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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11. 2023

고마워, 나의 40년 지기!

어쩌다 마주친 그대

손잡이 꽉 잡으세요.
이제 내리막 길입니다.


대중교통 이용만 40년, 오늘 출근길에 버스를 다. 한두 번 운전을 시도해 봤지만 주차할 걱정, 사고 날 걱정에 몸이 잔뜩 긴장되어 스트레스만 쌓일 뿐 자가운전의 편리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10대 시절 통학버스로 만난 버스와의 인연은 50대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다.


내 친근한 40년 지기 친구
버스는 나에게 꼭 필요한 친구다. 나의 출퇴근을 책임지는 변함없는 친구. 버스는 바쁜 하루에 잠깐 멍 때리는 여유도 허락한다. 흔들리는 차속에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걱정도 근심도 어느새 사라진다. 버스 안 다른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영화도 보고 기사도 읽지만 부실한 나는 멀미가 나서 폰을 볼 수가 없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뿐. 버스는 이렇게 집과 근무지를 연결해 주고 동시에 두 공간을 분리시켜 적당한 기분전환의 시간을 준다. 바쁜 아침 출근시간에도 집에 오는 퇴근길에 얻을 수 있는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의 시간, 버스는 그렇게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길은 매일 같아 보여도 조금씩 다르다. 가로수 잎의 색깔이 달라지고 하늘빛이 다르고 때때로 길가 상점의 간판이 바뀌고 새로운 가게가 개업하거나 폐업하기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에서 그들의 사연과 생각을 내 맘대로 상상하는 일도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다.


늘 같은 지점에서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는 어떤 여인은 하차문 바로 앞에 앉는 걸 좋아한다. 앉자마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고 정자세로 앉아 앞을 응시한다. 또 모자관계로 보이는 사이좋은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나란히 둘이 앉는다. 둘 다 덩치가 있어 좁을 법도 한데 불편한 내색 없이 뭔가를 즐겁게 얘기하며 정겨운 시간을 보낸다.


롤러코스터 vs. 고급 승용차

버스는 뭐니 뭐니 해도 기사님의 운전스타일이 중요하다. 기사님의 성향에  따라 버스가  롤러코스터도 최고 사양의 고급차가 되기도 한다. 나직한 목소리의 기사님 1호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손잡이를 꼭 잡아주세요. 위험합니다."를 나직하게 말씀해 주신다. 지나치게 상냥하지도 그렇다고 건조하지도 않은 차분한 아빠 말투다. 그래서일까. 커브를 돌 때도 내리막길을 갈 때도 몸이 갑자기 쏠리거나 흔들리는 일은 없다. "자. 이제 내리막 길입니다. 조심하세요." 과하지 않은 말투와 부드러운 운전실력까지 갖춘 격조 높은 명품 기사님이라 이 분을 만나는 아침이면 편안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젊어 보이는 기사님 2호. 이분은 타고 내릴 때마다 큰 소리로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외친다. 어떤 날은 하차하등뒤로 "좋은 하루 보내세요."까지 외치시면 갑작스러운 친절에 나는 어쩔 줄 모른다.  나도 답을 해야 할지 말 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감사합니다." 마디를 소심하게 외치고 얼른 내린다. 이 분은 흡사 유명 백화점 직원만큼이나 친절하고 씩씩하다. 그러나 반전은 이분의 운전스타일. 이 분의 차를 타면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커브를 돌고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이리 휙 저리 휙 몸통이 쏠리고 위아래로 덜컹덜컹 엉덩이까지 튕기는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내릴 때쯤 되면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뻐근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넘치는 의욕만큼 패기 있는 운전스타일은 부실한 내 몸이 감당하기에 쪼금 버겁다.


짐이 많을 때나 몸이 아플 때는 사람이 너무 많은 만원 버스는 피하고 싶은 게 사실. 그래도 버스는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대형 리무진, 고급차만큼이나 고마운 존재다. 갈수록 최첨단화되는 교통시스템과 친절해지는 기사님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흔들흔들 휘청휘청하는 어르신들이 다 타시고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배려나 몇 초 차이로 버스를 놓친 여학생이 전력질주로 달리는 것을 백미러로 보시고는 잠깐 기다려주는 기사님들의 여유는 센스만점 특급서비스다.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제자나 이웃들은 버스 타는 재미를 더해주는 이벤트다. 이쯤되면 버스는 나에겐 최고급 승용차다. 버스의 좋은 점은 하루 종일 나열해도 끝이 없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그리고 101번 기사님들 감사합니다~^^


101번 버스의 늠름한 자태.(사진출처:https://m.blog.naver.com/cr12104/22099742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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