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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유은영 Jan 13. 2022

다산의 매력과 강진의 자연에 스며들다

강진 정약용남도유배길2코스

처음 강진에 반한 건 산과 바다였다. 월출산 능선과 가우도 바다는 가슴을 뛰게 했다. 그 후에 천년고찰 무위사와 월남사지를 알게 되었고, 백운동별서정원과 전라병영성 등 유서 깊은 강진을 만났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것은 다산 정약용이었다. 다산의 유배지였던 강진에는 그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작고 초라한 주막 사의재에서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식음을 전패하고 밤낮이 바뀌는 줄도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모가 호통을 쳤다. ‘어찌 그리 삶을 헛되이 살려하시나!’ 그 뒤로 정약용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열정적으로 후학을 가르쳤고, 수많은 저서를 남기게 되었다. 

반복된 일상에서 지치고 힘겨울 때면 사의재가 떠오른다. 삭막한 겨울의 길목, 따듯하게 호통쳐줄 목소리가 그리울 때면 강진으로 떠난다. 정약용남도유배길은 다산의 자취를 더듬으며 내 삶을 돌아보고 싶을 때 생각나는 길이다.

‘어찌 그리 삶을 헛되이 살려하시나!’ 다산을 꾸짖었던 사의재 주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정약용남도유배길은 다산의 발자취를 따라 강진의 역사와 자연을 엮어 만든 길이다. 특히 2코스‘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은 다산박물관에서 영랑생가까지 15km다. 다산이 머물렀던 다산초당을 비롯해 그가 벗을 만나기 위해 걷던 오솔길, 실의에 빠진 그를 구한 사의재 등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정이다. 백련사 동백숲, 강진만 철새도래지를 품고 있다. 강진의 평화로운 들과 아늑한 바다와 정겨운 마을이 어우러진 길이며 그 속에 역사와 삶과 시가 녹아 있다.

전체지도에는 2코스 시작점이 다산수련원으로 나오지만, 지금 그 자리에는 다산수련원 대신 전라남도인재개발원이 들어서 있다. 1코스에서 이어 걷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산박물관을 시작점으로 잡도록 권한다. 다산박물관은 정약용의 삶과 그가 집대성한 실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의 시간들과 명소들을 한눈에 보게 된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이 그의 승하를 애통해 하며 지은 시와 그의 친필 저서들이 눈길을 끈다. 정조의 어명을 받은 정약용이 설계하고 감독하여 2년 만에 지은 수원화성과 그가 발명한 거중기도 전시되어 있다. 


다산박물관을 나서 다산초당길을 따라 1km 남짓 걸으면 다산초당 입구다.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길이 끝나고 숲길이 시작된다. 햇빛 한줌 들어오기 힘든 어둑한 숲길로 들어서면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발밑에는 나무뿌리들이 울퉁불퉁 드러나 있다. 정호승 시인이 ‘뿌리의 길’이라 이름지은 길이다. 비바람에 씻기고 발에 밟히면서도 굳건히 뻗어가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며 한걸음씩 오르다보면 다산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산초당은 다산이 강진에 유배되어 있던 18년 중에 가장 오랜 기간인 11년을 지낸 곳이다.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장소이며, <목민심서>를 비롯해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그의 유명한 저서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책을 집필하고, 학문을 가르치는 학자의 시간만을 보낸 건 아니다.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우고, 약천의 맑은 물을 길어 차를 즐기는 낭만주의자였다.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스린 다산초당 앞에는 넓적한 바위가 있다. 그가 차를 끓이던 ‘다조’다. 약천의 물을 떠다 솔방울로 불을 피워 찻물을 끓였다. ‘다조’와 함께 ‘정석’이라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손수 꾸민 연못의 ‘연지석가산’은 다산초당 4경으로 불린다. 그의 낭만을 엿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연지석가산을 품은 연못을 지나면 그가 손님들을 맞이하던 동암이 서 있고, 그 옆 언덕 위로 천일각이 기다린다. 천일각에 오르면 강진만이 아련히 내려다보인다. 다산초당에서 유일하게 탁 트인 풍경을 조망하는 곳이다. 정약용이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 주었을 풍경이라 짐작해본다.

