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는 모험이야기다.

양자리 영화감독 이창동

“서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영화(<시(2010)>)를 하나의 모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난생처음 시를 쓰고자 한다는 것은 미자에게는 성배(聖杯)를 찾아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는 힘들고 무모한 모험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어야 하는, 도덕성의 시험을 거쳐야만 하는 모험이었다.”

- 이창동, <시 각본집> 서문 중에서


방송작가라고 하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었느냐 묻는다. 20여 년 동안 수없이 만들었지만 방송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고, 어차피 말해도 잘 모르기에 선뜻 뭘 얘기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굳이 이야기해야 할 때면, 한국 영화 100년을 다룬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100년을 돌아보다 : 내 인생의 한국 영화>를 꼽는다. 70년대 ‘별들의 고향’부터 ‘기생충’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특별한 한국 영화 이야기를 돌아본 1부 ‘나의 사랑 나의 영화’를 기획부터 구성, 글까지 담당했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이장호 감독, 배창호 감독, 이명세 감독, 이창동 감독은 물론 배우 칸의 여왕 전도연, 할리우드 스타로 거듭난 이병헌 배우와 ‘벌새’의 김보라,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등 많은 영화인을 만나 인터뷰했고 기생충의 조여정 배우가 내레이션을 해 주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0분에서 2시간의 시간 동안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속 깊은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그들의 모든 영화를 보고 정말 고민을 많이 해서 질문을 뽑았다. 그중 공통질문으로 내 인생의 첫 영화, 극장에 대한 것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답변은 이창동 감독(1954년 4월 1일, #양자리 #물고기자리)이었다.

영화 <시>를 모험이야기라고 말하는 영화 감독 이창동은 양자리다.


Q 어린 시절 처음 보았던 한국 영화에 대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최초의 한국영화는 제목도 모르는 어떤 영화였어요. 아마 네댓 살 무렵에 본 영화일 거예요. 아주 최초의 기억이죠. 그리고 단편적이고. 극장에 앉아있는데 굉장히 사람이 많았고 그 객석에 앉아있는데 앞에는 흑백 화면에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걸 보면서 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냐면 그 영화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거기에 모여있는 사람들, 관객들이 1명씩 나가서 자기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걸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서 내 차례는 언제 오나? 내 차례 오면 나는 어떻게 하지. 그 불안 때문에 계속 긴장하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것이 저한테 영화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죠. 그게 한국영화였지만.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이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을 보면 그 사람이 퍼스널리티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최초의 기억이 저의 퍼스널리티를 형성한 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영화라는 걸 나도 이야기해야 되는 어떤 것이라고, 그때 받아들였던 것인지도 모르죠.”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가장 가난했던 이창동 감독은 극장에 돈을 주고 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옆집이 가내수공업으로 네온사인을 만드는 집이었고, 그것도 하필이면 극장의 영화 제목을 네온사인으로 만드는 집이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게 되면 극장의 영화 제목을 새로 바꿔 달아야 하는데 그때 네온사인 중 한 글자를 들고 따라가서 극장에 들어가 공짜로 영화를 보았다.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영화를 꿈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못하고 토막토막 본 영화의 이야기를 상상하거나,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욕망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가난하지만 글을 잘 썼던 이창동 감독은 대구고 시절 문예반에 가입, 백일장 투어를 다니며 상을 휩쓸던 문학 소년이었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던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1992년에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 후 문단에서 뛰어난 소설가로 인정받았던 그는 마흔이 넘어 1997년 한석규 주연의 <초록물고기>로 영화감독이 되었다. 앞서 지인 박광수 감독의 권유로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각본과 조연출을 담당했고, 1996년에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시나리오 작가로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받았었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한국의 역사와 사회 현실, 그리고 소외당한 이들의 작은 이야기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들로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이동진 평론가는 “한국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는 곧 이창동 감독이 도달한 깊이”라고 말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아직도 작가지망생의 내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지금 늙은 영화감독이 됐지만 내가 어떤 이야기를 관객들한테 해야 되는가 질문을 하게 돼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죠. 그냥 재밌는 영화 만들면 되잖아, 관객들이 원하는 것. 그런데 저는 그러고 싶진 않아요. 관객들이 뭘 원하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지. 그게 저 자신의 영화감독으로서의 출발입니다.”

이창동 감독이 어린 시절 처음 접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퍼스널리티를 찾았던 그 순간부터 마흔 넘어 감독으로 데뷔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은 자연스럽게, 영화 <시>에서 미자가 난생처음 시를 쓰기 위해 애쓰는 모험, 아름다운 것을 찾아 헤매는 모험과 겹쳐진다. 아르고호의 대모험부터 어벤저스의 모험까지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양자리의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으니까.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생각하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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