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간증문

by BlueVada

코로나 전에 고등부 학부모 담당을 하던 중 김경례 전도사님의 권유로 교육부 중보기도팀에 조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1달에 1-2번 정도 3부 예배 후 3층 기도방을 사랑방에 가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가서 교육부에 있는 상황들을 나누고 권사님들과 함께 기도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중보기도 시간이 토요일 오전으로 옮겨지면서 계속 그 기도 모임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그때부터 중보기도에 대한 사모와 열망이 더 생겼다.
하지만 다른 기도모임 시간은 다 주중 오전시간이어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나는 도저히 조인할 수 없었는데, 2년 전 가을 즈음 K권사님의 소개로 '수요 중보기도모임'이 수요예배시간 전에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딱 맞는 기도시간이다 싶어서 땡스기빙 후부터 함께 조인하게 되었다.
P 전도사님, H 권사님이 이끌어 주시고 교회 안에 동역자로 옆에서 든든히 지켜주시는 C 권사님과 K 권사님 덕분에 '수요 중보기도 모임'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수요일 퇴근 후 기도모임 6시까지 운전해서 가는 그 길은 때로는 회사일이 5시 정각에 끝나지 않기도 했었고, 때로는 5번 프리웨이가 꽉 막혀 있어서 전쟁터에서 적군을 향해 나아가는 심정으로 그렇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운전을 하며 매주 참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중보기도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고 기도에 대한 응답이 바로 없을 때는 내 기도가 약한 건 아닌지 중보 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할 텐데..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이 생길 때도 많았다.

또한 환우들을 위한 기도 다 보니 매주 같은 기도 제목과 같은 나용이 반복되어 기도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식어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 자신이 갖고 있던 나만의 기도들은 다 내려놓은 채 중보기도 리스트에 있는 분들을 위한 기도에 더 힘을 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 화요 사랑방 27기를 시작하고 테이블을 맡아 이끌게 됐는데 우리 테이블에 당시 중도중보 기도팀에서 6개월 동안 기도하던 K형제님이 암이 다 치유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한 테이블에서 만났을 때는 너무 감격이었다!
주님이 나에게 더 힘을 내라고 이런 사인을 보내 주시는구나 싶어서 더더욱 중보기도 참여에 날개를 달듯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하게 되었다. 중보기도 팀에 조인하고 1년이 지나는 시간을 뒤돌아 보았다. 한 해 동안 나에게 응답이 뭐가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두 자녀가 대학교 때문에 집에서 1천4백 마일부터 멀게는 2천4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어서 걱정되고 이상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 아닐까? 불안감도 있었는데 다른 분들을 위해 중보 하다 보니 어느덧 우리 아이들은 주님이 더 잘 돌봐주시고 좋은 친구들과 밝고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 주님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염려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지난 5월에 한국의 제주도에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으려다 아차 하는 순간에 낙상하고 왼쪽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경험했다. 생각보다 뼈가 심해서 부러져서 철심을 3개를 넣어서 나사로 하나하나 다 잇는 대수술을 받게 되었다. 사고당해서 정신없었지만 수술 후 한국에서는 빨리 퇴원을 시켜주지 않아서 부득이 2주 넘게 한국에 입원하며 치료해야 하는 시간 속에 있었다.
밤이 되어 캄캄할 때 주님에게 울며 기도 했었다.
‘주님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주님, 다리가 너무 아파요. 어서 이 고통을 저에게서 끝나게 해 주세요. 다리가 예전처럼 잘 붙어서 온전히 걸을 수 있게 고쳐주세요’
하지만 주님이 나를 억지로 더 눌러앉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렇게 나를 꼼작 못하게 다리까지 부러뜨려 놓으셨을까? 솔직히 그 당시는 다리가 낫지 않아서 인지 그 큰 뜻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치료 다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차를 운전해 보니 오른쪽 발로 페달 밟는 게 가능했고 풀타임 직장에 다시 복귀해서 밀린 일들을 소화해내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주님은 정말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까지의 시험을 주시는구나.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그 말씀을 묵상하며 이제는 사고가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었다. 튼튼한 오른발로 회사 안에서 스쿠터도 밀고 다닐 수 있지 않은가? 바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며 '그럼에도 날 사랑하시는'이라는 찬양이 떠 올랐다.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 내게 먼저 오셔서 내 맘을 만지시고.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 때….
주님 날 먼저 안으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모든 걸 덮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안아주시는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 부르죠.

나는 정말 아무 은사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님이 주신 큰 사랑을 조금씩 갚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봉사를 하면서 항상 능력을 더해 주셔서 봉사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동역자분들도 함께 보내주시며 나를 위해 중보 하게 해 주셨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 기도의 응답이 뼈 심줄 하나하나 신경 한줄한줄 다 새롭게 이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중보기도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기도가 가장 어렵고 남들 앞에서 하는 건 너무 떨렸었기에 계속 주님께 기도의 능력, 은사를 주십사 기도한다.
이제는 내가 왜 다쳤는지 깨달았다. 주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그리고 주님에게 내가 더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기다리시기에….
이제 왼쪽 발목뼈가 많이 붙었는지 왼발을 디뎌도 통증이 없어지고 있다. 아직 두 발로 걷기는 무리지만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기에 나 혼자 기특해한다.
주님! 제가 평생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온전하게 지켜주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