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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서점에 미안하지 않은 저자가 되자

권희진 <꽃서점 1일차입니다>

파리에서는 일부러 길을 잃어보세요.

골목길 어딘가 작은 서점이

하나의 풍경, 한 권의 책으로

운명처럼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셰익스피어 인 파리” 에필로그     


꽃집, 카페, 서점     


대학생이 되면 3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다. 대학교도 학과도 3군데씩 정해놓고 그중에 골라서 가더니 아르바이트도 3곳을 미리 정해놓았던 것이다. 대학 시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역시 카페 드뷔시산장과 한마당서점이었다. 카페는 4년 내내 나의 아지트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었고, 지금도 내게 이탈리아 별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카페 주인이 이탈리아로 이민 갔다). 서점이 좋았던 것은 책을 공급가에 구매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공식적으로 책 읽을 시간이 많았다. 딱 하나, 꽃집 알바를 못해봤다. 그래서 서점과 꽃집을 같이 하는 <디어마이블루>는 내 호기심과 로망을 동시에 자극했다. 과연 어떤 공간에 어떤 주인이 있을까?     


제주 애월읍 고내리 <디어마이블루>는 사진 찍기도 좋다. 동화책을 사와 책장 앞에 두었다!

작년 여름 제주도, <디어마이블루>에 작정하고 찾아갔다. 파란 건물과 잔디가 아주 마음에 들어 주인장 오기 전에 사진 놀이부터 시작했고, 서점 오픈 후 주인과 책, 서점, 제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테이블은 있으나 음료가 없다고 해서 잠시 당황했으나 같이 간 친구가 커피를 사다 주어 셋이 함께 마시며 이야기했다. 음료 매출에 기대지 않고 책만 팔고 싶다는 서점주의 마인드에 동감하면서. 제주 친구들, 아이들 선물을 사러 간 거였는데 자칭 영업의 달인 주인 덕분에 내가 읽고 싶은 책도 한아름 안고 나왔다. 그중에서 그림자 동화책은 주인의 소장품인데 내가 거의 강제로 빼앗아 왔다. 지금도 내 서재 정면에 장식되어 있고 한 번씩 꺼내어 읽으면 기분이 막 좋아진다. 그 어여쁜 주인장이 책을 냈다. <꽃서점 1일차입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애정하는 JTBC 특집 다큐멘터리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중에서 파리의 백념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책은 독자가 읽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서점이라는 공간도 사람이 만들어 가는 거죠.

-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셰익스피어 인 파리” 중에서     


책을 낸 지 3주일이 지났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책을 안 읽나 걱정하다 보니 나도 지난 몇 주 동안 자료 외의 책을 읽지 않고 지냈다. 핑계는 있다. 책의 마지막 퇴고를 마치고 바로 방송일을 시작했다. 방송계의 무서운 격언, 론칭하는 프로그램엔 절대 발 담그지 말지어다~를 모르고 특집, 론칭 전문으로 살아왔다. 이번에도 새롭게 론칭하는 아침 프로그램이다. 책 마무리하는 동안 벌이가 없었고, 시국이 시국인데 아침방송은 오래갈 수 있겠지 하면서 시작했는데... 맙소사... 첫 주 녹화 전에 3일 밤을 새웠다. 내가 내 발등을 찍고 말았다. 결국 책을 마무리하면서부터 방송 시작 이후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지냈다. 책 좀 읽는다 생각하는 나도 이 모양이니 도대체 누가 책을 읽겠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나부터 읽자 생각하고 집어 든 책이 <꽃서점~>이다.     


일부러 서가 넘어 사람이 보이는 공간 구성과 서점 앞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모습이 동네 서점을 더 낭만적이게 한다. JTBC 특집 다큐멘터리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중에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닙니다.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만나고 일상을 공유합니다.

책은 사람의 이야기니까요.

-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셰익스피어 인 파리” 중에서     


책을 읽으며 2년 전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가 계속 떠올랐다. 오래된 서점을 주제로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 4부작이었다. 그중 2편 프랑스를 맡아 만들면서 우리나라의 오래된 서점에 관심이 가지게 되었고, 여행지에서도 일부러 동네책방을 찾아다녔다.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 책을 파는 동네서점이라는 공간에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기에 제주에 가서도 <디어 마이 블루>를 일부러 찾아갔었다. 서점주의 생각이 내가 다큐를 만들면서 동네 책방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많이 비슷해서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꽃서점~> 책이 너무 얇아서 아쉽다 했는데 사람들이 요즘 책을 잘 안 읽으니 이렇게 얇고 가벼운 책을 더 선호할 수도 있게 싶다. 나도 가볍게 집어 들었고 몇 시간 만에 다 읽었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이 사람은 운이 참 좋다, 서점 창업이 이렇게 쉬운 일이야 할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그녀의 이야기를 좀 알기에 행간에 숨겨진 노력에 감탄했다. 작년부터 나의 모토는 “너무 애쓰지 말자”다. 올해도 그렇게 살아야지 했으나 책을 마무리하고 방송을 준비하면서 애를 쓰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시간’을 다투는 일이고 돈을 덜 쓰려면 내 몸과 시간으로 때워야 한다. 게다가 북콘서트는 생각하지 못했던 복병이다. 내 책이 만 명에게 팔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현실은 3주 동안 1 쇄도 못 팔았다. 일단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북콘서트를 어찌 알차게 채울지 고민 좀 더 하자. 마스카라 바짝 올리고 하이힐 또각거리며 글을 썼던 햇병아리 방송작가 때처럼 한껏 우아하게 꾸미고 나가 열심히 글 쓰고 책 팔아야지. 나름 독자에게 미안하지 않은 책을 썼다 생각하나, 출판사와 서점에도 미안하지 않은 저자가 되도록 말이다.


*이래서야 도대체 언제 책 100권을 읽겠냐마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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