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 더덕고추장불고기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발생해 날씨는 변덕을 부린다. 그렇게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고 마침내 봄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일교차는 커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걸리기 쉽다. 올해는 꽃샘추위 대신 초미세먼지가 기승이라 남도에 벌써 꽃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개구리는 땅 속에서 나오다 놀라 다시 들어갈지 모르겠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인 나는 환절기의 갑작스러운 온도변화와 미세먼지가 겹쳐 더 괴롭다. 이럴 땐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하지 않았는가!
경칩에는 향긋한 더덕이 좋겠다. 더덕은 겨울부터 봄까지가 제철이다. 인삼과 함께 사포닌이 풍부한 더덕은 면역기능 강화, 원기회복에 좋다. 사포닌과 이눌린 성분은 기관지 점막을 튼튼히 해주고, 폐 기능을 강화해 주는 효과가 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먹으면 딱 좋을 음식이다.
더덕은 통통한 놈을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려 고추장 양념을 해서 구워먹는 게 제일 좋다. 더덕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고추의 열성분으로 보완해주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이왕 궁합을 따져 먹으려면 고기를 더해도 좋겠다. 더덕은 알칼리성 식품이니 고기의 산성 성분이 중화된다.
나는 양념한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좋은 숯불에 직화로 구워 좋은 소금 콕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더덕고추장불고기다. 고추장으로 붉게 양념해 센 불에 볶으면 매콤한 향에 군침이 입 안 가득 고인다. 아삭하니 씹히는 더덕과 부들부들 양념한 돼지고기의 식감 대비가 좋다. 쌉싸름한 더덕의 맛과 고추의 매운맛이 돼지기름에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맛이란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다. 봄의 기운 가득 오른 채소에 쌈을 싸 한 입 가득 오물오물 먹다보면 미세먼지쯤 잊어버리고 기운차게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오를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원래 혼자 가는 거지만, 혼자보다 둘이 함께 할 때가 더 좋은 순간들이 있다. 맛있는 안주와 술을 먹을 때가 그렇다. 나이 들면서 술 마실 때 안주가 점점 더 소중해지듯이 나의 속을 편안하게 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법정 스님은 궁합 따위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사람과 결혼을 해도 서로 함께 맞춰가며 살아가면 된다고, 덕 보려 하지 말라 한다. 그래도 이왕지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어 1+1=2가 아니라 무한대(∞)가 되게 해줄 것을 바라게 되는 것 아닐까?
바야흐로 봄이다. 환상 궁합의 그를 만나 꽃놀이도 가고 더불어 더덕고추장불고기를 맛있게 먹어줄 친구 같은 애인이 있으면 좋겠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 더불어 더덕고추장불고기를 먹다가 고춧가루가 좀 끼어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경칩에 더덕고추장불고기를 생각하며 문득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