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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ul 29. 2023

다시 시작, 333+1의 기록

천 개의 품

애들아. 반가워. 잘 지냈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이들이 "와~"하며 박수를 친다. 마스크 쓴 익숙한 얼굴, 마스크 벗은 낯선 얼굴, 상기된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얼마만인가.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모두 마스크 쓰고 만났던 아이들을 이제 반은 벗은 채로 다시 만난 것이다. 마스크 벗은 모습이 조금 낯설지만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니 어찌나 고마운지. 그것도 사춘기 절정인 중2아이들의 이런 스윗함은 감개무량, 감지덕지다~^^

 

다들 휴가 떠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모두 학교에 왔구나.
다들 고생 많았어.



우리 학교는 겨울에 석면공사를 다. 공사기간을 길게 확보해야 하는 탓에 겨울방학을 일찍 시작해야 한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학기 개학을 삼복더위에 하게 되었다. 휴가지에서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수박 한쪽 베어 물고 싶은 날씨에 학교라니... 믿고 싶지 않지만 사정이 있다고 하다들 이렇게  나와 앉아있다.


샘이 일 년간 학교를 못 나왔어
지난 시간을 숫자 333으로 말해볼까 해.

 

작년 2학기부터 갑자기 사라진 나에 대해 아이들은 이유를 궁금해할까 싶어 찬찬히 설명해 준다. " 첫 번째 3은 뭘까? 아는 사람" 모두들 두리번두리번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첫 번째 3은 3가지 질병
두 번째 3은 3번의 수술
세 번째 3은 3번의 싸움


"디스크, 갑상선암, 신장결석 3가지 질병이 연속으로 오는 바람에 학교에 못 나왔어. 지난 1월엔 암수술, 3월, 5월에는 각각 신장결석 수술까지 총 3번 수술을 했거든, 짧은 시간에 보험금 청구가 많아지니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미뤄서 보험사랑 싸우고, 수술하다가 치아가 부러졌는데 그걸 보상안하주는 병원과 싸우고, 책을 출판하려고 투고했는데 이런저런 조건을 내세우는 출판사와 실랑이하면서 총 3번의 싸움까지 하게 되었네. 그러다 보니 1년이 갔어. 그래도 너희들과 수업을 마무리하려고 이렇게 힘내서 왔단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박수를 치며  "잘하셨어요." 한다. 참 예쁜 아이들이다.


그래서 선생님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실은 변화한 내 몸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혹시나 모를 변화에 대비해
업데이트된
선생님 사용설명서를 말해볼게.


1. 갑상선 기능이 약해져서 갑자기 피곤이 느껴지거나 목이 아플 때도 있어 이럴 때는 잠깐 쉬어야 할 수도 있어.

2. 허리디스크가 약해져서 허리를 구부리거나 무거운 물건을 못 들 수 있고. 이럴 때는 도움을 부탁해~^^

3.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해졌어. 우리 서로 나쁜 말, 험한 말 쓰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즐겁게 수업하고 재밌는 시간 보내자!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학교에서 갑자기 몸상태가 나빠질 걸 대비해서 내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도움과 이해를 미리 요청한다.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알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는 것 같다. 든든하다.


힘들고 어려웠던 333의 시기를
버티게 해 준 강력한 힘을 가진 +1이 있어. 그게 뭔 줄 아니?


"그건 바로 글쓰기였어. 선생님은 부캐, 필명 화요일로 글을 쓰고 있는데 힘들고 어렵고 때론 답답한 심정을 글로 표현하고 내 생각을 들여다보며 지난 1년을 나름대로 보람차게 보냈단다.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이 나에게 또 다른 에너지를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조금 더 빨리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잘하면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도 낼 수 있을 것도 같고."


장황했던 나의 설명을 마치고 아이들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짧은 질문지를 작성하도록 한다. 영어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사실은 내가 더 겁이 났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응원과 사랑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찍어 모으고 있었다. 주문을 외듯, 나에게 타이르듯 '그래. 이렇게 아이들이 이렇게 나를 지지해 주니 잘 해낼 수 있을 거야'하며 걱정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복직 1일 차 저녁을 마무리한다. 나이 50이 다 어도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늘 긴장하는 나. 그 여린 마음이 아이들의 메시지와 함께 단단해지길 바란다.



고맙다. 애들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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