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자리 화가 폴 고갱
“I shut my eyes in order to see.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 폴 고갱
#폴_고갱(1848년 #6월 7일)은 인상파 화가 카미유 피사로 등과 어울리며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며 쉬는 날 그림을 그려서 #일요일_화가 라 불렸는데, 세관원이었던 앙리 루소, 우체부였던 루이 비뱅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882년 경제공황과 주식 폭락으로 망한 이후 전업 화가가 되었다. 1886년 제8회, 마지막 인상파 전에 작품을 냈는데,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으나 작품이 팔렸다. 이때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도 함께 전시됐다. 하지만 고갱은 쉬라의 신인상주의니 점묘법이니 하는 것을 경멸했고(고갱은 “내가 볼 땐 그저 저주받은 점일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고갱이 좋아한 에드가 드가도 “큰 사이즈 말고는 보이는 게 없다”라고 했단다.) 전시를 주관하고 쇠라를 초대한 피사로와 결별했다.
한편, 고갱은 인맥이 좋아 작품을 잘 팔았다. 그림이 팔리지 않았던 빈센트 반 고흐는 폴 고갱이 부러웠다. 고흐는 아를의 노란 집에서 지낼 때였는데, 고갱과 함께 지내면서 작업하면 그의 좋은 점, 인맥을 배울 수도 있고 좋겠다 생각했다. 동생 테오가 고갱의 그림 몇 점을 사고 아를에 가는 차비와 생활비까지 대주기로 해서 아를에 갔는데 그들은 단 9주 동안 함께 지냈고 이후 다시는 안 만났다고 한다.
이후 고갱은 타히티에서 원근을 무시한 구도,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 상징주의의 선구자가 됐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 열정과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더불어 고갱은 20세기 표현주의 미술과 추상미술에 영향을 준 화가로 추앙받는다.
회화는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고갱은 눈을 감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그림을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정치가 처칠은 마흔 이후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렸고 쇼펜하우어는 플루트를 불었으며 니체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 작곡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요즘 취미가 없어졌다. 20대부터 살사 댄스, 등산, 사진 등 다양한 취미를 즐겼는데 책 읽을 시간도 없다는 핑계만 대고 있다.
무엇이든 다시 취미를 시작해 내 일을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오늘!
#오늘문장 #오늘명언 #1일1명언 #별자리명언
#Astrology #별읽어주는여자 #별자리상담 #별자리강연
#별자리독서 #별자리문장 #별자리글쓰기 #별자리심리학
#별자리로읽는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