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이 다 되어 20대처럼 촐싹대며 여기저기 전국을 누비다 속병을 얻었다. 출판할 책의 원고를 1차로 넘기고 신나게 놀러 다니다 그만. 며칠째 속이 쓰리고 메슥거리고 소화가 안된다. 엊그제 여수에 갔다가 집에 왔다가 내일은 또포항에 간다. 이렇게 전국구로 돌아다니더라도 굳이 집에 들러야 하는 이유가 있다. 3개월간 글을 쓰고 나누었던 라라크루 멤버들을 만나는 스페셜 플랜, 여수와 포항 사이에 합평회가 똭!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다.
몸만들기 돌입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몸을 돌본다. 내과에 가서 약을 받아먹고 허리치료를 하러 한의원엘 간다. 우두둑우두둑 추나치료를 받고 모임장소 근처에 도착. 모임 전 쓰린 속을 달래줄 죽을 한 그릇 주문한다. 반은 지금 먹고 반은 포장해 달라고 특별요청을 하고. 모임 후 뒤풀이서 먹을 요량이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징그럽다.뭘 또 이렇게까지. 절대 빠진다는 생각은 않는다. 의지의 한국인. 바쁜 일정을이겨낼 건강한 몸을 만들고 지키는 건 연예인들만 하는 건 아니다.
너무나 엘레강스한 여긴 어디?!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약 한봉다리 털어놓고 모임장소로 향한다. 강남 한 복판, 어쩜 이런 공간이 있을까. 상상도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고품격공간에서 모임을 한다. 마음씨 좋은 크루 한 분이 기꺼이 내어주셨다고. 소규모 재즈공연이나 클래식한 연주회가 프라이빗하게 열릴 것 같은 고급스러운장소다. 우아~감탄사를 연발하며 들어서니 온라인에서만 뵈었던 작가님들이 삼삼오오 옹기종기 앉아계신게눈에 들어온다. 근데 왜 하나같이 미남, 미녀들이신지. 미모순으로 뽑는 게 아닌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그러니 나도 들어왔겠지만~푸핫!)
헉! 반가운데 어색하다.
지난번 송년회 때도 어색함을 깨고 용기 내어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스로 친해진 작가님의 모습이 너무 반가운데 또다시 초기화된 걸까. 또 어색하다. 쭈볏쭈볏 어쩔 줄 몰라하는 가운데 합평회는 시작되고 한 분 한 분 글에 대한 감상과 의견이 오고 간다. 오늘은 이상하게 머리가 띵하고 몽롱하여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다들 어쩜 그리 청산유수로 말씀도 잘하시고 재치 넘치게 리액션도 잘하시는지. 이분들 글만 잘 쓰시는 게 아니다. 그 능력 정말 탐난다. 부럽고 또 부럽다. 조용히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가만히 듣는다.
오늘은 분량 못 뽑겠다.
오늘은 겸손하게 경청하고 싶네요.
한 분 한 분 돌아가며 자신이 글을 쓴 배경과 이유 등을 말하시는데 미리 연습이라도 하셨는지 완전 프로 북토크 저리 가라다. 가만 듣고만 있어도 내공이 쌓이는 느낌이다. '오늘은 계속 경청만 해야 하는 날이구나.' 겸손한 자세로 손을 모으고 귀를 활짝 연다. 늘 해왔던 데로 뭔가를 내가 주도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거스르고 한 발 물러나기꺼이방청객이 되어본다. '오. 편하고 좋은데~'
쉬어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여기에 있으면 된다.'라고 하는 것처럼 모두 편안하게 듣고 얘기한다. 든든하게 모임을 운영해 주시는 분들과 팔색조의 매력으로 글과 말을 넘나드는 작가님들의 개인기를 감상하고 있으니 이보다 알찬 공연이 있을까. 서태지의 댄스를 하시는 작가님부터 진지함을 못 참지만 축구경기에 희생될 닭을 걱정하시는 작가님, 그 어렵고 힘든 고부간의 공감이라는대과업을 이루어내신 위대한 작가분, 글하나의 담긴 사연, 의미, 질문으로 꽉 찬 세 시간의 모임을 만들어낸내공과또박또박 듣고답변하는 이 모든 분들이 새삼 너무 대단해 보인다. 함께있음이 영광이고 감사할 뿐.
나에게 쉼이란?
이 날 내 몸의 사용치는 여기까지였다. 남은 에너지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탈탈 털어 쓰고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새벽 6시, 에너지는 다시 충전되었다. 이번에는 우리 집 아이들 2호, 3호와 함께 포항여행을 간다. 오늘은 얼마나 에너지를 쓸 수 있을까. 오래 쓸수록 더 빨리 방전되는 휴대전화처럼 엄한 순간에 배터리가 깜박거리곤 한다. 눈을 뜨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출발 한 시간 전에 짐을 싼다.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짐 싸기지만 잊지 않는 게 있다. 지금 꼭 맞는 책 한 권, 오늘은 <순도 100%의 휴식> '이거다!' 합평회에서 흐린 눈으로 한마디 했던 게 기억난다. 아이를 위해 일 년 휴직을 했지만 실은 너무 많은 일을 했던 앳된 엄마에게 했던 그 질문은 실은 나를 향한 거였다.
지금 정말 쉬고 있는 게 맞나요?
나에게 쉼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쉬는 게 맞는 건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몇 개월간 보지도 않고 쌓아두었던 책이 생각나서 뒤적뒤적 찾아내 여행 가방 속, 깊은 곳으로 쑥 밀어 넣는다. 포항 가는 기차 안에서 한쪽 한쪽 읽으며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일인지 휴식인지 아니면 여행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시간을 야금야금 흘려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