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CH 1 아전인수我田引水 - 내 논에 물 대기 바쁜 사람들

by 관계학 서설 II

공동 주택의 7가지 불문율

1. 내로남불! 2. 싸우면 진다. 3. 목소리 크면 유리하다. 4. 갈등분쟁이 생겨도 안 보고 안 만나도 아무 문제없다. 5. 실컷 주장하고 아니면 만다. 6. 정답은 없지만 명분은 있다. 7. 단지의 평판은 딱 입주민 수준과 같다.


7가지 불문율의 현신: 삼선대표가 세운 권위의 장벽 - [삼선(동대표)]

단지 내 다목적 회의실은 낡은 배관 공사 안건을 두고 모인 동대표들의 거친 숨소리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테이블 상석을 차지한 삼선은 습관적으로 큼큼대며 낡은 안경테를 고쳐 썼고, 그가 내뿜는 권위적인 아우라는 회의실 전체를 짓눌렀다. 그는 새로 선출된 젊은 초임 동대표가 업체의 견적서 비교 분석과 절차적 정당성을 묻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가소롭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말을 무참히 잘라버렸다.


"거 참, 초임이라 규약이나 단지 사정을 잘 몰라서 하시는 소린데, 선배 동대표가 십 년 넘게 이 단지 지켜온 얘기를 귀담아들어야 단지가 평안한 법입니다. 당신이 알면 뭘 안다고 그래?" 그의 말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실상은 자신의 기득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강력한 압박이자 보이지 않는 신분 위계의 선포였다. 이 장면은 히르슈만이 말한 조직에 대한 '충성(Loyalty)'이 강요된 침묵으로 변질되는 첫 번째 징후였다 [1]. 그는 10년의 세월을 무기로 질문할 권리를 압수했고, 합리적인 저항(Voice)이 싹틀 자리를 권위라는 아스팔트로 덮어버렸다. 충성이 신뢰가 아닌 두려움의 산물이 될 때, 공동체의 자정 작용은 멈춘다.

나 삼선이야, 알지?

봉쇄된 이탈(Exit)의 함정: 나만사랑 소장의 전문적 가스라이팅 - [나만사랑(관리소장)]

삼선이 권위로 입을 막는 사이, 나만사랑 소장은 여유롭게 서류를 넘기며 이 아수라장을 관망하고 있었다. 기전실 엔지니어 출신임을 자부하는 그는 주민들 앞에서 늘 "나만큼 이 단지 설비를 완벽하게 이해할 소장은 대한민국에 없을 겁니다"라고 호언장담하며 자신을 신격화했다. 그는 갈등을 중재하기보다는 자신의 전문성을 과시하는 도구로 삼선대표의 권위를 교묘히 이용했다.


"대표님들, 제가 엔지니어로서 수십 년 현장을 누빈 사람인데 이 공법은 제 식견대로 가는 게 맞습니다. 주민들이 복잡한 설비 구조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제가 다 알아서 해드리고 있는데 왜 이렇게 의심이 많으신지 모르겠네요." 히르슈만은 조직의 품질이 저하될 때 구성원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이탈(Exit)'을 꼽았다 [1]. 하지만 공동주택은 이사라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이탈이 사실상 봉쇄된 구조다. 나만사랑 소장은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을 '유일한 대안'으로 설정함으로써 주민들의 선택지를 제거했다. 이탈의 가능성이 차단된 주민들에게 소장의 전문성은 보호막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었다.


변질된 저항(Voice)의 서막: 눈솔눈솔의 대안 없는 선전선동 - [눈솔눈솔(입주민)]

회의실 뒤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눈솔눈솔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전직 노조위원장 출신인 그녀는 대중의 분노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 보십시오! 저게 권력을 쥔 자들의 추악한 민낯입니다. 소장과 동대표가 결탁해서 우리 관리비를 주무르려 하고 있어요!" 그녀는 특유의 선동술을 동원해 순식간에 회의장을 계급투쟁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왜 저들의 저런 고압적인 태도를 견뎌야 합니까? 이건 입주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3] 소장 당신, 왜 이 업체여야 하는지 당장 설명해!"


그녀는 스스로를 정의로운 약자의 수호자라 믿었지만, 실상은 건강한 저항(Voice)을 파괴적 선동으로 치환하고 있었다. 히르슈만은 저항이 품질을 회복시키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눈솔눈솔의 저항에는 대안이 없었다. 오직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한 비난만이 '논리'의 탈을 쓰고 유통되었다. 정당한 저항이 증오의 언어와 결합하는 순간, 공동체는 문제 해결이 아닌 '누가 더 악한가'를 겨루는 심판의 장으로 변질된다.

대안없는 선동은 공동 몰락뿐이다!

