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8배 글쓰기 59일째] 카뮈 <페스트> 연대와 희망

n번방 사건과 코로나 19 사태를 통한 연대에 대한 고찰

모든 쿵푸의 고수가 도달해야 할 정점은 이너피스(inner peace, 내면의 평화)야.

어떤 이는 50년 명상해, 이런 자세로!

너 아닌 내 안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자

내면의 평화와 우주의 흐름에 통달했지.

- <쿵푸팬더 2> 시푸 사부


오늘은 108배를 하면서 “이너피스”를 계속 되뇌었다.

며칠 동안 마음이 너무 어지럽고 힘들어

내면의 평화, 내장의 평화가 필요하다.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매일 우울한 뉴스를 들여다보는 게 힘들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194×년 알제리 북부 오랑시에서 일어난 페스트의 공포 속에서 카뮈는 보통 사람들의 연대가 페스트를 이길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페스트라는 위기 속에서 연대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전갈자리-물병자리 알베르 카뮈


그 광경은 마치 우리들의 집이 서 있는 바로 그 땅이 곧 속으로 곪아 있던 고름을 내뿜으며,

여태까지 그 내부에서 곪고 있던 응어리와 피고름을 흘러나오게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며 80년 전 오랑 시의 모습이 어쩌면 2020년 현재 우리의 모습과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가 놀랍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 언론의 숫자 놀음과 가짜 뉴스, 종교 단체의 어처구니없는 설교, 완전무결한 죽음의 평등 앞에서도 기회를 잡아 한 몫 챙기는 밀수꾼과 업자들...


코타르는 진짜건 가짜건 역병에 관한 화제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페스트 증세가 나타나 머리가 이상해진 어떤 남자가

어느 날 아침 중심가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달려들어 꽉 껴안으면서

자기는 페스트에 걸렸다고 외쳤다는 것이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끌어안고 “나는 코로나다” 외쳤다는 인터넷 뉴스와 판박이의 잡소리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위협은 사람들을 불안에 빠지게 하고 혼란에 빠뜨린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내가 병에 걸릴 수 있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처럼 무서운 게 있을까? 그러나 카뮈는 그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역할을 넘어 타인을 돕는 마음과 연대와 희망이 페스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실은 나도 저 사람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서로 도와야지요.”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조제프 그랑의 말


의사로서 환자 살리기에 적극 나서는 리외, 타지에서 왔으나 민간 보건대를 조직해 앞장서는 타루, 시청 말단 서기로 그나마 임시직이지만 페스트의 통계를 정확히 추산하는 그랑, 종교인으로서 강론을 하는 한편 보건대에서 전염병을 물리치는 데 헌신하는 파늘루 신부까지... 그들은 목숨을 걸고 페스트의 최전선에서 환자의 치료에 전념한다.


호시탐탐 탈출의 기회만 노리던 신문 기자, 랑베르도 탈출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보건대와 함께 한다.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그러나 혼자만 행복해지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나는 늘 이 도시와 그리고 여러분들과 나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이제는 볼 것을 다 보고 나니

나는 싫건 좋건 간에 이 도시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들 전체에 관계되는 일이죠.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랑베르의 말


기사나 쓰려고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며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파리에 가기 위해 불법적인 탈출을 시도하던 랑베르. 그는 리외와 타루 등을 중심으로 한 보건대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연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다.


아마도 코로나 19 사태는 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혼란이 될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입버릇처럼 “625 전쟁은 난리도 아니야. 난리 난리 이런 난리가 없어”라고 하신다. 625 전쟁을 직접 겪었고 그때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전쟁은 분명한 적이 있고, 옆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은 주변 사람까지 의심하게 하고, 환자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도 되는 냥 미워하게 한다.


그런데, 폐쇄적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n번방 사건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리고 약한 여성을 성노예로 삼아 착취하고 강간하고 폭행하고 입에 담기도 힘든 온갖 못된 짓을 벌인 게 20대 남성의 스트레스 해소고, 돈벌이였단다. 그 방들에서 함께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고 낄낄대며 부추긴 것이 26만 명이란다.


n번방의 공범자, 유료 가입자가 억울하다고 한다.

어제 나를 화나게 한 글. n번방 유료 가입자가 본인은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란다.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



내 딸이 피해자라면 내 딸의 행동과 내 교육을 반성하겠단다.

오늘 화나게 한 페이스북 포스팅. 교육자가 할 말인가?


피해자를 두 번 죽인다.


