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을 놓지 마요

by 푸른날개

손을 내리면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사이로

통통하고 보드라운 것이 거침없이 들어온다.

오른손에 가방을 들고 있으면 왼손으로,

왼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오른손으로.

때로 양손이 가득 차 있으면

조심스레 옷깃을 잡는 아이의 귀여운 손.

어릴 적 아이들은 그랬다.

그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처럼.


하지만 아이들도 한 장소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슬금슬금 손에 힘이 빠지고

어느 순간 부모의 손을 놓고

풀어놓은 강아지 마냥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다 다시금 눈에 익지 않은 곳이 나타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금세 위축되어

가장 편안한 곳,

그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손을 찾는다.


사계절이 몇 번씩 바뀌며

어느 순간부터 생활하는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마치 세상이 다 내 것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더 이상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부모의 손을 찾지 않는다.


이젠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로

구멍을 찾아서 집어넣는 고사리 같은 손이 아니라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로 커버렸다.

그만큼 아이도 자란 것이다.


지금 생각을 더듬어 보면

난 초등학교 저학년 때 벌써 부모의 손을 놓은 것 같다.

처음으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밥을 넣고,

계란하나 톡,

간장 한 스푼.

그렇게 내 인생 첫 요리를 만들어 먹고

조금씩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하나하나 주변의 일들이 익숙해지고,

그 이후로 손을 잡아본 기억이 없다.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

난 다시 부모님의 손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물론 손을 잡지 않으니 안아드릴 수도 없다.




TV에서 길을 따라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클리셰처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찾아가

혼자 사는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집밥을 먹고,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집을 나설 때면

할머니께 감사하다 인사를 전하며 손을 잡는다.

잡는 것은 여행자지만,

그 손을 놓지 않는 것은 언제나 할머니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것 마냥 눈물을 흘리신다.


손과 손을 맞잡고

그 위에 손이, 다시 또 손을 얹어

꼭 잡고 온기를 나눈다.

할머니 손의 주름과 주름 사이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을 거쳐 그 온기를 전하기 위해선

더욱더 꼭, 그리고 오랜 시간을

잡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이처럼 손을 잡는다는 간단한 행동에는,

간단하지 않은 감정이 맺혀있다.


여느 영화 속 장면과 같이

무너지는 건물 끝에 간신히 주인공의 손을 잡고

매달려 있는 사람의 애처로운 눈빛.

그 손을 누가 쉽게 놓을 수 있을까.


뜨거운 사랑이 피어난 연인의 집 앞에 서서

다음 날 다시 만날 것을 알지만,

단 몇 시간의 헤어짐이 아쉬운 애인의 손을.


병상에 누워 눈도 뜨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며 더듬더듬 가족의 손을 찾고 있는

부모의 손을.


아무래도 잡은 손을 편하게 놓을 수 있는 장면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 손은 언제나 따뜻하다.

비록 발은 차가워서 겨울이면 춥다 못해 시리지만,

손만큼은 한겨울에도 손난로만큼이나 따뜻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기에 제격이다.


지금도 문밖을 나설 때면

언제나 아내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한 손에는 아내의 손을

그리고 다른 한 손은 아이들의 손을.

내게 손이 세 개 있다면

우리 가족의 손을 모두 잡고 싶었지만,

손이 두 개뿐이라 아이들에겐

나와 아내 사이의 자리가 명당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손을 같이 잡을 수 있기에

한 번씩 번갈아 자리를 내어줄 만큼

언제나 아이들의 다툼은 치열했다.


이제는 아이가 컸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비어버린 내 한 손은

어찌할 줄 모르고 헤맨다.

더듬더듬 주변을 찾아보지만

아이는 훌쩍 커버리고

어색하지 않은 자신만의 세계로 내닫는다.

이젠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곳이 많지 않고,

새로운 곳이 있더라도

금세 적응해서 다시 이 따뜻한 손을 찾을 필요가 없다.

아직도 내 손은 따뜻하다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손이 커갈수록 내 손은 식어갔다.


난 아이들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다시 내 손을 잡을 땐 이미 다 차갑게 식고,

몸마저도 식어가는 마지막 때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간다.


아이야, 그 손을 놓치마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