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1 아전인수我田引水 - 내 논에 물 대기 바쁜 사람들
공동 주택의 7가지 불문율
1. 내로남불! 2. 싸우면 진다. 3. 목소리 크면 유리하다. 4. 갈등분쟁이 생겨도 안 보고 안 만나도 아무 문제없다. 5. 실컷 주장하고 아니면 만다. 6. 정답은 없지만 명분은 있다. 7. 단지의 평판은 딱 입주민 수준과 같다.
정보의 홍수 속의 표류: 단톡방이라는 피로의 늪 - [정글북(입주민)], [*창수(관리소장)]
정글북은 평소 단지의 대소사에 조용히 찬성표를 던지던 합리적인 다수층의 전형이다. 그는 오늘도 퇴근길 지하철에서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오픈카톡방의 알람을 확인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는 어느새 300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누수 공사 소음으로 시작된 논쟁은 어느새 관리비 횡령 의혹과 전임 회장의 비리 폭로로까지 번져, 본질을 잃은 채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회장님, 메시지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뭐가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들 자기 말만 맞다고 하니...” 정글북이 내게 보낸 개인 메시지에는 지독한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창수 소장 역시 패닉 상태였다. 주민들의 질문은 쏟아지는데, 답변을 올리는 족족 새로운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판단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배리 슈워츠가 지적했듯, 너무 많은 선택지와 정보는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 장애와 심리적 마비 상태로 몰아넣는다 [1]. 정글북은 이제 카톡방의 '나가기'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규정이라는 이름의 흉기: 대화를 가로막는 법전의 장벽
법대로는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단지의 모든 갈등 상황에 '관리규약'과 '공동주택관리법'을 들이미는 인물이다. 그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무기로 법을 사용한다. "회장님, 규약 제32조 5항에 따르면 이건 명백한 절차 위반입니다. 무효예요!" 그가 휘두르는 법전은 대화의 통로를 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통의 가능성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그는 문구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외면한 채 절차적 결함만을 파고든다. 주민들은 그의 서슬 퍼런 법리 해석 앞에 입을 닫게 된다. "아니, 그게 규정상 그렇다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 법대로의 등장은 합리적인 토론의 장을 차가운 법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규정은 공동체를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어야 하지만, 아전인수형 관계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타인의 입을 막는 '합법적 족쇄'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법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소통을 포기하고, 각자의 방 속으로 숨어버린다.
합리적 무관심의 탄생: 나를 지키기 위한 이탈의 시작
정글북은 결국 카톡방을 나갔다. 그가 떠난 이유는 단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가 여기서 한마디 해봤자 '누구 편이냐'는 소리나 듣고, 시간만 뺏기잖아요. 그냥 안 보고 사는 게 속 편합니다." 그의 퇴장은 단지 내 합리적인 중도층이 어떻게 소멸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장면이다.
갈등이 격화될수록 목소리 큰 극단주의자들만 광장에 남게 되고, 상식적인 개인들은 '합리적 무관심'을 선택하며 광장을 떠난다. 이것은 앨버트 히르슈만이 말한 '이탈(Exit)'의 전조 현상이다 [2]. 문제는 이들의 무관심이 공동체 전체의 의사결정 수준을 급격히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정글북처럼 분별력 있는 이들이 사라진 자리는 근거 없는 비난과 선동적인 언어들이 차지하게 된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더 이상 이 공동체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절망의 표현이었다.
사유화된 정의: 내로남불의 논리 체계
법대로와 이영희는 묘하게 의기투합했다. 각자의 목적은 달랐지만,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정의'라는 이름을 사유화하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이영희는 자신의 감정적 분노를 법대로가 제공한 규정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넣었다. "규정에도 나와 있잖아요! 회장님이 잘못한 거라고!"
