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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ar 29. 2023

캐나다 취업 이야기 1

한국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듯한 캐나다 취업

나는 캐나다에 30대에 이민 온 1세대 이민자이다.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캐나다에서도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일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이민자라서, 캐나다라서, 그동안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가장 길고 힘들었던 고비는 바로 취업이었다. 캐나다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첫 번째 취업은 이민 생활의 첫 단추 같은 것이었다. 아 물론, 한국에서도 첫 번째 취업은 캐나다에서 만큼이나 중요하고 절실했었다. 


한국에서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본 첫 면접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에서의 면접은 지원자 누구나 따라야 하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던 것 같다. 


우선 위아래 검은색으로 된 저렴한 정장을 하나 장만했다. 그 옷을 입고 제일 먼저 간 곳은 면접장이 아닌 집 근처의 작고 아담했던 사진관이었다. 최대한 단정하고 인상 좋게 보이기 위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증명사진을 찍었다. 

포토샵 좀 만져본 듯한 멋진 사장님의 솜씨로 내 이력서 증명사진은 완성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신입사원 공고가 뜬 회사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기소개서에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이고 논리 정연하게 적어 나가야 한다. 나를 소개하는 글이지만 자기 성찰을 할 시간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만들어 놓은 지원서에서 회사마다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변형해 가며 과제하듯 그렇게 입사 지원서를 작성하고 또 작성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자기소개서와 미리 준비한 증명사진을 함께 제출하면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다. 서류전형 합격을 기다리면서 마음 졸이며 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류전형 다음에 있을 인적성 검사도 준비해야 하고 그 이후에 있을 면접도 준비해야 하니까. 대학교 다니면서 여러 스터디를 했지만 면접 스터디야 말로 열과 성의 그리고 진심을 다해 임했었다. 경쟁자이면서도 동지인 스터디 멤버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모두가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전력질주 했다.


내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 최소 16년이 이제 결실을 맺어야 하는 타이밍이라 생각하니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었다.


한국에서의 취업은 한마디로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두렵고 귀찮은 과정이었다.




근데 캐나다라고 뭐가 크게 다를 소냐.             

물론 뭘 해도 캐나다만 가면 좋을 것 같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호기로운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구직활동을 시작하면서 너무 쉽게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많이 미워졌다. 한국에서 힘들게 얻은 직장을 내 발로 나와서 다른 나라에서 다시 구직활동을 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겪은 구직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외로운 싸움이었다.


스터디를 같이 할 팀원들도 없었고, 정보를 공유하고 질문을 답해주는 네이버 취업카페도 없었다. 인터넷상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정보의 조각들을 모아가며 스스로에게 위로와 채찍질을 해야 했다. 이 산만 넘으면 좋아질 거라고, 나도 성공한 이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괜히 이민 온 것 같다는 자책과 후회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왠지 인정하고 나면 가슴이 아프고 기운이 빠질 것 같아서였다. 취업 시장에서 전력 질주하는데 써야 할 힘을 후회하는데 다 써버릴 것 만 같은 또 다른 걱정 아닌 걱정이었다. 


캐나다에서 취업 준비는 한국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정성껏 준비한 사진도 소설 같은 자기소개서도 필요치 않았다. 간단하게 내 이력을 보여주는 두장짜리 이력서를 작성하고 간단히 나를 설명하는 커버레터를 작성했다. 회사마다 올라오는 잡 포스팅을 보면서 회사가 원하는 몇 개의 키워드를 이력서에 추가하고 커버레터의 한 두 문장 정도를 각 회사에 맞게 바꿔준 게 다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건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며 이력서를 제출하고,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기다림의 시간... 이건 한국의 그것과 같았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위대하지 않은 존재인가에 대해서 고찰하는 시간. 


지금 돌이켜 보면 이때가 내 캐나다 이민 생활의 가장 추운 겨울이 아니었나 싶다. 캐나다에서, 외국에서, 첫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되었어야 했는데 너무 핑크빛 미래만 꿈꾸며 캐나다에 온 것 이 그 어려움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어려움은 영어와 인맥이었다. 영어야 이민자인 나에게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거라 치부해 버렸지만 캐나다에서 직장을 구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인맥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였던 인맥 취업이 아닌가. 위에 어디 높은 사람이 인맥으로 대기업에 자식들을 취업시켰다는 기사가 한국 포탈에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은 그런 인맥이 취업에 가장 중요하다니 이거 어디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취업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이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인디드, 링크드인에 이력서를 지원해 봤자 저렇게 소개받은 사람의 이력서에 밀려서 검토도 되지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망상 같고 현실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다 정말 운이 좋게 이력서를 넣은 한 군데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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