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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Oct 02. 2023

맑은 오후, 장욱진으로부터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할 일은 많다.

긴 연휴에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박차고 나왔다. 새로운 책  원고를 써야 하는 데 좀처럼 써지질 않았다. 집에 콕 처박혀 핸드폰만 쥐고 있는 애들도 소몰이하듯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결국 포기하고 혼자 나왔다. 비현실적 가을하늘은 누구도 집에 가만두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었지만 우리 집 식구들 누구도 따라나서지는 않았다. 갈등과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를 자칭하는 나는 억지로 누구도 설득하지않 홀가분하게 혼자 집을 나선다.


연휴 한 중간이라 그런지 버스 안이 한가하다. 가장 좋은 창가자리에 앉아 창을 살짝 열고 멍하니 바깥 바람을 맞는다. 가을하늘이 모두 내 것 같은 탁 트인 해방감이 좋다. 정류장마다 멈추었다가 움직이다를 반복하지만 익숙한 리듬감이 오히려 편하다. 창가 풍경을 맘 놓고 구경하고 멍 때릴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은 자가운전자는 못 누릴 나만 아는 즐거움이다. 실은 아직도 운전대만 잡으면 어깨와 목에 긴장감이 10배로 상승하는 초보운전자인지운전해방감은 모른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이토록 푸른 가을하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타이밍만 잘 잡으면 아름다운 창밖풍경을 카메라로 담을 수 있다. 한강을 건너며 아름다운 강변뷰를 감상하고 저 멀리 북한산의 능선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다. 무작정 나왔어도 행선지는 있었다. 오늘은 덕수궁 미술관행. 집에 있는 2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오늘만은 혼자서 자유를 누리겠다며 정중히 거절한다. 어제 외갓집에서 받은 용돈으로 치킨까지 시켜서 나눠주며 잘 다녀오라고 평소와는 달리 친절함까지 보이는 통에 더 이상 설득은 포기. 같이 가기로 한 막내는 마지막 순간, 컵라면 먹으러 가자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 혼자 미술관으로 향하고 만 것이다.

고풍스런 덕수궁미술관과 푸른 하늘 콜라보

 연휴는 연휴인지라 고궁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 틈 사이로 미리 예약해 둔 티켓 QR코드로 당당히 먼저 입장하니 별것 아닌데도 특급대우를 받는 것 같은 기분. 양주에 있는 장욱진 미술관은 갔다 온 적이 있지만 이렇게 따로 서울에서 단독 장욱진 전시를 본 것은 처음이다. 총 4개의 전시실에 작업시기별로 작품을 나누어 전시하였는데 그 수가 압도적이다. 장욱진 미술관에서는  수 없었던 많은 작품수에 깜짝 놀랐다.


나는 단순하다.

나무, 1986

장욱진은 나무, 새, 가족, 길, 집 등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주로 그렸다. 그들을 표현함에 있어 복잡하고 어렵게 표현하지 않고 단순하고 명료하게 나타냈다. 세련된 구도와 쨍한 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욱진의 그림을 좋아한다.


배와 고기, 1960
세 나무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나는 그저 길을 나선다. 집 밖으로 나가서 산책로를 걷거나 버스를 타곤 한다. 익숙한 곳이 아닌 곳을 여행자처럼 헤매고 다니다 보면 꽉 막힌 생각을 조금 멀리서  수 있다. 그렇게 한참 걷다 보면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의 돌파구가 생각날 때있고. 니체도 걸으면서 나온 생각만을 믿는다고 했다. 나도 걸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복잡한 생각이 정화되는 힘을 종종 느끼곤 한다. 장욱진은 욕심이 생길 때 자연을 직시하면 그 욕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붓에 뭔가를 이루었다는 욕심이 들어갈 때 그림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때면 무심코 자연을 직시하곤 한다.
요즘도 그림이 막히면
나는 까치 소리며 감나무 잎사귀들이
몸 부비는 소리들을 그저 듣는다.
그것만큼 사람 마음을 비우게 해주는 것도 드물다.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자우림의 <일탈>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엉뚱한 상상으로 단조로운 일상의 변화를 꾀하고 싶었던 젊은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니 나에게는 그런 일탈은 좀 힘들 것 같고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그저 다른 길로 돌아가는 여유 있는 생각의 전환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든다. 정재승 교수가 쓴 <열두 발자국>에서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다 보면 새로운 창조력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새로운 원고를 쓸 에너지가 멈춰버린 이유가 아마도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창작의 에너지는 욕심을 버리고 진정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마음을 비우는 과정에서 시작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자연을 닮은 장욱진의 그림을 보며 희미한 깨달음으로 건져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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