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이 처음부터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난 세상에서 '형'이라는 말이 제일 싫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해도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인데,
게다가 순서상으로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무엇이든 동생보다 모범이 되어야 하고
넌 형이니까 형이니까 라는 말은 늘 내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그에 비해 동생이라는 놈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기대도 그다지 받지 않았을 뿐더러
그렇다보니 무슨 일을 하든 모범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네 공터에 놓인 누군가 밤에 내다버린 쇼파 위에서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다가
낡은 가죽이 벗겨지며 그 속에 있던 녹슨 철제 스프링이 튀어나오며
동생의 오른 발목살을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는 도려내어 피가 철철 흘렀을 때에도
뭐 그렇게 큰 꾸중을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거래처에서 받아왔다며 숨긴 귀한 술을 병 모양이 예쁘다는 이유로
가볍지도 않은 의자를 굳이 끌어다가 놓고서는
변기에 쪼르르 내려보냈을 때에도 아버지는 크게 동생을 나무라지 않았다.
쥐불놀이하면서 새로 산 옷의 소매와 아래쪽 단을 까맣게 태워먹었을 때에도,
내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친구와의 다툼에서 모서리가 날카로운 돌을 들어 기어이 친구의 이마에서 피를 보게 했을 때에도..
나로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동생에는 허용되었으며
그 일에 대한 책임도 무겁게 지우지 않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동생은 나처럼
누군가에게 '모범'이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하며 대학에 오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밖에 없었다.
난 한 가지에 특출나지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살았다.
어릴 적 꿈도 과학자였다가 변호사였다가 대통령이었다 라디오DJ였다가
중학교 때 만난 머리가 벗겨진 총각 수학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교사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 가지에 특출나지 못하다 함은 예컨대,
친구들과 농구를 할 때에 나를 자기편에 데려가겠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의 기량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걸 직업으로 삼거나 더 큰 무대에서까지 통할 능력으로 볼 것은 없었으며
노래를 좋아해서 한 때 가수를 꿈꾸기도 했었고, 고등학교 시절에 노래방 사장님으로부 나름 극찬을 받은 적도 있기는 했으나,
대학에 가서 만난 남도의 친구가 부르는 김광석 노래 한 곡을 듣고는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고는 꿈을 접기도 했었다.
중학교 때는 반대항 배구 대회의 주전 선수로 출전해서 우리 반이 전교 우승을 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배구에 익숙치 않아 나는 서버로서 그저 네트를 넘기는 서브를 성공적으로 넣기만 했는데 이걸 아무도 받지 못해 서브로만 거의 한 세트를 마무리하는 기염을 토했던 지경이니 이걸 운동에 대한 내 천부적인 소질로 받아들일 순 없다.
결국 내게 마지막으로 남게 된 건 그나마도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좋은 결과를 만날 수 있었던 공부라는 녀석이라서,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 물에 발을 담궜던 것인데,
부모님과 심지어 동생마저도
내가 선생질하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바라왔고,
태어나길 교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걸 보면 속으로는 피식거리긴 해도,
또 굳이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니 뭐..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난 그래도 말의 빈도가 높은 편이기는 한데,
솔직히 말하면 난 말하는 것이 참 싫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말을 하는 순간은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함께 있을 때 뿐인데,
우리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조차도 이 사실을 잘 모른다.
난 혼자 있을 땐 결코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걸.
그 공간 속의 존재가 나 혼자일 땐 난 온전히 고독하게 나 혼자이고 싶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끝없이 재잘거리는 이유는,
그 말이라는 매질이 없어지게 되면
다른 존재와의 사이에 채워진 그 공기의 밀도가 점점 낮아지고,
산소포화도가 점점 떨어져서 결국은 질식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데,
태생적으로 내가 서 있는 위치의 색깔이 검은색보다는 흰색에 가깝다보니,
주변인들에게 난 그저 밝고 재잘거리는 수다쟁이로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동생녀석은 지금껏 함께 자라오면서도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말이 별로 없는 녀석인데,
나의 이 재잘거림에 어쩔 수 없이 몇 마디를 거들어주는 정도로
자기 딴에는 그래도 나와이 대화에서 꽤나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이 동생과의 대화 역시도 본질적으로 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은 적은 없는데,
최근에 문득 이런 고민이 시작되었다.
원치도 않는 상황에서의 그 말들로 그 공기들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억지로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
만약에만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을 반드시 채워야만 하는 것이라면,
별 시덥지도 않은 이런 저런 수사들이 떠다니는 복잡한 언어체계로 이루어진 사람의 말보다는,
개나 고양이들이 서로 주고 받는
예컨대, 컹컹이나 크르르.. 또는 니아옹이나 애애앵 정도의 의성어를 사용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동생과 함께 살게 된 집의 내 방 침대 옆에 달린 커다란 창문을 넘어
아기 울음 소리 같은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