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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azine WEAVE Dec 21. 2022

가장 위대한 그릇

글. 노을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발달한 언어중추와 특수한 인두, 후두의 구조로 인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기질적 배경을 갖고 있다. 뇌에서 전두엽에 있는 브로카 영역은 언어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우성반구의 해당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실어증에 걸리게 된다. 즉 이 영역은 언어기능 영역과 운동 영역을 연결하여 말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후두, 입안, 혀, 연구개의 근육들과 호흡근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적절하게 자극되어 마침내 소리가 만들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발성기관의 구조 또한 차별점을 가진다. 후두에 있는 성대 덕분에 소리를 낼 수 있고 인두가 긴 덕분에 다양한 음을 낼 수 있으며 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여러 가지 발음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특징을 발판 삼아 인류는 다양한 ‘언어’와 이를 도식화 혹은 구체화한 ‘문자’를 발명했다. 즉 다시 말해 세상에 대한 관찰과 주체적인 사유를 담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그릇인 ‘언어’가 인류사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언어’로 인해서 인간의 사유반경은 매우 넓어졌다. 먼저 바로 옆에 있는 동료에게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흥미롭고 탐험적이었으나 한 개체의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였던 각양각색의 생각이 발산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날씨와 풍경에 대한 일차원적인 감상, 자신의 생리 상태에 관한 자각감, 주변 동료에게 느껴지는 감정표현 등이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더 나아가 사피엔스는 사유반경을 동시대에서 벗어나 시차원에서의 종적 확장을 시도한다. 비로소 ‘문자’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세상에 관한 이해 정보를 후손에게 전달해줄 수 있었다. 인체의 온 감각으로 세계를 느끼고 이에 관한 소감을 신경가소성과 함께 휘발시키지 않고 ‘문자’를 통해 정교하게 저장해나간 것이다. 육체적 특징만 두고 보았을 때 인간은 타 영장류에 비해 연약한 개체이다. 그런데도 인류가 지금의 호화로운 문명을 이룩한 것은 사유의 ‘종적 확장’을 가능케 할 매개체를 발명해놓았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에 있어서 일종의 지름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오랜 시간 발전되어 오면서 우리는 넘쳐나는 ‘활자’에 매몰되고 있는 듯하다. 태어나서 세상을 마주하지 못하고 세상을 담은 ‘그릇’만을 마주하고 있는 현시대의 지성인들에게 세상은 오히려 낯선 것만 같다. 정보의 생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미 축적된 정보만 포함하더라도, 한 개인이 접할 수 있는 비율은 보잘것없이 낮다. 세상을 표현하고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인데, 지금은 ‘언어’를 통해 다른 ‘언어’를 보고자 몸부림친다. 이 무한한 순환의 굴레에 빠진다면 세상을 간접적으로만 본 채 끝내 ‘그릇’에 갇히고 말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 ‘언어’는 다음 문장 혹은 추상적으로나마 존재하는 머릿속 허상을 지칭하고 있지 않다. ‘언어’가 표현하고 있는 ‘세상’ 그 자체의 주목해야 한다.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펼쳐진 나만의 ‘세상’을 나의 ‘언어’ 속에 담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발달한 언어중추와 특수한 인두, 후두의 구조로 인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기질적 배경을 갖고 있다. 뇌에서 전두엽에 있는 브로카 영역은 언어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우성반구의 해당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실어증에 걸리게 된다. 즉 이 영역은 언어기능 영역과 운동 영역을 연결하여 말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후두, 입안, 혀, 연구개의 근육들과 호흡근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적절하게 자극되어 마침내 소리가 만들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발성기관의 구조 또한 차별점을 가진다. 후두에 있는 성대 덕분에 소리를 낼 수 있고 인두가 긴 덕분에 다양한 음을 낼 수 있으며 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여러 가지 발음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특징을 발판 삼아 인류는 다양한 ‘언어’와 이를 도식화 혹은 구체화한 ‘문자’를 발명했다. 즉 다시 말해 세상에 대한 관찰과 주체적인 사유를 담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그릇인 ‘언어’가 인류사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언어’로 인해서 인간의 사유반경은 매우 넓어졌다. 먼저 바로 옆에 있는 동료에게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흥미롭고 탐험적이었으나 한 개체의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였던 각양각색의 생각이 발산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날씨와 풍경에 대한 일차원적인 감상, 자신의 생리 상태에 관한 자각감, 주변 동료에게 느껴지는 감정표현 등이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더 나아가 사피엔스는 사유반경을 동시대에서 벗어나 시차원에서의 종적 확장을 시도한다. 비로소 ‘문자’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세상에 관한 이해 정보를 후손에게 전달해줄 수 있었다. 인체의 온 감각으로 세계를 느끼고 이에 관한 소감을 신경가소성과 함께 휘발시키지 않고 ‘문자’를 통해 정교하게 저장해나간 것이다. 육체적 특징만 두고 보았을 때 인간은 타 영장류에 비해 연약한 개체이다. 그런데도 인류가 지금의 호화로운 문명을 이룩한 것은 사유의 ‘종적 확장’을 가능케 할 매개체를 발명해놓았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에 있어서 일종의 지름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오랜 시간 발전되어 오면서 우리는 넘쳐나는 ‘활자’에 매몰되고 있는 듯하다. 태어나서 세상을 마주하지 못하고 세상을 담은 ‘그릇’만을 마주하고 있는 현시대의 지성인들에게 세상은 오히려 낯선 것만 같다. 정보의 생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미 축적된 정보만 포함하더라도, 한 개인이 접할 수 있는 비율은 보잘것없이 낮다. 세상을 표현하고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인데, 지금은 ‘언어’를 통해 다른 ‘언어’를 보고자 몸부림친다. 이 무한한 순환의 굴레에 빠진다면 세상을 간접적으로만 본 채 끝내 ‘그릇’에 갇히고 말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 ‘언어’는 다음 문장 혹은 추상적으로나마 존재하는 머릿속 허상을 지칭하고 있지 않다. ‘언어’가 표현하고 있는 ‘세상’ 그 자체의 주목해야 한다.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펼쳐진 나만의 ‘세상’을 나의 ‘언어’ 속에 담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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