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설거지는 인생

by 로벤

신혼 시절, 나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삶은 축제고 모험인데, 아내는 늘 "삶은 원래 재미없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건조해서 싫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울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없는 세상이니까 우리가 재밌게 놀아야 한다며 내 엉덩이를 걷어차고 도망가는 사람이었다.


마흔 중반이 되어 설거지를 하며 깨닫는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가 고프고, 그릇은 더러워진다. 이 무한한 도돌이표. 삶은 사실 거창한 드라마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시트콤이거나 다큐멘터리다. '특별할 것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역설적으로 모든 순간이 애틋해졌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낡은 티셔츠를 입은 아내의 뒷모습, 아이의 웃음소리. 특별하지 않아서, 너무나 평범해서 눈물겹게 소중한 것들.


아내는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흰 쌀밥이 아무 맛도 안 나는 것 같지만, 씹을수록 가장 달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그 슴슴한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설거지의 진짜 마지막 단계는, 모든 그릇을 닦아 건조대에 올려놓은 ‘이후’에 찾아온다. 바로 음식물 찌꺼기가 걸린 배수구 거름망을 비우고, 여기저기 물이 튄 싱크대 상판을 마른 행주로 닦아내는 일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과정이 꽤 귀찮을 때가 많았다. ‘그릇 다 닦았으면 됐지. 어차피 내일 또 더러워질 텐데 거름망까지 닦아야 해?’ 이미 주인공인 그릇들은 깨끗해져서 무대 위로 올라갔는데, 굳이 텅 빈 무대 바닥까지 닦아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 마지막 단계를 거치지 않은 설거지는 ‘미완성’이라는 것을. 설거지의 목적이 단순히 그릇의 위생을 위한 것이라면 식기세척기에게 전적으로 맡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매일 밤 고무장갑을 끼고 이 자리에 서는 이유는, 설거지가 내 마음을 비우고 닦아내는 ‘수행(修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수행은 두 가지 핵심적인 의식으로 완성된다.


첫 번째는 ‘비움’이다. 나는 배수구 뚜껑을 열고 거름망을 꺼낸다. 그 안에는 오늘 우리가 먹고 남긴 적나라한 흔적들—라면 국물에 불은 파 조각, 생선 가시, 엉겨 붙은 고춧가루—이 축축하게 엉겨 있다. 보기에 좋지 않고 냄새도 난다. 하지만 이것을 비우지 않으면 물은 내려가지 않고, 부엌에는 썩은 악취가 진동하게 된다. 나는 거름망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거꾸로 들고 탁탁 털어 넣는다. ‘탁, 탁.’ 그 경쾌한 소리에 맞춰 내 마음에 낀 찌꺼기도 같이 털어낸다. 오늘 교무실에서 느꼈던 묘한 소외감, 수업 시간에 딴짓하던 아이를 보며 느꼈던 무력감, 퇴근길 꽉 막힌 도로에서 치밀어 올랐던 짜증, 그리고 과거의 아픈 기억들까지. 내 마음을 막고 있던 그 눅눅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다. ‘다 지나간 일이다. 비우자. 털어버리자.’ 거름망이 깨끗하게 비워져야 물이 시원하게 빠져나가듯, 마음의 찌꺼기를 비워내야 내일 새로운 감정이 흐를 수 있다. 비움은 채움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준비다.


두 번째는 ‘닦음’이다. 거름망을 씻어 다시 끼워 넣고, 나는 마른 행주를 집어 든다. 개수대 주변에 흥건한 물기를 훔쳐내고, 수전에 묻은 얼룩을 문질러 닦는다. 스테인리스는 정직하다. 문지르면 문지르는 대로 본연의 광택이 살아난다. 조금 전까지 전쟁터 같았던 싱크대가 거울처럼 반짝이는 순간, 내 마음의 무대도 깨끗하게 정돈된 기분이 든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하루가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됐다. 오늘 하루도 잘 털어냈다.”


나는 부엌의 불을 끈다. “탁.”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을 지나며 뒤를 돌아본다. 식탁 위의 작은 조명 하나가 켜진 부엌, 그 아래서 은은하게 빛나는 깨끗한 싱크대. 그 고요하고 정갈한 풍경을 바라볼 때의 평화로움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것은 단순히 청소가 끝났다는 개운함을 넘어, 내일 아침의 나를 위해 가장 깨끗한 ‘빈칸’을 마련해 두었다는 안도감이다.


이 길고도 사소한 이야기의 시작은 “왜 나는 설거지를 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이었다. 아내가 물었고, 때로는 나 스스로가 물었다. 매일 반복되는 이 지루한 노동 속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나의 작은 부엌, 그 싱크대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는 흐르는 ‘시간’을 만났고, 만두 가게의 ‘역사’를 만났으며, 깨지고 붙으며 단단해지는 ‘관계’를 배웠다. 때로는 삶을 관조하는 철학자가 되었고, 때로는 반성하는 아이가 되었으며, 소소한 행복을 줍는 수집가가 되었다.


결국 ‘설거지를 하는 삶’이란, ‘살아가는 삶’과 동의어였다. 매일같이 어질러지는 싱크대처럼, 우리의 인생도 매일같이 어질러진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고, 사소한 오해로 관계가 얼룩지며, 후회와 실망의 찌꺼기들이 쌓여간다.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밥을 먹으면 그릇이 더러워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중요한 건, 그 어지러움을 외면하지 않고 매일 밤 자신의 손으로 기꺼이 닦아내는 태도다. 완벽하게 깨끗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더러워질 것을 알면서도, 내일이면 또다시 기름때가 낄 것을 알면서도, 오늘 밤 묵묵히 다시 닦아내는 그 꾸준한 회복력. 그 반복되는 행위 속에 삶을 지탱하는 진짜 위대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믿는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넘어가겠지만, 나의 설거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일도 우리 가족은 밥을 먹을 것이고, 그릇은 더러워질 것이며, 나는 또다시 싱크대 앞에 설 테니까. 그 반복이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배우고, 느끼고, 성장할 테니까.


독자 여러분의 부엌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오늘 밤, 당신의 싱크대 앞에는 어떤 그릇들이 놓여 있고, 당신은 어떤 생각과 함께 그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부디 이 책을 덮고 난 뒤, 당신이 마주할 설거지의 시간이 억지스런 노동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 이제 나도 밀린 설거지를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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