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말, 드디어 한 출판사와 계약서를 작성했다. 6월부터 수백 군데의 출판사에 투고하고 실패를 맛본 후, 계약이 성사된 곳은 의외였다. 8월쯤, 전자책 제작을 가이드해 주셨던 출판사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작가님, 혹시 출판계약하셨나요?
아니요. 아직이에요.
아, 잘 됐어요. 그럼 저희랑 하실까요?
아. 정말요?!
전자책을 제작하고 준비하는 과정 전체를 지켜보고 조언해 주셨던 사장님은 내게 원고가 참 좋다고 일단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다 풀어내 써보라고 그런 책이 한 권 쯤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3개월의 노력 끝에 작년 5월에 전자책은 출판되었고 그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연락이 된 것이다.
실은 전자책 원고가 좋다고 하시면서도 종이책 출판제의는 안 하셔서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가 보다 했다. 마음을 접고 다른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인연이 또 닿았다.
'저희랑 (계약)해요!' 이 말이 얼마나 듣고 싶었던지... 긴 통화를 하고 직접 출판사를 찾아가 출판사의 규모와 이미 출판된 책들도 살펴보고 출간기획서를 수정하고 다듬어서 보냈다. 지난해 10월 말쯤 최종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1차 초안은 올해 1월 말에 보내기로 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기쁨은 잠시, 원고를 다시 작성하고 수정하는 긴 여정이 현실로 다가오니 새로운 부담감도 스르르 밀려온다.
한 주에 한 꼭지씩
2학기 개학을 하고 일이 시작되었다.부족한 시간을 쪼개 원고를 작성해야 했다. 주중엔 일에 집중, 주말엔 내 원고에 집중, 토요일 아침, 눈이 떠지면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목차를 먼저 확인하고 수정한 뒤, 한 주에 한 꼭지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정한다.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그 한 꼭지를 작성하는 동안은 그 주제에만 집중했다. 필요한 자료와 인용한 책의 출처도 꼼꼼히 체크하고 한 문단 작성이 끝나면 맞춤법 검사도 빼먹지 않는다. 그렇게 몇 주가 쌓였을까. 12월 중순,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마지막 스퍼트를 낸다. 마지막 장과 에필로그까지 작성하고 출판사에 보낼 1차 초안을 마무리한다. 전체적인 목차에 맞는 글이 들어갔는지, 흐름은 괜찮은지, 한 꼭지에 한 주제가 일관성 있게 들어갔는지 큰 테두리 안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저장한다. 아직 고칠 것이 많지만 마감기한은 꼭 지키기로 스스로 약속했으니 더 고치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부족한 점은 출판사의 피드백으로 수정하기로 하고 '메일 보내기' 버튼을 클릭.
피드백을 기다리는 잠깐의 휴식
초안을 보내고 며칠 후 답장이 도착, 원고를 점검 중이니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거라는 친절한 답변이 출판사에서 왔다. '휴~한숨 돌린다.' 맘 편히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간다. 이런 휴식이 너무 달콤하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기다리던 피드백 타임이 왔다.
초안이 업그레이드되는 순간
미리 약속을 정하고 전화로 피드백을 받는다. 약속된 시간에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펼쳐둔다. 출판사 사장님은 간단한 안부인사 끝에 하나씩 의견을 내놓으신다.
전체적인 구조에는 손댈 것이 없음
글의 흐름과 조직이 잘 되어있어서 그 부분은 손대지 않으셨다고 한다. 쓰느라 고생했다는 다정한 말씀과 함께.
친절한 글이 될 것
필자는 알지만 독자는 모르는 정보의 공백이 보임, 추가적인 설명과 맥락이 필요합니다.
주요 독자층을 다시 한번 확인
고민했던 지점이다. 요즘은 쉽고 짧고 단순한 책들이 대세지만 내가 한 경험이 그렇지는 않아서 '누구나'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독서'에 관심이 있고 책으로 교육을 하고자 하는 학부모, 교사,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고 다시 확실히 해둔다.
독자가 처음 보는 시작과 끝이 중요!
특히, 프롤로그와 작가소개 그리고 에필로그에 아주 자세한 피드백을 해주셨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다양한 경험의 요약과 소개, 받았던 상과 모임의 이름과 순서등. 낯간지러워 생략하거나 두루뭉술하게 기술했던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적을 것을 요구하셨다.
인용된 책에 대한 허락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대한 구체적이고 창의적이 방법 제안이 주요 내용인지라 이 책에 중심적으로 인용된 책은 반드시 출판사와 저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내용에 대한 책임이 있는 당사자이므로 미리 구두나 서면으로 책의 사용을 허락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신다.
부록으로 추가할 것
책에 소개된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지 양식이나 책의 목록, 다양한 모임을 주도했던 경험의 노하우와 조언등을 부록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전해주셨다.
2차 초안작성을 시작하며
출판사로부터 다양한 의견과 수정사항을 받고 고마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느낀다. 일단 한 고비를 잘 넘겼다는 뿌듯함. 출판사의 정성스러운 피드백으로 한 단계를 잘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에 감사했다. 개학과 동시에 밀려드는 일 속에서 내 시간을 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것은 행복한 비명이라 스스로 위로한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엮어 새로이 탈바꿈될 내 책의 변신이 기대된다. 주말 아침이 또다시 바빠지겠지만 원고작성이라는 숙제는 늘 비슷한 일상으로 고인 물같은 내 삶에 새로운물꼬를 열어줄테니 그 변화에 벌써부터 설렌다. 오늘은 이렇게 내 책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의 키를 조정하며기분좋게 주말아침 숙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