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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천개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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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19. 2023

저는 두 번의 시험을 원치 않습니다.

All Right English class

7월 말에 시작한 2학기가 어느덧 3주차에 접어들었다.  중1 신입생부터 보아온 아이들과 수업을 하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 착하게 잘 따라주니 힘도 덜 든다. 감사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진도에 쫓기는 수업이 조금 아쉽다.


영어 시험을 2번 봐야 합니다.


 한 unit을 충분히 가르치고 확인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해서 가르치려면 주당 4회 수업시수가  제일 좋다. 그런데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주당 3 시수. 조금 빡빡한 일정인데 1차, 2차 두 번에 걸친 시험을 치러야 하니 더욱 버거워졌다. 교과서 진도를 나가고 동시에 3개 영역의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가르치고 시험 보고 채점한다. 거기에 개별 피드백시간까지 더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중간, 기필고사 시험을 준비하고 가르치고 시험문제를 내고 검토하고 인쇄하고 분철하고 시험감독을 하고 이의제기 신청을 받고 문항분석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기 초 영어선생님들에게 학기당 지필평가를 몇 번 봤으면 좋겠냐고 의견을 물어왔을 때 당당히 '번만!'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결국 시험은 두 번 치르게 되었지만.


수행평가는 직접평가로 객관식문제로 획일화된 5지선다형 지필시험과는 차원이 다른 학습효과를 준다. 실제로 수행평가를 치르기해서는 2.3차시의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고 시험을 보고도 학생을 한 명씩 불러 답을 확인시키고 1:1로 피드백을 준다. 전기 간에 걸친 교사와 학생 간의 노력이 크다. 따라서 긍정적인 학습효과는 지필평가 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복잡한 이론에 따른 효과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 말 한마디에 다 무너졌다.


학부모님들이 영어, 수학 시험을
중간, 기말고사로 두 번 보기를 원합니다.


지필평가를 많이 요구하는 학부모들도 나름 이유는 있을 것이다. 시험을 봐야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하니까. 어차피 대입 때는 지필로 시험을 봐야 하니까. 미리미리 연습하고 준비하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간, 기말고사로 불려지는 정기고사의 중압감은 점수화된 수치 결과가 나와서 아이들의 수준과 상황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때문에 다른 시험보다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높다. 사교육도 더욱 성행하게 되고, 시험을 위한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로만 교육을 할 경우 창의성이나 자율성은 기대할 수 없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수행평가를 도입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다시 원점. 이런 과정을 다 알고도 학부모들은 지필평가를 원하는 것일까. 획일적인 교육을 비판하고 창의성이나 주도성, 배운 것을 직접 사용하는 기술이나 방법을 모른다고 공교육을 지적하면서도 왜 또 지필평가를 원하는 것일까. 그리고 학교는 왜 전문가인 교사의 소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부모님들을 비롯한 교육공동체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몇몇 학부모의 의견으로 교육의 큰 틀이 흔들리는 현실이 조금 슬프다. 생각해 보면 학부모들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런 사람과 인재를 원하는 사회가 원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  무력감에 빠져든다.


진도에 쫓기는 수업, 시험을 위한 교육


애들아, 미안하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서 시험범위까지 진도를 나가야 하거든.
그래서 여러 가지 활동이나 게임을 못할 것 같아.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45분 수업을 꽉 채워하고 나니 숨이 차서 속상하다. 괜한 아쉬움 아이들이 묻지도 않은 상황을 설명한다. 아이들은 참 착하게도 내가 이끄는 데로 잘 따라온다. 그래서 더 속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더 좋은 수업으로 이끌고 싶은 욕심에...


계속 연구하고 실천 중인 슬로리딩 학습활동도 편하게 적용하고 싶었다. 이번 학기에 적용해 보려고 "Slow reading &writing"의 이름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했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며 수업 모델도 짜고. 그러나 어느 순간 시험범위까지 가르쳐야한다는 진도압박에 "slow"는 정체성을 잃고 "fast reading"으로 수업이 변해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애를 써서 아이들의 개별 피드백시간을 주고 싶어 쉬는 시간을 쪼개 쓰고 있지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그냥 교과서만 읽고 풀면 쉽다. 하지만 난 늘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미련스럽게도.


