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20200426)

박시백, 41살 아빠와 9살 딸이 함께 읽다.

by 로벤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딸과의 대화를 기록하다. #1


학창시절의 내게 역사는 암기과목이었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연도와 갑오개혁이 일어난 연도, 아관파천이 일어난 연도 등을 외우는 일이 역사- 이 당시에는 과목 이름이 '국사'였다. - 과목의 본질로 이해되었던 듯 하다.

교과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내게 그냥 사건과 일어난 해를 연결시키는 이 작업은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 성가시면서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일이라 역사는 내게 그냥 하나의 '과목'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큰딸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지금까지 역사와 관련해서는 읽은 책이 꽤 되는 편이다. 읽기를 워낙 좋아하는 딸에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일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아동문학 책들을 읽는 것이고 -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꽤 두꺼운 책들도 단숨에 읽곤 한다. - 다른 하나는 역사와 관련된 책들 읽기인데 이건 아직 긴 줄글을 읽기는 무리가 있을 듯 하여 현재는 만화로 된 책을 읽고 있다. How so? 의 역사 파트 책 전집을 가지고 재미나게.


최근에 우연히 막내를 제외한 온 가족이 - 막내는 이제 받침 없는 글자들을 꽤 읽어나가기 시작하는 중이다. -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학교 도서관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책이 거의 새것처럼 잘 보관되어있다 하여 나와 큰딸이 읽기 시작했다.

이성계와 정도전 정몽주 이방원에 이르는 조선 개국과 관련된 상식적인 이야기야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실록의 내용에 근거한, 몇 번 이름을 들어보았던 책이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책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며칠 만에 큰딸은 10권, 나는 11권까지 읽게 되었는데,

오늘밤에는 아예 선조와 임진왜란, 그리고 이순신이라는 주제로 침대에 함께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9살 밖에 되지 않은 딸과 역사 이야기로 잠자는 시간을 기다리는 날이 오다니 참.. 며칠 전에는 딸이 신나게 읽고 있는 이 실록이라는 것을 포함한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때로는 축소, 과장 더 심하게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조차도 포함하고 있는 이야기에 실망한 아이를 위로해주어야 하는 상황까지도..


겸사겸사 기회를 삼아 조선왕조실록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41살 아빠와 9살 딸이 함께 읽으며 생각나는 것들에 대한 기록. 성인과 아이가 같은 책을 읽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것들을 적어두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제대로 된 계획은 조선의 개국부터 다시 함께 읽으며 한 권이 끝날 때마다 해당 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정리해볼 생각인데, 일단은 오늘 밤에 나눈 임진왜란과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임금의 대명사로 임진왜란 때의 선조와 병자호란 때의 인조를 흔히들 말하곤 하지만, 선조를 먼저 말하자면 이정도로 무능하고, 이정도로 무책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나서도 10년 이상을 왕위에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이순신에 대한 질투와, 자신의 아들인 광해군에 대한 질투 그리고 전쟁에 임하는 태도에서 자신과 상반된 태도를 보였던 수많은 의병장들에 대한 홀대만으로도 이미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전쟁 중에 보여준 모습들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딸의 입에서 '선조 임금만 아니었어도...'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고 말았다.


오늘 딸이 궁금해했던 것은 임진왜란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일본이 우리나라를 먹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일본은 섬나라고 우리나라는 대륙에 딸려 톡 튀어나온 나라인데, 아무리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한들 우리나라 땅을 떼서 자기네 섬에 붙일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다운 발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다는 이 상황은 꽤나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이를 이해시키고자 설명을 해주었다.


군사들이 침략을 하고, 우리 군사가 도망을 가고 남아있는 백성들을 많이 죽여 굴복시킴으로써 그 지역을 자신들의 지배 하에 두는 과정을 알아들을만한 말로 다시 풀었더니 곧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이어서는 선조는 정말 나쁜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 이순신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큰딸은 이어나갔다. 그래.. 이순신은 광화문 광장에 어마어마한 크기로 동상이 세워질만큼 대단한 인물이지... 라고 쓰고 있지만 사실 나도 이순신에 대해 어지간한 것들은 알고 있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가 했던 전투의 무게를 책을 통해 다시금 느끼고 나니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수만 혹은 수십만의 군사들이 부딪히는 큰 전쟁에서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한글이 아닌 일본어로 대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순신이야 사실 위인전도 어릴 때부터 읽었고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감사함은 수 백 번도 더 표현했겠으나 이순신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왜란의 전황을 낱낱이 알고 보니 끔찍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2026년, 거창한 다짐 대신 깨끗한 그릇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