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변에 자리한 하목정은 조선의 내로라는 시인묵객들이 찾던 명소다. 지금도 멋과 운치 좀 안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조선시대 못지않게 줄을 잇는다. ‘하목’은 ‘붉은 노을 속에 날아가는 따오기’라는 수채화 같은 이름이다. 현판 글씨는 인조의 어필이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으면 인조가 감탄했던 풍광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낙동강에 철새가 날고, 정자를 둘러싼 배롱나무는 눈부시게 붉다. 새벽에는 물안개가 피고, 저녁이면 노을이 감싼다.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하목정의 절경 앞에 앉으면 시간은 하염없다.
400년 된 배롱나무꽃이 장관이다
으뜸으로 꼽히는 전국 백일홍 명소
대구 달성군에는 빼어난 보물들이 수두룩하다.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된 도동서원의 강당과 담장을 비롯해 육신사의 태고정, 현풍 석빙고, 용연사 금강계단과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달성의 자랑거리다. 그중에 2019년 보물 제2053호로 승격한 하목정은 아름다운 경관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대나무숲 병풍처럼 두르고 낙동강 유유히 흐르는 명당
하목정이 자리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는 강가라는 뜻의 하빈면 그리고 노을에 물든 산이라는 뜻의 하산리라 이름만큼이나 강과 산이 멋진 마을이다. 대숲이 우거진 동산에 기대어 옆으로 낙동강이 넉넉하게 흐르는 하목정 자리는 동네에서도 풍광이 첫손에 든다. ‘붉은 노을 속에 날아가는 따오기’라는 하목의 뜻처럼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오르게 한다.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하목정 대청에 커다란 배롱나무 꽃 액자가 걸린 듯 눈을 뗄 수가 없다.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대청 판문의 사각 프레임 너머 진분홍빛 배롱나무 꽃이 가득하다. 그제야 넓은 대청마루가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 켜켜이 머금은 채 사방으로 풍경을 끌어안았다. 북쪽은 동산의 대숲을 마주하고, 동쪽에는 아늑한 방을 품었다. 남쪽으로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대문을 향하고, 서쪽에는 낙동강이 넉넉히 펼쳐진다.
보물로 지정된 하목정
대청 판문은 배롱나무 꽃 액자
뜰에는 400년 된 배롱나무 여러 그루가 여름이면 장관을 이룬다. 배롱나무꽃은 여름꽃이다. 꽃이 100일 동안 핀다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7월부터 9월까지 백일 동안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더위를 달래준다. 하목정은 배롱나무꽃으로 꽤 유명하다. 진분홍꽃이 정자와 어우러져 말 그대로 꽃대궐을 이룬다. 진분홍꽃 너머 낙동강 노을이 붉게 물 드는 여름날 풍경은 으뜸이다. 세상 시름 다 잊고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좋을 풍경이다.
진분홍 꽃대궐
인조의 아픔까지 어루만진 하목정의 풍광
하목정의 역사는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조 37년인 1604년에 낙포 이종문이 지은 정자다. 이종문은 문과 무를 가리지 않고 두각을 나타낸 뛰어난 인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책을 놓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부친 이경두, 아우 종택과 함께 의병장 곽재우 장군을 도왔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 공로로 원종공신에 녹훈됐다. 달성 하빈면 하산리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이 끝나자 자신의 서재를 중건해 하목정을 세웠다. 사헌부 감찰과 군위현감을 두루 거친 뒤 고향에 돌아와 하목정에서 여생을 보냈다.
인조의 어필
하목정 처마 아래 ‘하목당’ 편액이 눈에 띈다. 글씨는 인조의 어필이다. 능양군 시절의 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경치에 반해 하목정에서 유숙했다. 당시 배다른 형재 광해군이 왕이었다. 미쳐가던 광해군에게 동생 능창군이 누명으로 죽고, 아버지마저 홧병으로 잃었다. 하목정의 아름다운 석양과 유유히 날던 철새가 그의 마음을 어루만졌을까.
인조의 어명으로 단 부연지붕이 유난히 아름답다
당대 시인묵객들이 남긴 시판이 빼곡하다
훗날 이종문의 아들 지영이 벼슬에 올라 대궐에서 인조와 마주쳤다. 인조는 그때 일을 잊지 않고 하목당 편액을 내리고, 부연을 달도록 내탕금을 하사하였다. 부연은 원형의 서까래 위에 올린 사각형의 서까래로 웅장한 지붕이 집을 돋보이도록 한다. 왕궁에서나 할 수 있는 부연을 사가에 달 수 있도록 왕명을 내린 것이다.
인조가 편액을 하사한 이후 조선의 내로라하는 시인묵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내부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명인들의 시액이 걸려 있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과 현종 대 문인인 정두경, 이덕형을 포함해 당대의 이름 높은 선비들이 앞 다투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
하목정 앞에 펼쳐진 낙동강 풍경
‘강 물줄기와 산세가 길게 뻗었는데/ 멀리 펼쳐진 들판의 아름다움 그리기도 어렵구나./ 새벽안개와 연기와 섞여 물가에 잠겨 있고/ 저녁 석양빛은 강물 위에 출렁이네.’ 이덕형이 하목정에서 본 풍경이다.
하목정 뒤 언덕 위로 보이는 사당은 지영의 증손인 전양군 익필을 제향하는 곳이다. 익필은 영조 4년 이인좌 난을 토벌해 분무 3등공신에 올랐다. 사당에 그의 영정을 모시고 불천위로 정해 영원히 제사를 지낸다.
여행팁
하목정
주소 : 대구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길 56-10
문의 : 053-668-2481~3(달성군 관광과)
하목정은 연중 개방되며 무료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사철 아름다운 정자지만, 하목정의 진가는 여름이다.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진다. 400년 된 우람한 배롱나무들이 오랜 정자를 둘러싼 모습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배롱나무 꽃이 피면 곳곳이 인생샷 포인트다. 첫 번째는 뜰에 커다란 배롱나무 아래 놓인 통나무의자. 여기 앉아 찍으면 누구라도 SNS 인기스타가 된다. 두 번째는 하목정 뒤에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계단에 서면 머리 위로 배롱나무꽃이 구름처럼 펼쳐진다. 가장 눙요 포인트는 대청 판문이다. 대청 앞에서 판문을 향해 셔터를 누르면 배롱나무 꽃으로 가득한 액자를 담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