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소고기보다 삼치맛도 모르면서!

우수, 삼치회

나는 신당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린 시절 자주 동대문시장에 갔었다. “싸요, 싸요~ 사요, 사요~” “골라 골라 천원~” 장사치들이 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친구들이 동대문 로라장 다니며 <경아>파와 <스잔>파로 나뉘어 놀 때, 난 시장 구경 사람 구경을 다녔다.


2002년도부터 <사라져가는 오일장을 찾아서> 같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는데 아직도 오일장은 시골 사람들의 만남의 장으로 존재한다. 씨름판도 벌어지고, 장도 벌어지고, 31운동도 아우내 장터를 중심으로 펼쳐졌다고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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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별미는 오일장이다. 오일장에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다. 벌 몇 마리가 함께 들어있는 벌집 앞에 자리 잡은 꼬마는 할머니가 잡아끌어도 가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쓱쓱 소쿠리도 만들고 빗자루도 만드는 아저씨도 재미있다. 시간이 멈춘 대장간에서는 칼 한 자루에 5천원 8천원이고, 장터 할매들은 모두 그 칼을 사서 닳아빠지도록 쓰고 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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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안주뷔페도 차려져 있다. 통닭을 칼로 쑤석쑤석해서는 한 마리 그대로 기름통에 넣고 튀겨내는 시골통닭, 그 날 아침 새로 만들었다는 40가지 반찬, 가마솥에 연기 풀풀 냄새 폴폴~ 국밥과 국수, 어느 시장에나 빠지지 않는 순대와 떡볶이, 튀김, 닭발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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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골 오일장에서 가장 맛있게 먹어야 할 것은 제철 해산물이다. 서울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 그곳에는 있다. 예를 들면 완도의 삼치회!


생선구이를 안주 삼는 걸 참 좋아한다. 천천히 먹어도 질리지 않고, 배부르지도 않으면서도 적당히 포만감을 준다. 생선구이는 허름한 판잣집 아니면 일본식 술집 이자카야에서 즐겨 찾는 메뉴인데 대학 때부터 그랬다. 대학원생 선배 L은 당시로서는 매우 비싼 로바다야끼에서 자주 술을 샀다. 그 때마다 내가 시키는 안주는 같았다. 생선구이와 탕. 생선은 꽁치, 고등어, 삼치 중에 한 가지, 탕은 대합탕이나 알탕 중에 한 가지. 그렇게 두 가지를 시키면 당시 내 이주일 용돈 정도 되었다. L은 안주는 꼭 두 세 가지 시켜놓고 왜 강술을 먹느냐고 야단이었다.


삼치는 보통 20분 이상 걸려 나왔다. 주문하면 바로 굽기 시작해도 그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난 삼치구이를 별루 안 좋아했다. 남들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맛이 좋다하지만 기름진 것도 아니고 담백한 것도 아니고 밍밍한 맛이라 삼치가 맛없는 생선이라고 생각했다. 완도오일장 취재를 가서 삼치회를 먹기 전까지는.


“삼치를 회로도 먹어요?”


손님이 삼치회를 두 점 올려 쌈을 싸주신다.


“소고기보다 삼치맛도 모르면서 뭔 방송을 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살맛이 정말 소고기보다 맛있다. 기름지지만 고등어보다는 연어나 참치에 가까운데 더 부드럽고 가볍다. 이 맛있는 것을 내가 왜 여태 몰랐을까 억울하다.


“삼치는 맛없는 생선인 줄 알았는데”


“서울 사람들 먹는 건 삼치 아니고 고시라. 삼치 새끼야.”


맛있는 건 죄다 서울에 있다는 말은 이래서 거짓말이다. 생각해보니 과연 완도의 장터에 널린 생선들은 죄다 크기도 컸다. 삼치도 1미터 넘는 길이에 6-7kg 이상 특대 사이즈였다. 삼치는 그처럼 크고 싱싱한 것을 회로 먹는다. 서울에서 구이로 주로 먹는 삼치는 작은 삼치, 고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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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엇과 생선 중 비린내 없이 고소하고 담백한 삼치는 살이 연해서 회를 뜨는 것도 쉽지 않다. 살짝 얼려서 얇게 포를 뜨듯이 회를 뜬다. 참치처럼 김에 싸먹기도 하고, 연어처럼 양파를 올려 먹기도 한다. 돌미역에 초장을 얹어 싸먹어도 좋다. 나는 완도의 바다 봄나물, 해초에 싸먹는 쪽이 좋았다. 오독오독 씹는 맛이 있는 톳, 꼬시래기, 세모가사리 등 해초를 데쳐서 양념장을 살짝 끼얹어 묻혀 나온 밑반찬을 그대로 삼치회에 얹어먹는다. 이때 해초의 양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 삼치회는 부드러워서 혀에서 그대로 뭉개져버리고 해초만 남기 때문이다.


SNS에 삼치회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택배로 받아먹을 수도 있다만 그건 왠지 싫으니, 워매 징허게 멀기도 하다만 찬바람 그치기 전에 삼치회를 먹으러 완도에 가야겠다.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에 서울엔 큰 눈이 온다지만, 또 대보름이라 나물을 먹어야 하는데, 지금쯤 완도에는 바다의 봄나물 해초도 풍성하겠다~


한동안 썸을 타던 J에게 삼치회 이야기를 한다. 역시나 서울 촌놈인 J는 삼치를 무슨 회로 먹느냐, 무슨 삼치회를 먹으러 완도까지 가냐 한다. 그래 J는 역시 안 되겠다. 소고기보다 삼치맛도 모르면서 썸은 무슨 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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