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거창한 다짐 대신 깨끗한 그릇 하나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떡국 두 그릇보다 배부른 마흔 중반의 새해

by 로벤


2026년의 해가 떴다. 어릴 적에는 2000년만 되어도 핵전쟁으로 세상이 멸망을 할 줄 알거나, 또는 하늘이 회색빛이 되어 사람들이 방독면을 쓰고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나는 살아있고,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 자동차가 하늘을 막 날아다닐 거라 생각도 했었는데 아직은 도로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 그리고 두 딸과 함께 떡국을 먹었다. 이제 중학생 티가 완연한 큰딸과 여전히 아기 같은 막내. 아이들은 "와!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며 떡국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신나 하지만, 나와 아내는 국물만 깨작거렸다. 이미 물리적으로 충분히 배부른 나이를 먹고 있어서인지, 떡국 속의 떡 하나 삼키는 것도 왠지 모르게 목이 메는 기분이다.


식사가 끝나고 익숙하게 고무장갑을 꼈다. 떡국 먹은 그릇은 설거지하기가 까다롭다. 떡의 전분기가 그릇에 딱 달라붙어, 뜨거운 물에 충분히 불리지 않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문득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덕지덕지 붙은 걱정과 책임감들은 찬물로는 잘 씻기지 않는다. 시간을 들이고, 온기를 들여야 겨우 닦여나간다.


20대, 30대 때는 새해 첫날이면 다이어리를 펴고 비장한 각오를 적어내려갔다. '제2외국어 마스터하기', '몸짱 되기', '투자 대박 나기'. 하지만 마흔 중반을 넘어서니 안다. 그런 거창한 다짐들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해로운 일임을, 그런 목표들이 때로는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나쁜 의미의 채찍질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올해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주 심플한 다짐 하나만 싱크대 위에 올려둔다.


"밥 먹으면 바로 설거지하기."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닦아내겠다는 뜻이다. 오해가 생기면 묵히지 않고 바로 풀고, 고마운 마음이 들면 재지 않고 바로 표현하고, 나쁜 감정이 생기면 굳어버리기 전에 털어내겠다는 다짐. 인생의 대박을 꿈꾸기보다, 내 앞에 놓인 하루치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한 해가 될 거라 믿으면서.

설거지를 마치고 뽀드득 소리가 나는 그릇을 건조대에 올린다.


2026년, 내 인생의 그릇에도 떡국 국물 같은 끈적한 고민들이 묻겠지만, 뭐 어떤가. 다시 닦으면 그만인 것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새해 식탁이 따뜻하기를. 그리고 그 뒷정리가 너무 고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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