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에는 두릅 등 새순나물
어려서부터 비에 예민했다.
비가 오면 몸이 아프고
잠도 잘 못 잔다.
'교통사고 환자도 아니고, 관절염 환자도 아닌데...'
라고 했는데
정말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기상대보다 내 몸이 더 정확하다.
최근 연이은 화재 때문에 비 소식이 반갑다.
아직도 전국이 가물어
산에 들에 마른 잎들이 버석거린다.
그래도 오늘은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고
적은 양이지만 비 소식도 있어 다행이다.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이 시기에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두릅, 엄나무순, 오갈피순 등 새순나물이다.
봄날의 꽃샘추위처럼
쌉싸래한 맛의 새순나물은
언제 어디서 진짜를 만날 수 있는지
예측이 안 된다.
어느 날은 꽤나 맛있고
어느 날은 너무 싱겁다.
여행을 가서 유명 관광지의 두릅 전문점이 아닌
그냥 마을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만나는
두릅이 더 향긋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긴 시골마을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는 두릅은
하우스 것이 아니라 뒷산에서 따온
제대로 된 두릅일 수밖에 없다.
돈 주고 사다가 밑반찬으로 내서는
수지가 맞지 않을 테니까.
“이건 딱 요맘때밖에 못 먹는 거야”
처음 맛보는 홋나물도 그렇게 만났다.
찾아보니 화살나무의 새순이란다.
보들보들하면서도 쌉쌀한 것이
내 입에 딱이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홋나물에 소주 반 병을 비우고 추가한다.
두 번째 추가하자
“이건 많이 못 주는데... 얼마 없어서...”
풍족한 인심의 시골 밥집에서
듣기 어려운 말이지만
정말 반찬통에 담긴 나물이 얼마 되지 않는다.
“고맙습니다~ 진짜 맛있어요”
인사를 하고는 아껴 먹으며 싹 비운다.
예상치 않은 맛도 있을 게다.
봄의 딱 며칠만 먹을 수 있는
희소성 때문에도 더 맛있다.
산나물의 제왕 두릅의 인기 때문에
엄나무순을 개두릅이라 부르는데
엄나무순은 엄나무순으로서
독특한 향취와 맛이 있으니
난 개두릅이란 이름이 싫다.
두릅뿐 아니라 엄나무순, 오갈피순
그리고 얼마 전 처음 만난 화살나무순까지
봄날의 새순나물은 그렇게 예상치 못하는 맛이다.
야리야리한 것이 어찌 그리
톡 쏘는 쌉쌀함을 숨기고 있단 말인가.
돈 주고도 사 먹을 수 없기에 더 맛있을까?
버석거리는 봄날의 산에 미끄러지면서
아는 사람만 따올 수 있는 귀한 몸이다.
S가 그랬다. 그는 늘 예측 불가한 남자였다.
갑자기 내 삶에 불쑥 들어왔고
12년 동안 지 맘대로 들락날락
내 마음을 휘젓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잊어야지 하면
뜻밖의 시공간에서 맞닥뜨렸다.
결국 멀리 외국에서
국제전화로 술주정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요즘도 가끔 국제전화가 오면
순간 멈칫한다.
‘S일까?’
오늘은 곡우, 밤에 비가 온다는데
어차피 잠도 못 잘 것 같고
두릅나물에 소주가 필요한 날이다.
하루 만에 갑자기 초여름 날씨로
바뀌었다.
예측 불가한 꽃샘추위는
이제 정말 지나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