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싸움의 기술

춘분, 도다리쑥국

두려웠다. M 언니가 김장김치에 든 갈치를 먹어보라고 내밀었을 때. 김치에 든 통 생선이 시원하다는 것은 뜨거운 욕탕에 앉아 시원하다 하는 어른들 거짓말보다 더한 거짓 같았다. 그래도 언니니까,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진정 좋아하는 어른이었다. 어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언니는 언제나 웃는 사람은 아니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이 나면 쳐다보지도 않고, 싫으면 싫다고 말했다. 그래도 언제나 넉넉했고 푸근하게 사람을 안아줄 줄 아는 진짜 어른이었다.


눈 딱 감고 갈치를 한 입 베어 먹는다. 어쩌면 김치에 통으로 들어간 생선이 그렇게 시원하고 칼칼할 수 있단 말인가. 가시는 녹아서 입에 걸리지도 않는다. 언니 덕분에 난 갈칫국도 도다리쑥국도 처음부터 두렵지 않았다.


P와 다투고 기분이 언짢았다. 싸움까지 가지는 않는다. 나는 싸우는 것이 싫다. 난 애인과도 잘 싸우지 않는다. 싸우면 바로 헤어지고 만다. P와 다투고 며칠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았는데, 문자가 온다.


“봄꽃놀이 안 갈래?”

춘분이다. 해마다 지구가 뜨거워져 꽃이 일찍 핀다. 그래도 서울은 아직 춥다. 봄을 봄답게 느끼자며 남쪽으로 꽃놀이를 떠난다. 따뜻한 남쪽나라.... 거제도, 김해, 봉화, 남해, 통영, 하동, 여수, 광양..... 꽃샘추위에도 활짝 피어난 봄꽃-산수유, 매화, 동백, 수선화, 할미꽃 등등을 생각하니 마음이 풀린다. P와 싸우지 않기를 잘했다, 봄꽃놀이 못 갈 뻔했잖아, 속으로 생각한다.



들판이 푸릇푸릇하고 버드나무도 연초록 잎을 살포시 내밀며 춤을 춘다. 그러나 꽃구경도 식후경, 배가 고프다. 휴게소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지 않아 참았다.


“춘분에는 역시 도다리쑥국이지!”

“비릿하지 않겠어? 그냥 회 먹자”


이런.... P가 여태 도다리쑥국이나 갈칫국을 못 먹어봤다니 할 말을 잃는다. 아무리 초딩입맛이어도 어떻게 이 맛있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나 믿고 먹어봐, 진짜 맛있어. 하나도 안 비려!”


조카 달래듯 달래고 얼러서 도다리쑥국을 먹으러 간다. 누구는 쑥도다리국이 맞다 한다. 도다리는 봄과 여름 내내 맛 좋은 생선이고, 봄의 전령사 쑥과 함께 먹어 맛있는 것이니 주연은 쑥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실 도다리 맛보다 쑥국 맛으로 먹었다. 거제도 민박 사장님의 친구가 하는 동네 횟집에서 도다리쑥국을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날 마신 술 해장도 할 겸, 그냥 전날 술 마신 횟집으로 가서 도다리쑥국을 주문했다. 함께 술 마셨던 사장님이 자기도 해장해야 한다고 도다리쑥국을 직접 끓여 내 왔다. 살이 오동통하니 오른 도다리에 향긋한 노지 애쑥이 어우러져 봄이 그대로 입안에서 춤을 춘다. 넣은 듯 안 넣은 듯... 살짝쿵 넣은 된장에 국물이 더 시원하다. 내가 먹은 최고의 도다리쑥국이었다. 결국 그 날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하루 종일 민박집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했다. 봄 햇살과 아침 소주의 취기에 몸이 노곤노곤 녹았다. 고양이처럼 졸다가 낮술, 밤술까지 종일 술타령이었다. 여행이란 게 그런 거지 뭐.


“바닥에 앉기 싫은데...”


횟집이 하필이면 방이다. 요즘은 방에도 입식으로 의자 있는 곳이 많던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도다리쑥국은 횟집에서 먹어야 더 맛있다고!”


그렇게 우겨서 겨우 도다리쑥국을 시켰다. 전골냄비에 2인분이 담겨 나온다. 흰 살 생선을 끓인 뽀오얀 국물에 파란 애쑥이 앙증맞다. 그런데 아뿔싸! 한 입 먹고 P를 쳐다보니 오만상이 찌푸려져 있다. 도다리를 뒤적여보니 살집이 적다. 알도 보인다. 봄 도다리가 최고라 함은 겨울철 산란을 마치고 남해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먹고 살집이 통통하게 올라온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알을 배면 알로 영양분이 몰리기 때문에 살은 맛이 없다. 이 도다리는 왜 봄에 알을 밴 걸까? 나중에 찾아보니 도다리 중에 봄에 알배는 종류가 있단다. 그런 도다리는 여름과 가을에 제철이 된다. 도다리쑥국은 맛이 좀 덜 했어도 먹을 만했다. 향긋한 쑥이 주연인 쑥도다리국으로 생각하면. 그러나 P는 김치와 나물반찬에 밥을 먹었다.


P와는 그해 봄꽃 여행 이후 헤어졌다. 맛없던 도다리쑥국 탓은 아니다.


문제는 내게 싸움의 기술이 부족한 탓이다. 연인은 잘 싸워야 사랑도 잘한다. 귀신도 말하지 않으면 그 속을 모른다. 싸우면서 서로의 불만을 속 시원히 털어내고 그것을 쌓아놓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가. 타이밍과 밀고 당기는 기술이다. 난 평소에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을 잘한다. 얼굴이 신호등이고 날씨 기상대라 말하지 않아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왜 남자 앞에서는 그걸 말하지 못하고 참을까?


결국 두려움이다. 조금 불만이 있지만 싸워서 헤어지게 될까 두려워 참는 것이다. 그럴 때는 얼굴에 표도 안 난다. 속에 쌓아놓은 것이 어느 날 봇물이 터지면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내뱉고야 마는 것이다. 차라리 평소에 작은 것이라도 자주 싸우고 그때그때 풀었다면 좋았을 텐데... 화내고 싶을 땐 화내고 안아줄 땐 안아주고, 그렇게 자기 행동과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인데...


두려움. 처음 김치에 통으로 들어가 있는 생선을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것은 분명히 두려움이었다. 일단 먹어보지도 않고 생선은 비리다는 선입견, 바닥에 앉는 것도 싫고, 생선국은 더 싫은데 그걸 기어이 먹겠다고 하는 것이 싫어 정말 맛이 없어진 도다리쑥국처럼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위축된 마음은 기어이 안 좋은 결과를 부른다.


다음에 연애할 때는 작은 것도 쌓아두지 말고 잘 싸워야겠다. 싸움의 기술이 바로 연애의 최고급 스킬임을 잊지 말자!


춘분이다. 별자리에서 춘분은 1년의 시작이다. 멕시코에서는 춘분이면 유적지에 올라 두 팔을 벌리고 태양에너지를 가득 받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봄꽃 구경도 가고 맛있는 도다리쑥국도 먹자. 오동통한 살집의 봄 도다리 넣고 뽀얗게 끓인 국에 된장 한 스푼 가볍게 넣고, 마지막으로 언 땅을 깨고 쑤~욱 올라온 어린 애쑥 폴폴 넣은 도다리쑥국~


*알밴 도다리는 잡지도 팔지도 말자!

맛없을 뿐 아니라 알은 더 많은 도다리로 돌아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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