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처음 담겨오는 통은 종이로 만들어져있는데,
드라이아이스 서너 조각이 힘을 좀 내면
수분과 맞닿은 이 종이도 두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버텨낸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을 개봉하여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종이는 빳빳하던 힘을 잃고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난 그 느낌이 정말 싫었다.
거기다가
본래는 4종류의 아이스크림이 각각의 기둥을 세운 채로 자기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던 것이
높이가 낮아지고 공기와 맞닿으면서 녹기 시작할 때에는
이게 치즈케이크이 들어간 초컬릿 맛인지,
샤베트가 들어간 쿠키앤크림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형은 고약한 취미가 있었는데
정답게 아이스크림 통을 함께 퍼먹다가도 그렇게 몇 가지의 아이스크림이 제 형태와 맛을 잃어가면서 본질을 잃어가는 그 순간에 나에게 녹아 물이 되어가는 그 뭐라 부르기 애매한 그 상태의 음식을 먹으라고 시키는 게 바로 그것이다. 형은 키도 나만 하고, 덩치가 큰 것도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한 번쯤 받아버리라고 충고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지만 이상스럽게 형 앞에만 서면 나는 오랫동안 사육사에게 조련된 작은 코끼리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게다가 이 하나의 고약한 취미를 제외하고 나면 꽤나 젠틀하고,
아들 둘이 자라면서도 어머니가 큰 고생을 하지 않았다 자부할 정도로 나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나무랄 데가 없이 자라서 성인이 되도 나서도 부모님은 형을 칭찬하고는 했었다.
우수한 성적인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형은 사범대학을 졸업해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나도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출판업을 주로 하는 중견기업에 취직하게 되면서 함께 생활한지 3년 정도가 되어가는 날이었다.
남자 둘이 사는 집이다보니 1층 현관에 디지털 도어락 같은 건 달려있지 않았고,
다른 집들과는 좀 다르게 왼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은색의 난간이 달린 폭이 그리 넓지는 않은 계단을 따라 세 층을 올라가고 보면 회색의 문이 나타나는데 내가 처음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한 곳도 이 집이었다. 신식 오피스텔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듯하게 새로 지은 하숙집 같은 것도 아니어서 보증금은 1500에 월세는 35만원만 내면 되는 대학교를 다닐 때 자취방 정도만큼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 이집은 그래도 나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어서 친구 여럿을 불러 파티할 정도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거실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과 나름 창문이 딸린 두 개의 방을 갖추고 있어 미혼의 남자 둘이 살기에는 꽤나 적절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집에서 한 층을 더 올라가면 검은 색으로 된 기둥들이 세로로 촘촘하게 붙어있는 형태의 쇠문이 계단에서부터 달려있고 그 위가 주인집이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얼굴 한 번 마추칠 일이 없었고 세입자들이 생활하는 데에 특별한 간섭이 없다는 점도 좋았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공부를 못하는 아들을 일찌감치 알아본 아버지가 아들 나이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이 건물 하나를 맡기며 월세나 받아먹고 살라고 했다나 말았다나.. 믿거나 말거나 팔자좋은 놈 스토리겠거니 하고 말았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는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 그 중 한 번은 아버지도 함께였는데, 아버지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에 언제 가느냐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곤 했다. - 밑반찬도 좀 만들어두고 하셨지만 내려가고 나면 이내 냉장실에서 상해가려는 기미까지 버티다가, 냉동실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최후의 이동으 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형이 사라진 것은 이틀 전이었다.
우리가 서로 죽고 못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타의 남자형제들이 서로에게 그렇듯 소 닭보듯 지내지는 않는 편이기도 하고,
형이 워낙 말이 많아 나 혼자 가만히 있도록 두질 않다보니 별로 말할 기분이 아닌 날에도
재잘거리는 형 옆에서 몇 마디 거들다 보면 그날 하루치의 말의 방출량은 채우곤 했었는데.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형 방에 달린 창문은 내 방보다 1.5배 정도는 큰 창이라 침대에 누워 팔을 뻗으면
창문의 아래 샤시보다 손바닥이 그 하나 정도는 더 위로 올라갈 정도였는데
-내방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점이 이것이지만 이제 좋아서, 난 가끔 형한테 방을 바꿔달라 했었지.-
여름이고 겨울이고 환기한답시고 자주 열어두던 그 창문조차 열리지 않은 채 형은
그날 그 방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음.. 연기처럼 사라지다는 말이 증명되려면,
그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은 그대로 남아있어야할 것인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 집에 있을 땐 저 충전기에 늘 꽂혀있던 놈인데
그렇다면 그걸 들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좀전까지도 방에 있던 형이 핸드폰 하나만 가지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
책상위에 저 지갑은 그대로 둔 채 말이다.
아기 울음같은 고양이 소리가 닫힌 창문을 통과해 약한 소리로
내 귀에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