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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10. 2024

긴 겨울 끝, 반가운 산수유

달밤, 아들과 산책

간단히 저녁을 먹고 늘 그렇듯 운동하러 집을 나선다. 나가려는 데 방에서만 뒹굴거리는 아들이 마음에 걸린다. 늘 거절당했던 터라 이번에도 별 기대 없이 묻는다.



 아들, 같이 운동하러 나갈래?

네~


웬일인지 선뜻 나선다. 동네 근처 안양천변의 산책로를 걷는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나는 가만 듣기만 한다. 친구들 이야기, 공부 이야기, 시험 이야기, 툴툴 거리며 엄마에게 불만을 호소하기도 하고 반백의 나이라며 겁도 없이 엄마를 놀리기도 한다.


수줍은 노란빛

두런두런 걷는 길 옆으로 노란빛이 보인다. 초록, 빨강 야릇한 가로등 아래 빼꼼히 자기도 끼워달라는 듯 작은 꽃봉오리가 가지를 길게 빼고 날 쳐다본다. 산수유다. 며칠 전만 해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어느새 꽃이 만개했다. 아직 추운 날 이파리도 없이 올망졸망 꽃망울을 터트린 아이들이 귀엽기만 하다.

 


아이들도 그렇다.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도 이제 다 컸다. 그런데 다 큰 것 같지만 아직 아이고 만개한 것 같지만 아직 또 여전히 애송이 같은 중학생이. 어느 날은 자기가 혼자 할 거라며 가만 놔두라고 소리치고, 그래서 눠두면 왜 자기에게 관심도 없냐며 토라진다. 또 이것저것 챙겨주면 잔소리한다고 도망간다. 나도 나름 중학생 응대만 21째 해온 베테랑 경력자지만 우리 집 고객님들의 니즈(needs)를 맞춘다는 건 너무 어렵다. 엄마와 교사로서의 입장이 다르겠지만 아이들과 가깝고도 또 먼 적당한 거리조절은 난제 중 난제다.


오늘은 다가감이 먹혔던 거리조절이 성공했던 드문 날이었다. 방학 동안 더욱 커진 아들은 벌써 엄마보다 한 뼘이나 더 큰 키에 더 커진 덩치로 산수유 같은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운동 갈 때 자기도 데려가라고도 하고 학원 안 다니고 혼자 열심히 공부할 테니 연말에 꼭 같이 일본여행도 가자고도 한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말자 다짐하지만 자기 방에 갇혀 게임과 동고동락했던 긴 겨울 동면의 시간을 거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큰 흑곰 한 마리 같은 아이가 반갑기만 하다.


산수유 사진을 찍는 엄마를 가만히 기다려주는 아들, 그 곁을 걸으며 올해의 봄을 먼저 맞이한다. 든든한 보디가드를 옆에 두니 세상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볍다. 쉬지 않고 말하는 중저음 변성기아들의 수다가 어둑해진 달밤, 알맞은 배경음악이 되어  만 이천보 오늘치 운동을 가뿐 하게 마친다.  


#라라크루

#쑥마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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