시험 앞에 포기해야 하는 중요한 것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 유행에 따라, 환경에 따라, 민원에 따라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너무 자주 바뀐다. 어지러워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교육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1차적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입과 취업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중등교육에서 단단히 잡은 학문의 기초는 성인이 되어 배울 세상의 지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교과서의 지식을 딱 필요한 만큼만 짧게 그리고 강하게 핵심만 가르친다. 그 이후는 아이들과 나의 하모니가 이루어지는 숨 막히게 재밌는 공연이 이어진다. 읽기 지문에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바꾸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달지, 궁금한 단어나 사실하나를 파고들어 더 자세히 알아보고 발표하는 연구노트 활동으로 확장한다던지. 배운 문법을 활용해 아이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러닝로그를 작성한다던지 주옥같은 활동으로 줄줄이 연결할 수 있다. 그런시험앞에서는 이 모든 것을 멈춰야만 한다. 시험이라는 코앞의 목표지점에 다다르기 위해서 한 눈 팔지 않고 교과서 속 지식에만 집중해야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단어하나 전치사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외우도록 아이들을 훈련시켜야 하는 것이 내 임무가 되었다.



나: 애들아, 어제 지유가 편의점 앞에서 과자 먹고 있는 거 샘이 봤잖아.

아이들:  진짜로요?
지유: 샘이 저를요?


이쯤 되 나의 연기력에 다들 확 빠져든 상태. 이때 한 마디를 날리다. "'나는 어제 지유가 편의점 앞에서 과자 먹는 걸 봤다'를 영어로 하면?" ㅎㅎㅎ 일순간 웃음이 퍼지고 어제 배운 지각동사와 목적보어의 형태를 더듬어 상기시킨다. "I saw 지유 eating snacks in front of the convenient store." 이렇게 더듬더듬 아이들과 우리들의 문장하나를 완성해 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근데 애들아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무슨 소리일까?" 아이들이 킥킥대며 대답한다.


아이들: 고양이요.

나: 고양이가 뭐 하는데?

아이들: 울고 있어요.

나: 어디서?

아이들: 벽에서요.

나:  점점 이야기가 무서워지는데~

    자. 그럼 영어로 한번 만들어볼까?

   '나는 들었다.'

아이들 : I heard

나:  뭐를?

아이들: the cat crying

나 : 어디서?

아이들: in the wall

나:  그럼 다 같이 붙여서 한 문장으로

아이들: I heard the cat crying in the wall.

나: Good job!!

 

점점 더 이야기가 재밌어지는데 이어갈 수가 없다. 이상한 냄새가 부엌에서 난다고 물으며 연습을 한번 시키고 각자의 이야기를 지각동사를 활용해 완성시키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멈췄다. 본문 읽기를 시작해야 하므로. 재미와 배움이 일어나는 그 지점에서 또다시 멈추어 서서 "다음 페이지!"를 외치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먹고 사는 것에 집중하느라 놓친 것들, 중요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바로잡고 힘들게 바꾸어놓은 것들이 서서히 예전의 것으로 회귀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끄는 데로 따라오겠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시험을 위한 수업으로만 해도 괜찮을까. 발악하듯 쉬는 시간을 쪼개 아이들의 학습지를 검사하고 자신의 수업활동과 중요표현을 깨알같이 적은 아이들의 러닝로그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어준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름을 한번 더 불러준다. "ㅇㅇ아. 수고했어. 잘했어." 짧은 응원이지만 이 한 마디가 아이들이 교사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찰나의 소중한 순간이라는 걸 알기에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결심한다. 내년에는 한번 더 시험을 보자는 누군가의 의견에 당당히 내 수업의 원칙을 한번 더 말해보겠다고. 시험을 위해 가르치면 놓치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힘없이 공기중에 퍼지고 뭔가 더 큰 힘에 압도되어 결국 포기하게 될 지라도 한 번더 꼭 얘기하고 싶다.


저는 두번의 시험을 원치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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