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양념장
내가 여섯살 되던 해에 만두 가게를 시작하신 부모님은,
내 나이 스물여섯살 때까지 이십년 간 그 일을 하셨다.
개업하던 그날 어린 나와 내 동생은 대구 이현동에 있는 외가에 맡겨졌는데,
밭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나는 대형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먼 거리를 공중으로 띄워져, 땅에 구르는 동안에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사고 장면을 목격한 이들은 '저 아이는 분명히 죽었다'라고 생각했다는데,
이건 외할머니도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이셨고..
기적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 나는,
3개월 정도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곰탕 열심히 먹으며 통통하게 퇴원을 했다.
현장에 있었던 내 남동생은 그날의 충격으로,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혼자 잘 잠들지 못했고,
할아버지나 내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나서야 잠이 들곤 했었다.
문득 부모님과 만두 가게 생각이 난 것은,
오늘 멸치국수를 먹다가였다.
작은 딸아이의 학원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걸 중간에서 만나,
나와 아내는 함께 동네 멸치국수집으로 향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던 곳이라
기분 좋게 멸치국수, 비빔국수, (작은 아이가 먹을) 쌀국수를 주문한다.
국수가 나오기 전 아내가 작은 종지그릇에 양념된 단무지와 김치,
그리고 청양고추로 만든 양념장 같은 걸 담아왔다.
비빔국수를 몇 젓가락 먹다가, 아내가 먹던 멸치국수를 작은 그릇에 옮겨담고,
청양고추 양념장을 적당히 넣어서 풀어 먹으니 그 맛이 아주 훌륭하다.
인공적인 매운 맛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칼칼함이 좋아 후루룩거리며 국물도 함께 먹었다.
그러다가,
어머니 생각이 났다.
부모님이 하셨던 만두 가게는 1년에 딱 이틀만 쉬었다.
설 당일과 추석 당일.
나머지 363일은 모두 문을 열고 일하셨다.
손님 많이 오면 힘들다고 투덜거리시던 철없던 아버지와는 달리
억척에 억척을 더한 어머니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손님들을 모두 잘 응대하면서 그렇게 가게를 꾸렸다.
먹는 장사라 손에 들어오는 돈이 적지는 않았지만,
워낙 가난하게 시작한 결혼생활이라 아버지 어머니는 끔찍이도 절약을 하셨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있던 방은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불을 꺼두어 늘 어두웠고,
꼭, 꼭,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보일러를 잘 돌리지 않아서 또 추웠다.
그래도 한두달에 한 번 정도는 한일극장 근처에 있던 돼지갈비집 - 대왕갈비 - 에서 갈비를 먹곤 했는데,
부모님와 나, 동생 그리고 가게일을 도와주시던 할아버지까지 다섯 명이 심야의 택시 한 대에 몸을 구겨넣고 다녔다.
석쇠에 구워주는 그 고기 참 맛있었는데...
아주 특별했던 어느날 두류동에 있던 소불고기집을 딱 한 번 간적 있었다. 가게 이름은 '오륙도'
가끔 먹었던 돼지갈비만 해도 꿀맛이었는데,
귀하디 귀한 소불고기전골을 먹었으니 그 맛이 어땠을까.
1인분에 가격이 돼지갈비의 몇 배는 되는 소불고기는 처음 주문했던 것들이 빛의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허겁지겁 제대로 씹지도 않고 - 씹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녹았으니까 - 고기를 넘겼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아버지 어머니는 고기 몇 점이나 드셨을까?
국물만 남은 불판을 보면서 나와 동생은 고기를 더 먹자고 졸랐다.
우리는 그날 고기를 더 먹지 못했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부모님은 그때 이야기를 꺼내곤 하신다.
미안했다며...
그때 솔직히 돈이 아까워서 그 고기 몇인분을 더 시켜주지 못했다고...
소불고기 1인분을 주문하려면 만두를 몇 판을 팔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해,
그렇게 나와 동생을 달래고 설득하면서 데리고 나오셨다고 말이다.
뭘 그런 걸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나와 동생은 타박을 했는데,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18년쯤 전의 일이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어머니가 내 자취방에 오신 적이 있었다.
학교 근처에 유명하고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어서 그리로 모시고 갔었다.
그집은 별도의 양념장을 주지 않던 집이었는데,
대구에서는 당연히 양념장을 넉넉하게 넣어먹던 나도 그냥 경기도 올라와서 생활하면서는 없는 걸 기본이라 생각하고 먹곤 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막 나온 칼국수를 앞에 놓고 어머니는,
"야야~ 여 양념장은 엄나? 양념장도 없이 칼국수를 무슨 맛으로 묵노? 여 양념장 쫌 돌라 캐라!" 하시며,
주방쪽으로 가시려고 했다.
나는,
"에헤이~ 여기는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드시이소 쫌!"
하면서 역정을 내고는 결국 양념장 없는 칼국수를 드시게 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촌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오늘,
멸치국수에 청양고추 양념장을 넣다보니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날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아... 그때 그냥 어머니 말씀대로 양념장을 좀 달라고 할 걸 그랬다. 그럼 얼마나 더 맛있게 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날의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저릿하게 생각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직장에서도 좀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
또 대구를 떠나 이제는 타향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지면서
조금씩 부모님께 무뎌지고 무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안부전화 그거 자주 드리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일단 전화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