천일각을 지나면 백련사로 향하는 오솔길이 이어진다. 홀로 사색하며 걷기 좋은 호젓한 이 길은 다산이 벗을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산길이다. 유배 생활로 외로운 그였지만, 마음을 나누던 벗이 있었다. 바로 백련사의 혜장스님이다. 두 사람은 학문을 토론하고, 차를 나누고, 밤늦도록 시를 지었다 한다. 벗을 만나러 갈 때 기쁨에 겨웠을 그의 걸음이 고스란히 베여있다. 


백련사에 이르기 직전 야생차밭과 동백숲이 맞이한다. 백련사 동백숲은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수령 400년이 넘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빼곡히 모여 있다. 동백꽃은 12월부터 하나둘 피기 시작해 3월이면 숲을 붉게 물들인다. 꽃이 떨어지는 3월말과 4월초에는 땅에 붉은 융단이 깔린 듯 황홀하다.

푸른 숲에 빨간 꽃이 톡톡 터지는 동백숲을 나서면 백련사가 기다린다.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 백련사는 천년고찰의 품격이 전해진다. 특히 만경루에 오르면 창 넘어 남도의 들과 바다가 그림처럼 걸린다. 


지금까지는 다산의 숨결이 깊이 느껴졌다면, 이제부터는 강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볼 차례다. 백련사에서 찻길을 따라 내려오면 신평마을을 지난다. 드넓은 논밭과 그 너머 어우러진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 너무나 평화롭다. 하염없이 걷고 싶은 신평마을을 지나면 강진만이 반긴다. 


강진만을 옆에 끼고 이어지는 길은 강진남포자전거도로다. 3.5km나 일자로 곧게 뻗어있다. 광활한 바다와 갯벌 그리고 억새군락지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을 선사한다. 갯벌도래지에는 무리지어 날갯짓을 하거나 먹이를 찾는 철새들과 군무를 펼치며 날아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남포마을이 가까워지면 강진만생태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20만평의 갈대군락지와 수많은 철새들이 장관을 이룬다. 


남포다리를 건너 남포마을, 목리마을을 거쳐 강진읍으로 들어선다. 아늑하고 정겨운 시골도시의 풍경을 따라 걷다보면 강진오일장이 나타난다. 4일 9일에 장이 서는 강진오일장은 강진오감통으로 유명하다. 음악창작소, 먹거리장터, 한정식체험관, 야외공연장, 특산물판매장 등 즐길거리가 많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강진오일장에서 사의재가 지척이다. 사의재는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와 처음 기거했던 곳으로 1801년 겨울부터 4년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허투루 살지 말라 호통을 쳤던 주모의 동상이 사의재 앞을 지키고 있다. 사의재는 네 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생각을 맑게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무겁게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주막에는 다산이 즐겨 먹던 아욱국을 판다. 지친 걸음을 멈추고 먹는 담백한 아욱국 맛이 일품이다. 


2코스는 영랑생가에서 끝난다. 영랑 김윤식이 살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의 시가 새겨진 바위가 집안 구석구석 서 있다. 모란 옆에서 은행나무 아래에서 그의 시를 감상하며 2코스를 마무리 한다. 영랑생가 주변에 있는 시문학파기념관과 세계모란공원은 함께 둘러봐야 할 명소들이다.  


여행팁   

정약용 남도유배길 2코스는 15km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지여서 걷기가 쉽다.

식당은 길의 마지막 부분인 강진오일장과 사의재까지 가야 있으니, 간식과 물을 넉넉하게 챙기는 것이 좋다. 

 동백이 피는 겨울여행지로 좋은 코스다.    

마을을 지날 때는 이동하는 차량에 유의하여야 한다.

사의재에는 저작거리가 조성되어 주말이면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공연도 열리고, 한옥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는 한옥체험관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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