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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y 30. 2024

두려움, 그 너머의 것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 리뷰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

뭉크가 한국에 왔다. 그의 에로틱한 우울감을 드디어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그림 전체흐르는 오묘함과 신비스러움은 얼마나 매력적인지. 작품 <마돈나> 시리즈는 여인의 일생을 그린 듯하다. 정자모양의 형체가 그림의 테두리를 장식하고 왼쪽 아래 귀퉁이엔 두려움에 가득 찬 태아가 웅크리고 있다. 관능적인 여인이 무언가에 홀린 듯 몽환적인 얼굴을 하고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다. 여인을 감싸는 검고 회색의 테두리가 음울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어두운 분위기에 한없이 빠져들게 만들고만다. 

마돈나, 뭉크


친근한 두려움

그의 그림은 어둡다. 그는 다양한 그림을 그렸지만 밝은 색을 쓴 그림보다 죽음, 두려움, 공포 등을 표현한 어두운 그림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그랬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는 거라고. 그는 질병, 죽음, 두려움이 가득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빈빈가의 의사로 일했고, 여동생과 어머니는 결핵으로 죽고 말았다. 그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가 그에겐 오히려 친근한 감정이었겠다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절규

혼자만 아는 공포

뭔가에 놀란 듯 길게 벌어진 턱과 동그랗게 커진 눈, 얼굴을 감싼 표정을 한 <절규>는 누구나 아는 공포이미지의 대명사. 그런데 그림에선 중앙에 선 주인공보다 주변의 모습에 눈이 간다. 긴 길목에 혼자 선 그, 저 멀리 지나친 행인을 뒤로하고 홀로 극한의 공포를 맞이한 듯하다. 혼자만 알고 느낀 공포는 어떨까. 극한의 고립감이 더 해져 나눌 수 없는 막막함에 두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림 전체에 휘감는 선의 움직임이 그 순간의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사랑 끝에 오는 한 줌의 재

재 1

 그의 그림에서 묘사되는 연인의 모습은 여자는 도도하고 자신감에 차있고 남자는 어둡고 침울하다. 사랑을 나눈 후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그림일까.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당돌하게 꼿꼿하게 서서 긴 머리를 만지고 있다. 반면, 남성은 한쪽 구석에서 검은 옷을 입고 웅크린 채 괴로워하고 있다. 그에게 사랑은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선뜻 기쁨에 빠져 즐기기보다는 늘 그 이면의 어두움에 주목하는 그.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노심초사하는 내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다.



가면의 안쪽


나는 모두가 쓴 가면의 안쪽을 본다.
평온하게 미소 짓는 얼굴들,
무덤으로 가는 길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창백한 시체들.

-에드바르트 뭉크-


불안

백지장처럼 창백한 낯빛,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얼굴들. 무리 지어 걸어가는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등바등 살아도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그저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을 관통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뿐이라는 것을 그는 전고 싶었을까.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억하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토록 원했던 돈도 사랑도 권력도 그 어떤 것도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작은 욕망에 불과하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그러니 죽음을 생각하면 과한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를 즐기고 참여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도 있고 근거 없는 걱정도 두려움도 떨쳐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다 덜어내고 나면 유한한 삶 앞에 궁극의 중요한 것들만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유한한 삶을 즐기게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주문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신의 부름 앞에선 미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걱정할 것도 모두 사라지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뭉크의 그림은 어둠과 죽음을 그리지만 결국 삶을 찬양하게 되는 반대방향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화려한 빛으로 치장한 밝은 그림은 그 유한한 아름다움을 붙들어 두려 아등바등하는 몸부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 채웠던 뭉크의 붓끝엔 밝고 평온한 삶을 갈구하는 강한 욕구가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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