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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Dec 04. 2020

내가 한때 집착했던 것

한때 내 주위에는 본받을 만한 어른이 없어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완벽할 수가 없는 대에도 그때는 왜 완벽한, 본받을 만한 인격체를 가진 어른에 대한 동경을 했던 것일까? 자가진단을 해보자면 경험의 미숙과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진단을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대에 정답이 없으니깐'이라는 이유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른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고 싶은 게으름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할 무렵부터 20대 초반까지 그것에 더더욱 집착하게 된 계기는 자라면서 관계를 맺는 어른들 중에서 욕심이 많은 어른들을 많이 만난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왜 어른들은 욕심이 많은 것일까. 엄마는 돈을 쫓는 삶을 살지 말라고 하던데. 엄마를 제외한 많은 어른들은 돈 때문에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돈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까지 추악할 수가 있는구나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더더욱 이상적인 어른을 찾게 되었다.


욕심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욕심이 있어야 인간이든 사회든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보다 나아지려고 하는 욕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역량의 발전 또는 경제적인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중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그 중간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정해둔 한계를 설정해서 그만큼만 욕심을 부리거나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정도면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더 부리기도 한다. 그 끝에 어떤 결말을 맞는지는 정말 복불복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는 인과응보가 있다고 하지만 세상이 정말 불공평하다고 느낄 정도로 그 법칙이 매번 적용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본받을 만한 어른 찾기'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냥 만나는 사람 중에서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내것으로 체득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십수년간 쌓아온 습관과 형성된 성격을 고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사람들의 장점을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대충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감이 잡히기 때문에 그것대로 나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은 유튜브가 나의 이러한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책은 글쓴이가 책 한권을 완성해야 된다는 큰 진입장벽이 있지만, 영상은 대단한 기술이 없어도 영상의 길이가 길지 않아도 일단 업로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리고 유튜브가 접근하기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대단한 지식인의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말 이웃집에 살 것 같은 사람이 지혜의 말을 해주는 것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종교인이 전해주는 그런 말 말고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뒤통수를 강타하는 듯한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그런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계정을 구독하는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던 적던 상관없이 영상에서 그들이 해주는 말 속에서 내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어 간적이 종종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기에 그 사람에 깊게 빠져들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영상은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적인 어른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알았더라면 참 좋았겠지만 이 과정도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고 스스로 답을 찾았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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