왜 하필 지금 n번방 이야기냐고

페친의 n번방 음모론 글을 보니 기가 막힌다. 댓글 위해 페삭 못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불만, 분노를 그쪽으로 표출시키게 하기 위한 정부의 음모론이라는 이들까지...


전염병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지만 n번방 같은 문제는 남자가 아닌 여자, 그것도 조심성 없고 스스로도 문제가 있는 소수의 문제라는 생각이 기반일까?


연대란, ‘1.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2.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라는 뜻이다. 한 덩어리로 연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26만이면 대한민국 남자의 1%도 안 되는데 그들과 모든 남자를 하나로 보지 말라며 n번방에 분노하는 이들을 페미니스트로 몰아세운다.


2016년 기준 세계 노동 기구(ILO)에 따르면 약 100만 명의 아이가 상업적인 성 착취에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단다. 텔레그램처럼 폐쇄적인 매체는 조사조차 못했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만 100만 명이란다.


https://news.v.daum.net/v/20200323050148144

소수의 문제가 아니고 범법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대상으로 그저 돈벌이로 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사건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방관하는 사이에 범죄가 범죄로 잊히고 있다.


범죄가 범죄를 키웠다는 페이스북의 포스팅


n번방 사건은 피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걱정하는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 부끄러워하는 남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우리 모두의 문제다.


코로나 19 사태는 전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이겨낼 것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고 셧다운을 하고 백신을 만들고 어떻게든 우리 모두가 연대해 이겨낼 희망이 있다. 그러나 n번방 사건은 도대체가 희망이 없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변형되고 진화(?)해 몸체를 바꾸며 계속해서 여자를 미성년 아동을 착취하고 괴롭히고 있다.


* 왜 하필 이때 n번방을 검거하고 언론에서 떠들어 사람들의 분노를 표출시키느냐고?

오히려 지금이라 잡혔을 수도 있다.


카뮈의 <페스트>에서도 보면 페스트를 기회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 중에는 밀수꾼, 사기꾼뿐만 아니라 향락업자들이 있다. ‘순량(純良)한 술은 세균을 죽인다’는 구호로 술을 팔고, 극장과 향락 사업이 번창한다. 휴가라고 믿지만 잠재적 실업자들이 희망을 잃은 시대에 향락을 더 추구한다. 그때는 1940년대 오랑에서는 극장이나 다른 것들이 2020년 대한민국과 세계에는 온라인 기반의 음성 사이트들이 득세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더 많이 벌려고 생각했던 운영자들이 돈에 취해 틈을 보여 잡혔을 수도 있다. 잠입한 기자들의 신상을 털어 가족사진까지 올리던 놈들이고, 박사의 집에는 1억 3천만 원의 현금 다발이 나왔다는 것을 보면 나의 추론이 그저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아니었다면 당장 뛰쳐나가 시위라도 했을 것이다.

폭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모방범죄를 꿈꾸는 이들은 정신 차리고 먼저 인간이 되기 바란다.


무엇보다 숨어서 괴로워하는 피해자들, 당신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코로나 19 확진자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가해자들의 범죄에 피해를 입었을 뿐이다. 운이 나빴다. 그러나 인생을 전부 포기하지 말라. 그것은 범죄자들이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에 무릎 꿇지 말기 바란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청와대 청원 주소 링크)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6819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6880


가해자 n번방박사,n번방회원 모두 처벌해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6885


텔레그램 아동.청소년 성노예 사건 철저한 수사 및 처벌 촉구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6522


박사의 신원 공개와 강력 처벌을 원하는 청와대 청원이 300만을 넘었고

문제인 대통령은 운영자에 국한하지 않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n번방 사건을 소수 피해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페스트나 코로나 19 같은 전염병도 n번방 같은 사회악도 우리 모두의 연대가 희망이다.


카뮈의 <페스트>의 마지막 구절은 전염병에 대한 것이지만 n번방 사건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전염병은 뿌리 뽑지 못해도 범죄는 뿌리 뽑아야 한다.


리외는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호성을 들으면서

그 기쁨이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잠겨 있는 군중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속옷 갈피에서 잠자며 생존할 수가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헌 종이 같은 것들 틈에서

꾸준히 기다리고 있다가

언제가는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페스트는 또다시 저 쥐들을 일깨워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들을 몰아넣어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랑베르의 말


너무 흥분하지 않기 위해

이너피스를 속으로 108번 외치며 108배를 했다.

자주 숫자가 헷갈렸고, 숨이 찼다.

그래도 흥분한 것은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한 여자로서의 분노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8배 글쓰기 58일째] 케일바나나주스는 그냥 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