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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03. 2024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

퇴행성
                            전민정(2022시민공모작)

퇴행성이란 말 참 슬프다.
삐걱거리는
관절보다 더 슬프다.

보폭 맞추며 반듯하게 걸어온 나날
되돌아갈 수 없는 옛말
퇴행성이란 밀려난다는
밀려나서 고독해진다는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
가슴으로 들으며
멀어지는 것들을 끌어모아
자력갱생
내일의 못 맞춘 마디를 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와 나


보일 듯 말 듯, 스치듯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멈추어 섰다.

마침 한의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 퇴행성이라는 말이 나를 붙잡는다.


고독이라는 말 앞에 또 다른 고독이 서있다.

외로움을 기꺼이 품은 낯선 고독,

이제는 홀로서기 힘든 나를 인정해야 하는

실은 그러고 싶지 않은

 인간의 고집스러운 안간힘이 흐릿하게 서있다.


퇴행성이라는 말이

밀려나고 있는 나인 것 같아서

삐걱거리는 곳이

점점 많아지는 나이기도 해서

그런 나를 보는 것이

아직도 어색해서

스크린도어에 새긴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다.


저 멀리 슬금슬금 다가오는 지하철처럼

잠깐 왔다 빨리 지나가면 좋으련만

스르르 열리는 문 안쪽으로

기어이 내 몸을 밀어 넣고는

빠른 속도로 세월이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야속하기만 다.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선 미련스러운 나

속절없는 시간을

허위허위 흘려보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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