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버무리와 봄햇살과 와인
쑥 버무리
들로 나가 봄 햇살 아래 지천으로 핀
쑥을 뜯어다가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에
소금 약간
설탕 약간
버물버물 뒤섞어 쪄낸다.
어렸을 때 난 떡보였다. 떡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났다.
입이 짧고 자주 체했던 내게 엄마는 밥을 먹어야 떡을 준다고 해서
밥을 먹고 떡을 먹었다.
명절에 방앗간에 가 앉아 있으면 엄마는 말했다.
“얘는 케이크보다 떡이 좋대요.”
“어머 정말요? 이것 좀 먹어볼래?”
그러면 방앗간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떡을 종류별로 내주시는 거다.
난 앉은자리에서 떡을 종류별로 골라 먹을 수 있어
방앗간을 좋아했다.
“어머 너 방앗간에 시집와야겠다!”
“싫어요. 돈 많이 벌어서 종류별로 사 먹을 거예요!”
그러나 딱 한 가지, 쑥떡도 쑥버무리도 쑥이 들어갔다 하면 싫어했다.
외할머니는 쑥버무리를 잘해주셨는데
쌀가루도 아니고 밀가루를 조금 넣고 쑥을 잔뜩 넣어 버무린 쑥버무리, 쑥 범벅...
쑥은 질기고 맛없는 풀떼기라 생각해 안 먹었다.
하긴 난 어렸을 때 오이지는 늙은 오이라 싫다고 안 먹고
익힌 양배추와 양파는 달아서 안 먹고,
소고기 뭇국은 무가 물컹거린다고 안 먹었다.
코피를 자주 흘려 매일 두 개씩 의무적으로 먹어야 했던 계란마저
언니에게 속아 흰자 빼앗기고 노른자만 먹으며 닭똥냄새에 질렸다.
눈 감고 약으로 먹었던 계란을 커서 한동안은 아예 안 먹었다.
어려서 떡보였던 나는 지금도 떡을 좋아하지만 술도 좋아한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떡 싫어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술도 떡도 같은 쌀로 만들고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해서 그런 말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안동소주의 경우, 80kg 쌀 한 가마니로 소주 57ℓ를 만들 수 있단다.
안동소주 한 잔(40㎖)이면 쌀이 60g이다.
소주 한 잔이면 밥이 한 공기에 맞먹는다는 계산이 나오니
반주를 하려면 밥은 조금만 먹어야겠구나.
화요일마다 산에 가는 모임, 화산회에
꽃을 사랑하는 금손 시인 언니가 쑥버무리를 해왔다.
우면산 깊은 곳에 가서 애쑥을 뜯어다가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도 빻아다가
직접 만들었다는 쑥버무리를
봄 햇살 아래 앉아 진달래를 구경하며
와인과 함께, 고량주와 함께, 소주와 함께 먹는다.
쑥이 잔뜩 들어간 쑥버무리가 맛있다.
쌀이 포슬포슬 살아있으면서 적당히 쫀득하니
입에 짝짝 붙으면서
요기도 되고 술안주도 된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춘궁기에 들에 산에 지천으로 피어난 쑥은 구황식품이었다.
감자나 고구마, 메밀, 귀리 등등
그 시절 구황식품들이 요즘은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인기다.
별미가 되면서 몸값도 덩달아 올랐다.
맛있는 쑥은 찾기가 힘들다.
방앗간 쑥떡도 싱겁다.
언젠가 절 아래 할머니가 파는 쑥떡이 꽤나 향긋했는데
어느 절이었나 기억이 안 난다.
쑥버무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쑥버무리가 술과 잘 어울린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앞으로 봄맞이는 쑥버무리와 진달래 화주로 해야겠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쑥버무리는 쑥이 많아서 싫었는데
어른이 되어 술안주로 먹는 쑥버무리는 쑥이 많아 좋으니
참 요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