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난 홍합탕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3요소는 걷기, 보기, 먹기다. 물론 돈이 넘쳐나는 여행자라면 고급스러운 숙소도 잡고 각종 액티비티도 사수할 테다. 하지만 나는 고작 반년치의 아르바이트 급여를 가지고 유럽에 도착한 학생이었다. 게다가 그 돈은 남은 6개월간의 교환학생 생활비로 써야 하는 돈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여행은 ‘최저가’를 지향했다. 가난한 여행자들이 으레 그렇듯, 숙소비를 아끼는 데는 도가 텄다. 16인 혼성 호스텔, 야간 버스, 혹은 공항 노숙 등등.
걷기에는 돈이 들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깨나 유명한 길치인 나는 목적지 없이 현지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가 없기에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걷다 보면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도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카페나 벤치를 발견하면 자리를 잡고 글을 썼다. 그중 일부는 이 책에 실리게 됐다. 그러니까 이 글들은 유럽에서 얻은 종아리 알과 맞바꾼 글인 셈이다. 아낀 숙소비의 90%는 먹는 데 썼다. 나머지 10%는 돈을 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에 썼다.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입장료 따위였다.
한 마디로 잘 먹고 잘 돌아다녔다는 말이다. 덕분에 각각의 여행지는 눈 감으면 떠오르는 풍부한 맛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그중 벨기에는 군것질을 좋아하는 나에게 최적인 곳이었다. 초콜릿 가게가 보일 때마다 작은 사치를 즐겼다. 브뤼셀의 초콜릿 가게에는 유난히 내 또래의 직원이 많았다. 그들은 알코올이 함유된 초콜릿, 과일이 첨가된 초콜릿, 견과류가 들어간 초콜릿 중 나의 선호를 묻곤 했다. 그리곤 초콜릿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맛이라며 초콜릿을 담아주던 직원도, 출근 첫날이라며 긴장하던 직원도 있었다. 욕심껏 구매한 초콜릿을 입 안에 굴리며 거리를 걷다 보면 새삼스레 행복해졌다. 그러다 줄이 긴 감자튀김 가게나 와플 가게를 보면 어김없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군것질을 사랑하는 나지만, 초콜릿과 와플만으로 끼니를 때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어느 점심엔 벨기에식 홍합탕, 뮬(Moules)을 먹기로 했다. 사실 나는 홍합을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다. 짬뽕을 먹을 때면 홍합을 아빠와 동생에게 덜어주기 바빴다. 그렇다고 벨기에의 대표음식을 맛볼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홍합탕을 주문했다. 안전한 메뉴로 바꿀까, 잠시 고민했지만 ‘최고의 메뉴 선정’이라고 치켜세우던 사장님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잠시 후 내 눈 앞에 서비스 바게트와 홍합탕이 놓였다. 냄비에 담긴 홍합은 가득 차다 못해 넘칠 듯했다. 포크를 들어 조심스럽게 홍합 살을 맛보는데, 어라? 맛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홍합 특유의 비린 맛 대신 달달한 감칠맛이 그 자리를 채웠다.
한참 홍합 살을 포크로 빼먹는데 몰두하고 있던 와중, 두 테이블 건너 앉아있던 중년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홍합은 포크로 먹으면 안 된다고, 홍합 껍데기를 집게처럼 사용해 살을 골라 먹어야 정석이라는 것이었다. ‘껍데기를 집게처럼?’ 갸우뚱하는 나를 보던 할아버지는 직접 시범까지 보였다. 우리나라가 게딱지를 그릇처럼 사용해 밥을 비벼 먹듯, 벨기에에서는 홍합 껍데기를 포크 삼아 홍합탕을 먹었다. 예상치 못하게 배운 현지인의 방법이었다.
홍합을 다 건져낼 무렵 뽀얀 국물이 나왔다. 파슬리와 샐러리가 송송 들어가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이국적인 모습이었지만, 시원한 맛은 묘하게 한국을 떠올리게 했다. 오랜만에 먹는 국물 요리라 더 애틋했는지도 모른다. 국물을 떠먹고 싶어 스푼을 부탁했다.
“때로 스푼으로 먹는 건 홍합탕을 먹는 최고의 방법이지!”
할아버지는 영화에 나올 것만 같은 대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맛있게 먹으라며 윙크하더니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졌다. 지금도 가끔 그 날의 홍합탕이 생각난다. 홍합탕이 떠오를 때면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도 동시에 떠올라 괜스레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