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제자

한국학교에서 만난 아이

by BlueVada




어느덧 한국학교 교사로 15년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국학교 문을 두드렸을 땐, 아이들—5학년과 3학년이었던 두 자녀를 수업에 데려가며 그저 학부모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뿐이었지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고, 남은 학기 동안은 조용히 지켜보다가 결국 새 학기부터는 용기를 내어 제 첫 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첫 몇 년은 정말이지, 어떻게 수업을 이끌었는지 모를 만큼 땀에 절어 수업을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열정은 지금 다시 꺼내려 해도 쉽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강렬했어요.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한국어를 배운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정말 많이 준비하고 고민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첫 반은 1학년이었는데, 그때의 아이들이 벌써 12학년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더라고요.
그중 한 아이는 교회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데, 볼 때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몰라요. 마침 아는 집사님의 자녀였기에, 그 아이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서 함께하며 제가 그 시절 그 아이의 인생에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아직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학생은 그 첫해 만났던 바로 그 아이입니다.

새 학기 첫날, 새 신발을 신은 그 아이는 어색하게 발을 책상 끝에 올리고, 의자도 까닥거리며 또래답지 않게 어딘가 반항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또래 친구들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였지요. ‘뭘까? 저 아이의 저 눈빛은?’
경계심을 안고 수업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는 수업에 잘 참여했고, 한국어도 곧잘 했습니다.

“아빠가 새 신발 사줬어요.”
조금 가까워지자 그렇게 말하던 아이는, 매주 숙제도 꼬박꼬박 해오고, 언제나 제일 먼저 등교해 있었어요.
“아빠가 매주 숙제 했는지 꼭 물어봐요!”
그렇게 말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알고 보면 아주 모범생이었던 거죠.

그 아이가 있었기에 제 한국학교 교사 생활이 그렇게 순조롭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에겐 성실한 학생 하나만 있어도 얼마나 든든한지요.

어느 날 곤충을 배우던 수업 시간, 개구리와 올챙이를 이야기하자 아이는 “잘 몰라요”라고 했습니다. 순간, 그 아이를 위해 뭔가 재밌는 걸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Kids Space 박물관!’
바로 소풍을 기획했고, 부모님들께 이메일을 보내자 모두가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부모님들이 직접 박물관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셔서 얼마나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는지 몰라요.

그 날, 그 아이는 누구보다도 밝게 웃으며 “선생님, 이거 보세요! 더 놀고 싶어요~” 하고 종알거리며 제 옆을 따라다녔습니다.
입구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는데, 작은 선물을 들고 있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다가오셨어요.
“선생님, 감사해요. 저희가 다음 달부터 케냐로 선교를 가게 되었어요. 아이가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어했는데 많이 아쉬워하네요.”
뜻밖의 소식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좋은 일을 하러 가시는 건데도, 왜 그리 가슴이 찡하고 헤어지기 싫었던 걸까요.

그제야 아이의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의 가정은 선교를 준비하며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고, 아이는 그런 변화 속에서 낯선 환경과 불안을 감추기 위해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마음은 너무도 순하고 여려서, 다정하게 대해주기만 하면 금세 따뜻해지는 아이였습니다.

헤어지던 날, 저는 2~3학년 교과서와 동화책들을 한가득 싸서 그 아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케냐 가서도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선생님 절대 잊으면 안 돼!”

그 아이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사춘기도 지나고, 더 이상 그런 눈빛은 짓지 않겠지요.
혹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저는 오래도록 그 아이를 기억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결국, 사랑으로 자라는 존재라는 것을… 그 아이가 가르쳐 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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