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gazine WEAVE Dec 21. 2022

손끝 입술

글. 늘윤


 전 국민 스마트폰 보급률 97%의 시대. 우리는 손바닥만 한 작은 기계를 통해 갖은 편의를 누린다. 이 추운 겨울날,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핸드폰만 있으면 모든 게 단박에 해결된다. 바야흐로 스마트폰 사이보그이자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손에 쥔 신인류)의 시대이다.


 사이보그가 된 사피엔스들은 어떻게 말할까. 데카르트적 공간에서는 인간이 늘 그래왔듯, 혀와 입술과 치아로 조음하여 말한다. 하지만 목소리로 소통할 수 없는 디지털 공간에서는 자판 위 손가락으로 말한다. 0과 1의 구어체는 나이·세대·성별 등 여러 인구 특성에 기반해 개성적으로 존재한다. 그중 젊은 사이보그 사피엔스에게서 두드러지는 언어 습관은 ‘인터넷 밈’이다.


 인터넷 밈이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재미난 시청각 콘텐츠 혹은 신조어를 의미한다. 특히 신조어의 경우,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커뮤니티’에서 발원한 경우가 많다. 한번 만들어진 새말은 인기가 시들해질 때까지 커뮤니티의 은어이자 유행어로써 게시글과 댓글을 통해 반복 사용된다(사라지지 않고 표제어처럼 오래도록 널리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인터넷 밈은, 즐겨 쓰는 해당 집단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대표한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젊은 사이보그들의 밈은 ‘알빠노’와 ‘누칼협’이다. 알빠노는 ‘타인의 사정을 내가 알 바냐?’라는 뜻이고 누칼협은 ‘네가 그런 선택을 하도록 누가 칼로 협박했냐?’라는 뜻이다. 타인에 대해 냉소적인 두 신조어는, 나와 타자를 철저히 분리해 사회 문제로의 확장 가능성을 저해한다. 무엇이든지 간에 ‘네 탓’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므로. 손쉽게 손끝에서 뱉어진 알빠노와 누칼협은 자유주의-능력주의 신화 속 끝없는 경쟁에 지친 오늘날, 피로한 청년들을 집어삼킨 ‘불공감’의 상징인 셈이다.


 알빠노와 누칼협은 한나 아렌트의 ‘언어규칙’을 떠올리게 한다. 언어규칙은 ‘악의 평범성(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누구든 역지사지하지 않는 사유의 무능성으로 인해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의미)’을 빚어낸 나치의 도구이다. 아렌트는 ‘살인’을 ‘안락사 제공’으로 바꿔 표현한 나치의 언어규칙이 ‘살상과 거짓말에 대한 그들의 오랜 정상적 지식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서술한다.


 인터넷 밈과 언어규칙은 닮았다. 역지사지의 사유를 짓뭉갠 언어규칙처럼, 인터넷 밈은 조롱·희화화된 고정된 이미지로써 타자를 바라보게 한다. 타인 없는 언어는 커뮤니티 이용자 간에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불공감’의 습관을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밈의 남용은, 사용자의 보편적인 공감 능력과 도덕을 마비시키고 타자 또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주체임을 잊게 한다.


 절대적인 악 대신 ‘악의 평범성’, 즉 사유의 무능성을 조명한 아렌트의 철학은 타자를 생각하지 않음이 어떤 참극을 초래했는지 똑똑히 목격한 결과이다. 일자리, 노후, 심지어는 인구 없는 국가의 존망까지. 모든 게 불확실한 오늘날 개인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따라서 쉽게 피로해진다. 만성적인 피로에도 쉴 수가 없어, 자신의 안위와 무관한 타인에게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아렌트는 다원성(타자)이 위태로울 때, 역지사지와 깊은 성찰로 멈출 수 있노라 말했다. 사유의 무능성이 범람하는 시대. 인터넷 밈으로 말하기에 앞서, 배제되는 누군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알빠노와 누칼협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가장 위대한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