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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09. 2021

모녀 트러블? 모녀 트래블!

사. 사. 모 공존 일기

7년 전 큰애가 초1이 되던 해, 맞벌이인 나는 오래간만에 한 휴직을 뜻깊게 보내고자 야심 차게 계획했었다. 나 사랑스러운 막내의 출산으로 야심 찬 계획은 간데없고 야단법석 정신없는 일상으로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만난 큰딸 1호님과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이 모여 4인방이 탄생하였다. '사. 사. 모'라는 이름도 이때 '4명의 엄마와 4명의 딸의 모임'의 앞글자만 따서 지어진 것이었다.

4인 중 3명이 아이가 셋. 첫째가 다 초1 여자 친구였다. 동네에서 놀고 파자마 파티도 하고 캠핑도 하고 속상하면 커피 한잔, 술도 한잔 하며 아이 친구가 곧 엄마 친구가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초등학교 6년이 지나고 모두 중학생이 됐다. 작년 겨울에 졸업여행으로 제주도를 계획했었지만 코로나로 취소.

아쉬운 마음을 참고 참다가 이번에 과감히 엄마 넷. 소녀 넷 여행을 가게 된 것. 안타깝게도 모두 운전을 못해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을왕리로 결정. 버스로 지하철로 이동하는 여행이었지만 동생들 없이 가는 여행이 엄마도 소녀들도 너무나 가볍고 즐겁기만 했다. 첫 번째 행선지는 소녀감성에 맞는 카페.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마치 해외 리조트에 온 기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는 한창 엄마와 지지고 볶느라 정신없는 중학생들이지만 오늘만큼은 소녀들 마음대로 취향에 따라 딸들끼리 엄마끼리 따로 또 같이 여행해본다.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해질 무렵 도착한 을왕리. 예나 지금이나 을왕리는 젊은이들의 해변. 모래사장을 건너 바닷물에 다가가는 소녀들을 멀리서 도촬 했을 뿐 역시나 전신 전면 샷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저 멀리 일몰이 아름다운 빛깔로 일렁이며 보인다. 정신없는 육아전쟁을 지나 사춘기 아이들의 밀쳐냄에 설움 한가득, 대화가 안돼 울화가 치밀어 그동안 쌓인 답답함에 수다로 웃고 넘기는 엄마 넷.
이제는 노안에 고질병 하나씩 갖고 병원을 주기적으로 들락거리는 엄마 넷.
부모님들은 편찮으시고 아이들은 귀찮은 엄마 넷.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이제는 일까지 하는 엄마 넷.

전쟁같이 키워 낸 딸들 넷이 이제 엄마 키만큼 커서
잔소리 싫다고 엄마를 밀어내고
문을 닫고 말을 안 하고
상관 말라, 알아서 한다 큰소리치고
그러고는 폰 속으로 들어가서
킥킥대고

딸들만의 공간과 시간을 주니
집안에서 느끼던 트러블이 사라진다.

딸들이 멀어지니 엄마들이 가까워지고
따로 또 같이 여행(travel)을 오니
부딪힐 만한 트러블(trouble)도 없어진다.

긴 육아의 무게가
해 질 녘 노을빛만큼 무겁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견딜만하다.

오늘만큼은
딸은 딸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바닷가 해변에서 소녀가 되어
푹신푹신한 모래밭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히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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