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척 오랜만에 뷔페를 가서,
그간 잘 먹지 않았던 탄산도 실컷 마시고,
애슐리에 새로 나온 메뉴라는 갈릭어쩌고 치킨 맛도 보고
샐러드바를 이용할 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것이 꽤 성가시긴 했으나,
딸래미들 젤리 먹방하는 것도 보면서 즐거웠던 시간.
집에 돌아오고 보니 지난밤에 약간 삔 것처럼 불편감이 느껴졌던 오른쪽 발목이
조금 신경이 쓰여서 예전에 병원서 받아온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는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발목 통증이 꽤 커져있었다.
발목 통증이야 최근 몇 년 간 꾸준히 있었던 일이라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넘기려다가 문득, 통풍 증상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급성통풍이 왔을 때 먹을 약은 미리 좀 넉넉하게 받아놓은 상태라,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는 약을 먹고 출근했다.
불편감이야 계속 느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걸을만한 상황이 되고 보니,
아침에 약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긴 지난번에는 아무 조치도 못하고 한 2-3일 고생하다가 4일째에는 걷지 못할 정도로 발목이 아파
정형외과에서 주사를 맞은 적도 있었더랬지.
이리저리 검색해본 결과 통풍은 엄지발가락 관절 부분, 발등, 발목 등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고 하니,
별생각없이 먹은 그 약이 주효했던 것이리라.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 것이,
최근에 암 확진 후 수술도 받고, 병가도 쓰고 난데없이 닥친 통풍 때문에 엄청난 고생도 하고 보니
통증이라거나 질병 등에 대한 내 생각이 좀 많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 나는 감기만 걸려도, 어디가 좀 다치기만 해도
내 몸이 왜 이런 것인가에 대한 스트레스는 무척 크게 받는 편이었는데,
오늘만 해도 꽤 아프면서도
'뭐 이정도면 그래도 걸을만은 하네. 약 먹었으니 좋아지겠지 뭐'
라는 생각이 꽤 큰 정신적 육체적 위안이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보니,
학교에서의 일들도 재미있고, 의미있게, 활발하게 잘 풀려나갔고
조퇴하려던 일정을 바꿔 퇴근 시간까지 수업 준비를 하는 과정도 좋았고,
퇴근 후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는 길에도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
삑삑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데,
늘 그랬듯 딸 둘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마냥 나를 반겨주었는데
또 하나 나를 반겨야 하는 아내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거실로 들어오고 보니,
아내는 불도 켜지지 않은 큰방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얼마 전에 했던 건강검진 결과지였는데,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검진 결과 중에 안과 검사 중 하나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유전질환에 실명을 하게 되고, 약도 없으며... 뭐 이런 류의 검색 결과가 나왔다며
절망적인 표정을 한다.
일단 병원에 가서 추가 검사와 확인을 해보자는 내 말에 마지못해 일어선 아내.
이미 두 어깨는 축 늘어질대로 늘어져있다.
가는 길에 생각한다.
나라도 어찌 아니 놀랐겠냐마는,
솔직히 만에 하나 실제로 아내가 실명을 하게 된다 해도,
어쩔 거냐고. 우리 가족은 그대로 살아갈 것이며 관계가 변할 것도 없고,
만약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그런 것이지 뭐.
내가 벌면 되고, 지방으로 이사를 가든 어떻든 우리의 삶의 겉모습이 변하기는 하겠으나
약이 있으면 치료를 받고, 수술이 필요하다면 하면 되는 것.
최근 몇 달 간의 경험들이 나를 조금은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 같단 생각에 안도감도 들었다.
초긴장 상태로 안과에 들어서 검사를 받고, 의사와 상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20분이 되지 않았는데,
진료실 문이 열리고 나오는 아내의 표정으로 이미 짐작이 되었으나,
천만다행히도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한다.
유전적 영향으로 결손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라 질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세상이 이렇게 밝은 곳이었냐며 재잘거린다.
맛있는 오니기리와 메밀국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강해지고, 마음이 건강한 것이 정말 중요하단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날이다.
몸의 병은 약과 수술이 있지만, 마음은 그런 것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