말싸움용의 집요한 늪: 데시벨이 정당성을 삼키는 순간 - [말싸움용(입주민)]

난장판이 된 회의실에 말싸움용이 가세하자 상황은 수습 불가능한 진흙탕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상대의 말 한마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꼬투리 잡아 소모적 논쟁을 이어갔다. "방금 ‘절차’라고 하셨죠? 그 절차의 사전적 정의가 뭡니까? 왜 내 말끝을 잡아요?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 그는 논리에서 밀리면 과거의 사소한 행정 실수까지 끄집어내어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내가 지는 꼴은 죽어도 못 보지! 오늘 끝장을 봅시다. 내가 옳다는 걸 인정할 때까지 아무도 못 나갑니다!"


그에게 토론은 합의의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언어로 난도질하여 굴복시켜야 하는 자존심의 전쟁터였다. 히르슈만이 말한 '저항'의 에너지가 생산적인 목표를 상실한 채 감정의 배설물로 오용되는 비참한 순간이었다 [1]. 회의실은 누가 더 집요하게 상대의 혼을 빼놓는가를 겨루는 데시벨 경쟁장이 되었고, "좋게 말하면 무시당하고 소리 질러야 대접받는다"는 부정적 학습은 이제 단지의 확고한 행동 양식으로 굳어졌다.


병리적 구조의 완성: 이탈과 충성이 사라진 자리의 괴물들

이 아수라장 속에서 아파트라는 생태계는 주민들에게 이사라는 높은 비용을 강요하여 이탈(Exit)을 막고, 관리 주체를 신뢰하는 충성(Loyalty)조차 불신의 프레임으로 파괴했다. 결국 주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생존 전략은 변질된 형태의 저항(Voice)뿐이다. 삼선의 권위주의, 나만사랑 소장의 전문적 오만, 눈솔눈솔의 선전선동, 말싸움용의 집요함은 모두 이 구조적 결함이 낳은 병리적 증상들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에너지가 서로를 짓밟으려는 공격성으로 치환될 때, 공동체의 정의는 실종되고 오직 '무식한 기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히르슈만은 충성이 저항의 급진화를 막는 완충 장치라고 했지만, 이곳의 충성은 이미 사익적 몰입에 의해 부패했다 [1]. 이제 저항은 품질 개선이 아닌, 상대를 무력화하기 위한 무기가 되었다. 아전인수형 관계는 이제 단순한 심리적 편향을 넘어, '호통'이라는 물리적 압박으로 구조화되었다. 개인이 도덕적일지라도 집단의 이름으로 모인 이 공간은 이익의 충돌 앞에서 가장 비도덕적인 민낯을 드러내며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2].


실행자의 고독한 성찰: 니버의 탄식과 봉쇄된 광장 -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회의실 한구석에서 나는 이 장면의 결을 차분히 짚어본다. 이것은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아전인수형 관계가 도달할 수 있는 막다른 골목이다. 내 의식 속에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1932년의 그 차가운 지성으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개별적으로는 점잖은 이들이 왜 이 회의실만 들어오면 괴물이 되는지 아는가? 집단 이기주의가 도덕의 옷을 입을 때, 인간은 가장 잔인해지기 때문이라네 [2]."


그의 탄식을 들으며 나는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 봉쇄된 광장에서는 설득은 너무 느리고, 압박은 너무 빠르다. 토론은 피로하고, 고함은 즉각적이다. 나만사랑 소장이 파놓은 '대안 없음'의 함정과 삼선대표가 세운 '권위의 성벽' 사이에서, 주민들은 각자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상대의 논을 말려버리는 길을 택했다. 나는 아직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다만, 말의 밀도가 파열음으로 변하기 직전의 그 팽팽한 공기를 기록할 뿐이다. 다음 단계가 이 파국을 어떻게 돌파할지, 나는 이제 실행자로서 그 무거운 선택의 순간을 준비하며 펜을 든다.

나 엔지니어 출신 소장이야!

[1] 알버트 O. 히르슈만(Albert O. Hirschman), 1970, Exit, Voice, and Loyalty (이탈, 저항, 충성): 조직의 성과가 저하될 때 구성원이 취하는 반응 기제를 분석함. 공동주택처럼 이탈(Exit)이 제한된 구조에서는 왜곡된 저항(Voice)만이 남게 됨을 설명함.

[2]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932,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개별적 개인의 도덕성이 집단적 이익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비도덕적 광기와 이기주의를 분석한 사회윤리학의 고전.

[3]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2009,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정의란 무엇인가): 사익적 분노와 선동을 ‘공공의 선’이나 ‘권리 보호’라는 도덕적 정당성의 언어로 포장하여 확신으로 전환하는 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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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구조의 말글그림·도: Step 6]

· 권력 구조: 삼선의 경력 위계 + 소장의 전문성 독점 (포식적 구조)

· 소통 패턴: 전략적 호통과 데시벨 경쟁 (감정적 항복 강요)

· 붕괴 징후: 충성(Loyalty)의 소멸과 파괴적 저항(Voice)의 만연

· 결론: 비도덕적 사회로 진입한 공동체의 행정적·정서적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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