 논외로 하자. 규칙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햇빛이 안 드는 세대들도 눈에 많이 띄고 얼토당토않은 모습을 많이 목격한다. 그런 집은 거래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게 피로함이라면 피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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