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의 진심을 알아줄 때

미국의류 회사로 가다 - 4 회

by BlueVada

#무지개빛 회사생활


그렇게 회사에 좌충우돌 적응할 무렵 대표님이 새로운 디자이너를 유명회사에서 스카우트해 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어김없이 데이나에게 이 상황을 물어보았고 그녀는 7년 전에도 이 회사에서 일했던 이탈리아 남자 디자이너 페데리코가 돌아올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매너가 아주 좋은 멋쟁이에다 디자인 능력도 탁월한 사람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서 나도 그가 누굴까 몹시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외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정작 나는 제대로 외국 남자와 말을 섞어 보지 못했다. 한국회사에서 뼈를 묻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이직하게 된 이 회사에 남자직원과 대화가 잘 통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남자 옷을 담당하는 영국인 디자이너 제임스가 있긴 했지만 항상 셸리만 찾고 이 회사에 오래된 데이나만 예뻐했다. 새로 온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고 내가 만든 옷을 언제나 셸리와 의논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이제는 나도 디자이너에게 인정을 받으며 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나머지 다음 주부터 출근한다는 새 디자이너가 은근 기대가 됐다.


회사에 대체로 일찍 도착하는 편인 나는 출근 시간 10분전에 회사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직원용 배지로 스캔해야 들어올 수 있는데 누군가가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 시간에 오는 걸 보면 원단 세일즈 인가 싶었다. 딱히 누구냐 하고 물어보기도 그래서 문을 열어주고 나는 곧바로 우리 팀 사무실이 제일 안쪽이라 한참을 걸어가는데 그 사람의 발소리가 계속 내 뒤를 따라오는 거 같다. 세일즈맨들은 여기 안까지 들어오면 안 되는데 하고 뒤를 돌아다보니 다른 직원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페데리코씨, 오랜만이에요!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설마, 그 멋지다는 이탈리아 남자가 바로 그 사람인가?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다보니 푸근하면서 귀여운 스타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래위를 스캔해보니 남자 한복처럼 통이 있고 발목은 좁게 만든 바지와 무채색의 좀 타이트한 상의를 매치해 입었는데 배 부분이 살짝 타이트 한듯 했지만 나름 스타일이 독특해 보였다.

“어머, 혹시 당신이 페데리코씨 인가요? “

내가 그의 이름을 물어보자 그는 오랫동안 알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라 낯선 게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나는 데이나에게 한마디 따지려고 그녀를 찾았다.

“페데리코가 날씬하다면서요? 그리고 잘생겼다면서요. 내 눈에는 그렇게 안보이네요?”

당황한 데이나도 그를 보더니 따지듯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에요? 페데리코씨, 몰라 볼 뻔했어요. 예전보다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요!”

“안녕하세요, 데이나씨! 잘 지냈어요? 나는 그동안 와이프 만나 결혼을 했는데 요즘 좀 편한 나머지 살짝 몸이 불었네요. 유부남이니까 용서해줘요.”

나는 모델 느낌 나는 슬림한 디자이너를 그려 보았는데 현실에는 상상과 다른 사람이 출근했지만 그렇다고 페데리코를 흉볼 수만은 없었다. 다들 결혼하면 조금씩 편안해지고 살이 붙고 그러지 않던가? 다시 보니 더 인간미가 흘러 보여서 나도 반기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인사해요. 반가워요. 페데리코씨, 저는 테크 디자이너 비비안이에요.”


“저도 반갑습니다. 잘 부탁해요, 비비안씨.”

페테리코는 출근하자마자 준비해온 50여장의 컬러풀한 디자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몸매의 그림들이 하나같이 알록달록 예쁜 옷들을 입고 서있었다. 어쩜 그림도 이리 잘 그릴까? 나름 이 필드에서 경력이 많았지만 이렇게 의상 디자인 그림을 눈코입부터 신발까지 다 완성해서 그려준 건 처음 봤다. 포즈도 다양하게 앞뒤 옆모습의 디테일도 살아있는 어마 무시한 디자인들을 이리저리 바라보고 있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뭐든지 참견하고 싶어 하는 팀장 셸리는 그 디자인들을 페데리코로부터 낚아챘다. 그리고는 자기가 우리 패턴사를 대표하는 팀장이라는 걸 과시하며 우선 나에게 얄궂게 그려진 드레스를 나눠 주었다. 어려워 보이는 새로운 디자인을 다 옷으로 완성해줘야 했지만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하려고 하니 마음이 쿵쾅댔다.
나는 패턴 전용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 주름들을 다 당해낼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점점 흥미로웠다. 하이웨이스트에 6cm 간격으로 20개 주름을 아래위로 잡은 플리츠. 하늘하늘 소매에 셔링이 들어가고 무릎 부분에도 살짝 주름이 들어간 드레스. 허리에 자글자글 스마킹이 들어간 스타일 그리고 캐주얼한 나일론소재로 된 원피스 등등 우리 회사에 맞지 않는 처음해보는 스타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원단을 미리 셀프 색에 맞게 부분 원단만 염료로 염색한 후 다시 주름도 담당 회사에 보내서 그 사이즈에 맞게 줄어든 것을 가지고 이것저것 만들어보았다. 예전 이 회사 오기 전에 전직회사에서 하루에 몇십 개의 옷들을 호떡 찍어내듯이 후다닥 만들어낸 경험들이 인제 와서 발휘를 하는 것 같다.

미국회사는 양보다 질이 우선이라서 하루에 옷 한 벌을 만들더라도 이것저것 신경을 더 써서 최상으로 만들어주기를 원한다. 다른 원단으로 여러 번 미리 테스트 샘플도 만들어보고 무조건 염색 후 스펙에 맞는 사이즈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치수 계산도 정확하게 하고 패턴을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해야만 한다. 거듭된 수정 이후 넛치 (봉제를 위해 원단에 표시)가 빠진 것도 추가하고 패턴 라인을 더 자연스럽게 다듬어 간다.

페데리코가 오고 나서 우리는 밤낮없이 첫 미팅에 내세울 옷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3개월마다 시즌 미팅을 하는데 이렇게 많은 물량과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인을 뽑아낸 것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서 인지 구매자들과의 미팅은 성공적이었고 다음날 그는 우리 개발팀 직원들에게 탐스러운 꽃다발과 선물을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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