자신들의 잘못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사정"을 들이대고, 상대의 사소한 실수에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벌"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러한 사유화된 정의는 공동체의 공적 가치를 훼손하고,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다. 기준은 일관성을 잃고 오직 '나의 이익'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춤을 춘다. 주민들은 이제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가를 살피기 시작했다.
결정의 피로와 소통의 질식: 마비된 민주주의
회의실의 분위기는 갈수록 무거워졌다. 안건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소모적인 논쟁 끝에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창수소장은 "이러다 올해 예정된 보수 공사들도 다 미뤄지게 생겼습니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너무 많은 비난과 너무 많은 규정 해석, 그리고 너무 많은 감정의 소모가 공동체의 의사결정 엔진을 멈춰 세운 것이다.
소통은 과잉되었으나 정제되지 않았고, 정보는 넘쳐나나 신뢰는 바닥이었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질식 상태다. 주민들은 이제 회의 소집 공고만 봐도 피로감을 느꼈다. "또 싸우겠지, 뭐 하러 가." 결정의 피로는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무기력은 다시 일부 선동가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버리는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2,000세대의 거대 단지는 그렇게 거대한 '정지 화면'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실행자의 깨달음: 슈워츠의 마비와 침묵의 무게 -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
회의실 불이 꺼진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내 의식 속에서 '그'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자네가 준 자유와 정보가 왜 저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아는가?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인간은 선택을 포기하고 이탈해 버리기 때문이라네 [1]." 그의 말처럼, 나는 소통을 늘린다고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운 꼴이 되었다.
일을 하며 나는 뼈저리게 깨닫는다. 리더의 역할은 모든 정보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정보를 정제하고 선택의 폭을 줄여주는 '큐레이션'에 있어야 함을. 정글북의 침묵과 법대로의 서슬 퍼런 규정 사이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법전의 문구가 아니라, 그 법 뒤에 숨은 공동체의 상식이었다. 앨버트 히르슈만이 경고한 '이탈'의 신호가 이미 단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2]. 나는 이제 이 과잉된 피로를 걷어내고, 다시 대화의 본질을 세우기 위한 챕터 1의 파국적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
[1]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 2004, The Paradox of Choice: Why More Is Less (선택의 심리학):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넓어지면 인간은 해방감을 느끼는 대신 결정 장애와 심리적 마비 상태에 빠지며, 이는 공동체 내 소통의 효율성을 급격히 저하시킨다는 이론.
[2] 앨버트 O. 히르슈만(Albert O. Hirschman), 1970, Exit, Voice, and Loyalty (이탈, 저항, 충성): 조직의 성과가 저하될 때 구성원은 '이탈(Exit)'하거나 '저항(Voice)'한다. 합리적 구성원의 조용한 이탈은 조직의 자정 능력을 상실케 하는 가장 위험한 신호임을 분석함.
--
[갈등구조의 말글그림·도: Step 4]
핵심 동인: 디지털 소통 과잉과 정보의 범람
현상: 결정 장애(Choice Overload) 및 합리적 중도층의 이탈(Exit)
왜곡: 규정의 무기화(법대로)와 감정의 선동(이영희)
결론: 의사결정의 마비와 시스템적 질식 상태 진입
--
'민원은 감정의 한 끗 차이라 결국 해법은 없고 명분으로 풀리곤 한다'
공동주택의 민원은 언제나 문제 해결을 가장한 감정의 표출에서 시작된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누군가는 피해를 말하고, 누군가는 억울함을 말한다. 이 지점에서 옳고 그름은 빠르게 밀려나고, 찬성과 반대가 동일 사안에 대해 항상 반반을 차지한다. 대신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명분을 쥐고 있느냐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래서 공동주택의 갈등은 법이나 규정으로 끝나기보다, 감정의 미세한 균형과 말의 프레임에 의해 봉합되거나 증폭된다. 챕터(Chapter) 1은 이처럼 각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두고 해석하는 ‘아전인수형 관계’가 어떤 말과 태도를 통해 구조화되는지를 하나씩 해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