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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pr 02. 2024

멀리 오래 봐야 예쁘다. 당신도 그렇다.

느닷없이 닥친 노안과 100미터 미인 구조대

눈이 너무 아파요.
피곤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약이 있을까요?



300쪽짜리 학교교육과정 계획서 편집의 막바지 작업 중이었다. 눈이 빡빡하고 무겁고 너무 피곤하다. 결국 응급처치라도 해볼까 하고 집 앞 약국을 찾아간다. 컴퓨터 화면만 보며 작업을 한 게 문제였을까. 몇 주간 붙잡고 있던 문서편집에 지칠 때쯤 눈이 먼저 반응한다. 사비를 털어 모니터도 하나 더 사서 듀얼모니터로 폼나게 편집도 해봤지만, 노안때문인지 침침해지는 눈의 피로를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기나긴 작업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을 때쯤, 다크서클은 내려오고 눈이 안쪽으로 푹 꺼지는 것 같은 피로감에 결국 약국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약사는 효과가 좋다며 안약 하나를 꺼내놓는다. 냉큼 사서 눈에 넣으니 따끔거리다 시렸다가 이내 편안해진다.



집에 돌아와 잠시 눕는다. 

5분이나 지났을까. 어느새 "카톡"하고 휴대폰이 울린다. 자동반사적으로 다시 휴대폰을 잡는다. 그런데 톡만 보고 그냥 내려놓지는 않는다. 이곳저곳 휴대폰 세상 구경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글쓰기를 하는 미션을 완수하느라 휴대폰으로 작업을 시작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휴대폰 화면만 몇 시간씩 쳐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깜빡이는 휴대폰을 보는 것과 컴퓨터로 장시간 작업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을. 주중에는 학교서 일하느라 컴퓨터를 보고, 주말에는 출판준비로 원고작업을 마무리하느라 또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니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니터 화면만 보고 있는 셈이다. 갑작스러운 각성에 손바닥만 한 휴대폰이 새삼 무거워져 잠시 내려놓는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겠다.



잠시 눈을 감는다. 작은 화면 에 볼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문 밖의 바깥세상보다는 코앞에 펼쳐지는 화면 속 세상에 도취된 채 살아가기 바쁘다. 전방 30센티도 안 되는 것들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 거리에도 차 안에도 각자의 화면만 바라보는 사람들뿐이다. 


공강이 있는 두 시간 내내 편집만 하다가 멀미가 날 지경, 잠시 일어난다. 창문 너머로 핀 희고 큰 목련이 눈에  들어온다. 반짝이지도 움직이지도 않아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함박웃음을 짓듯 묵묵히 꽃망울을 터트렸다. 기특한 생명들. 마른 가지로 뻗뻗하게 서있을 땐 다들 못 본척하다 이제야 눈길을 주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하련만 때가 되면 폭죽이 터지듯 일제히 자기의 속도로 화려한 빛을 내는 자연의 힘이란.



멀리서 

눈이 아프지 않다.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에 통증이 가신다.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걸 찍는다고 휴대폰을 이용해서 인위적으로 순간의 아름다움을 박제하고 공유하는 게 맞나 싶었다. 휴대폰 속 세상에는 늘 한결같이 아름다운 봄꽃 사진 퍼레이드가 24시간 그대로이고. 가공의 빛으로 만든  박제된 사진은 늘 그대로의 아름다움은  뽐내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은 어느새 우리 눈에 시린 통증을 주고 만다. 눈길만 돌리면 보이는 진짜 세상 속의 꽃과 풍경을 외면한 채, 휴대폰으로만 찍고 지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꽃구경은 자고로 흐드러진 꽃길과 옅은 향기와  탁 트인 시야를 콜라보로 동시에 즐겨야 제 맛이다.



안양천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노랗게 빛을 밝히는 산수유도 

높다란 가지 끝에 매달린 손바닥만 한 목련도

마찬가지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사라질 테지만

누구도 해치지 않고

자연의 빛으로 존재했다가

추운 겨울과 거친 바람을 견디어내다가 

조용히 때가 되면

한껏 꽃을 피우고

푸른 잎으로

뜨거운 빛을 받아내고는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소멸한다.


사람들은 어떤가.

어느 순간,

가장 화려한 때만 우르르 몰려와

사진만 찍어대고는

먹고 마시고

쓰레기를 잔뜩 만들어내고

또 우르르 사라진다.


아파트단지의 달밤 벚꽃



마지막 시력을 다해 마무리

최종 편집을 마치고 막 결재를 하려던 찰나, 친절한 동료들에게 마지막 확인을 부탁한다. 파일이 오가다 실수가 생길 수 있으니 이번에는 원본 파일을 USB에 친절하게 담아주고 수업하러 간다. 실은 '수업'이라 쓰고 '도망'이라 읽어야 맞다. 한 시간 후, 김 모 교사 둘이 마지막 편집과 수정을 마쳤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참 지적이고 훌륭한 사람들이다. 알아서 척척 다해주다니. 그러나 마지막 복병이 있었으니, 지모교사가 고백한다. 수정파일 주는 걸 까먹었다.


괜찮아요. 여기 파일 있어요.
이걸로 수정하세요.
저는 수업하고 오겠습니다.




한 마디하고 총총총 사라진다. 미안하지만 내 눈은 소중하니까 에너지의 총량이 다 소진되어 염치 불고하고 직접 수정을 부탁한다. 한 시간 뒤, 당당하게 수정완료 사인을 보내는 그녀. 드디어 결재를 올릴 수 있는 건가. 두둥~ 감격의 순간이다.  그녀들의 눈을 믿고 집단지성을 또 믿는다. 교감, 교장선생님의 매의 눈도 믿는다. 계속 보던 헌 눈한테는 절대 잡티가 안 보인다. 그러데 아무것도 안 본 새 눈에겐 티끌하나도 깨끗하게 보이기 마련. 프로정신은 개나 줘버리고 수정은 그만하고 과감하게 기안을 작성한다. 내가 정한 마감기한이 오늘인 관계로 기필코 끝내고야 만다. 기안문에 그녀들이 수정한 파일을 첨부하고 드디어, "결재요청" 클릭!



와~난 이제 해방이다.




아. 이제 꽃도 보이고 달도 보이고

세상이 달라 보인다. 눈도 안 아픈 거 같고,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봄이 코앞에 와 있었다. 역시 세상은 멀리 여유롭게 봐야 아름답다. 이게 다 내 곁에 있는 깨끗한 눈을 가진 수호천사님들 덕분이다. 멀리 볼 수록, 오래 볼 수록 참 예쁜 사람들. 40대로 같이 나이 드는 사이, 너무 가까운 건 부담스러운 나이다. 우린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거든요. 세월의 흔적, 나이테 같은 주름이나 기미나 흰머리 같은. 김 모 교사왈, '그래도 나, 한때는 잘 나갔답니다.' 지금은 100미터 미인이지만 ^^



오래 볼 수록
멀리 볼 수록
아름다운 그대
오늘도 고마웠어요!
우리도 이제 꽃구경가요~



#라라크루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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