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개미와 코스트코, 그리고 '확신'의 함정

알고리즘 시대에 우리가 '꿀팁'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

by 로벤

개야미 불개야미 잔등 똑 부러진 불개야미 앞발에 정종 나고 뒷발에 종기 난 불개야미 광릉 샘재 너머 드러 가람의 허리를 가로물어 추혀 들고 북해를 건넌단 말이 이셔이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소서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


등이 부러지고 발에는 종기까지 난 병든 개미가, 호랑이의 허리를 물고 바다를 건넜다니. 이 얼마나 허황된 무용담인가. 이 시조가 창작된 조선 후기는 그야말로 '가짜 뉴스'와 '카더라 통신'이 횡행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화자는 간절하게 호소한다. "님이시여! 세상 사람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제발 님께서 이성적으로 잘 판단해 주십시오."


교실에서 아이들과 이 작품을 수업하며 우리는 씁쓸한 공감을 나누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쏟아지는 것은 조선 후기나 2025년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아니, 스마트폰이라는 확성기를 가진 지금이 훨씬 더 위험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적은 '알고리즘'이다. 유튜브와 SNS는 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끊임없이 배달해 준다. 그 안락한 정보의 편식 속에 있다 보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좁은 세상이 '진짜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된다.


소설이자 영화인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확신이다. 끝없는 의심,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생활에서도 필요한 자세다."


나는 그 문장에 깊이 공감하며 밑줄을 그었다. '그래, 의심해야지. 함부로 확신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했던 나였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눈을 반짝이며 엄청난 꿀팁을 알아냈다며 다가왔다.


"여보, 코스트코 푸드코트에 줄 설 필요가 없대! 전직 직원이 쓴 글을 봤는데, 계산대에서 물건 계산할 때 떡볶이든 피자든 같이 주문하면 바로 나온다는 거야!"


나는 무릎을 쳤다. "와, 이걸 여태 모르고 살았네! 역시 정보가 힘이야."


<콘클라베>의 교훈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그날 저녁 우리 부부는 위풍당당하게 코스트코로 향했다. 카트에 물건을 담고 계산대 앞에 섰다. 나는 '남들은 모르는 꿀팁을 아는 스마트한 소비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계산원분께 정중히 물었다. "혹시... 여기서 피자나 떡볶이 같은 것도 주문할 수 있나요?"


돌아온 대답은 짧고 명료했다.

"주문하실 수 없습니다. ^^"


순간 정적.

겸연쩍은 표정으로 "아, 네..." 하고 물러서는 우리 부부에게 계산원분이 쐐기를 박는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참, 그리고요... 그거 잘못된 정보예요. 인터넷에 잘못 퍼졌더라고요."


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꿀팁'이라는 게시물 하나 때문에 전국의 코스트코 계산원들이 얼마나 같은 질문을 받았을까? 그때마다 "그거 안 됩니다"라고 해명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으리라. '호랑이를 물고 간 개미'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비웃었던 내가, 정작 현실에서는 '계산대에서 주문되는 떡볶이'라는 헛소문을 철석같이 믿고 호랑이(계산원) 앞에 들이댄 꼴이다.


인터넷에 횡행하는 정보들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더 괜찮은 안목을 길러야 한다. "좋아요"가 많이 눌린 글이라고 해서 진실은 아니다. 내가 믿고 싶은 정보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해 보는 '의구심'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의 님에게도, 그리고 코스트코 계산대 앞의 나에게도 필요한 건 바로 그 '짐작(이성적 판단)'하는 힘이었다.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불개미의 헛소문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안목을 가진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근데 솔직히, 계산대에서 떡볶이 주문되면 편하긴 할 텐데. 아쉽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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