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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31. 2024

[북리뷰]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할 권리

책을 읽고 나누고 싶은 세 가지 질문입니다.

1.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나에게 위로가 되는 공간이 있나요?

2.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예술작품(그림, 음악, 영화)을 하나 소개해주시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 나눴으면 합니다.

3. 책에서 소개된 미술관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서 직접 보고 싶다고 느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이번 달 독서모임에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발제자가 올려준 질문에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림이 살아있다는 느낌


미술관을 다니는 걸 즐기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이 그림 때문일 거다. "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대학 졸업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해서 모은 돈으로 유럽여행을 갔었다. 그 당시엔 (지금도 잘 모르긴 하지만) 미술의 '미'자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숙제하듯 들어간 그곳에서 나는 이 그림 앞에 멈추고 말았다. 일단 그 어마어마한 그림의 크기에 압도되었고 실제처럼 실감 나게 묘사된 질감과 표정, 그리고 근엄한 분위기에 다시 한번 더 놀랐다. 진짜 책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었다. 이것은 마치 녹음된 음악과 라이브 음악을 들었을 때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원작을 감상하는 특별함에 매료된 이후로  쭉~ 미술관을 즐겨 다니게 되었다. 그때의 강한 인상이 나만의 취미생활을 만들어 준 셈. 그래서인지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https://youtu.be/BiCKH6 DCX6 Y? si=_vXuRyp3 bP_mYBEB



그림이 없는 그림책


이 책은 본인의 결혼식 날에 형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던 조금 슬픈 사연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내용은 분명 미술 이야기인데 그림이 거의 없고 있어도 스케치 정도의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그림만 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 많은 위대한 작품을 실으려면 저작료가 어마어마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사진의 수가 추가되면 지면의 배치나 페이지 추가에 따른 비용도 엄청나게 었을 것이다. 게다가 컬러로 인쇄해야 하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테고. 이런 현실적인 문제 이외에 또 다른 생각은 그림을 빼면 작가의 글이 남게 되는데, 그림에 관한 책이 그림이 별로 없고 작품에 대한 감상과 자신의 이야기가 전면에 나오게 했다니. 참 용기 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읽으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과 장면을 연상하게 만든 저자의 큰 그림일까. 궁금하지만  수가 없다. 특히나 전문가도 아닌 경비원의 눈으로 바라본 감상으로 책 한 권을 가득 채운 그 자신감이 대단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형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는 그의 담담한 여정이 이 책의 또다른 중심축이었기 때문에 많은 그림이 필요하지 않았겠다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그림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낸다. 사랑했던 형에 대한 기억, 가족과 함께 애도하는 슬픈 장면이 에세이처럼 읽힌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가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책에 더욱 몰입할 힘을 실어준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이 대중의 사랑을 더 많이 받지 않았을까. 


전국의 미술관을 누비던 시절


2년 전, <방구석 미술관 2>를 읽고 전국의 미술관을 돌며 [주간 화요일]을 연재했었다. 매주 한 곳의 미술관을 다니고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감상을 쓰고 작품 설명과 내 이야기를 일 년간 꾸준히 실었었다. 그때의 경험과 느낌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상기되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어느 순간 상상력의 문이 열렸다. 정보만을 전하려는 게 내 글의 목표는 아니었기에 최대한 창의적인 표현으로 적확한 묘사와 풍부한 감상을 전하고자 노력했다. 머리를 쥐어쓰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때로는 빈약한 표현력에 괴롭기도 했고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지는 표현력에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내 멋대로의 감상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개인적인 생각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흥행은 그런 걱정을 날려버렸다. 생각보다 예술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비전문가의 감상을 전하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다는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한번 미술 감상에 대한 책을 써볼 수 있겠다는 겁 없는 상상도 해본다.


슬픔이라는 감정의 파도타기


약 10여 년이라는 시간을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슬픔에 잠겨 고독했다가 서서히 사람들과 소통하다 아이를 얻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천천히 슬픔이라는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텅 빈 공간에서 몇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작품을 홀로 맞이하며 자신의 감정에 침잠하고 명작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간다. 오로지 미술작품 밖에 없는 공간에서 그는 지루함대신에 사치스러운 여유를 만끽하기까지에 이른다.


나는 이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 그것을 채울 수도, 죽일 수도, 더 작은 조각들로 쪼갤 수도 없다. 이상하게 한 두 시간 동안이라면 고통스러울 일도 아주 다량으로 겪다 보면 수월해진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일이 끝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시간이 한가히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구식의, 어쩌면 귀족적이기까지 할 삶에 적응해 버렸다.
(102쪽)


슬픔과 상실감이라는 감정에서 서둘러 도망쳐 나오려 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거나 자신을 들볶지 않고 바쁘게 살면서 잊으려 하지 않고 그저 그 감정이 들어왔다 나가는 걸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하고 기다리는 그 성숙함이 부러웠다. 우리는 제대로 자신의 감정에 빠질 여유도 없이 곧장 바쁜 일상 속으로 흘러들어 가 잊히길 강요하며 살지는 않았나. 생각하니 조금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뉴욕행 비행기표를 찾아보는 나


마흐라브 (인터넷 사진 캡쳐)


책을 읽는 내내, 이곳 매트(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나도 경험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압도한다. 이슬람 전시관을 담당한 브릴리가 마흐라브라는 신전을 묘사한 장면에서 이국정인 정서의 디자인과 숭고한 신전의 분위기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덴두르 신전에서 고요히 시간을 보내던 주인공 브링리의 귀족적인 시간을 따라가 보고 싶기도 하고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림 브뤼헐의 <추수> 앞에서 한 없이 감상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의 말대로 록콘서트 무대 앞에 있는 듯한 떠들썩한 삶에서 벗어나 수도원처럼 고요한 그곳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공기와 분위기에 마음껏 취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늘 그렇듯이 언젠가는 결국 가겠지만 커다란 미술관 속 한 남자의 고독한 머릿속을 책 한 권으로 여행하고 온 느낌이다. 각박하게 살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미숙한 방법으로 봉합하기에 급급한 우리들의 서글픈 초상이 중첩된다. 성인 남성이 슬플 때 힘들 때 술집이 아니고 골프장이 아니고 TV앞이 아니고 미술관을 가게 한 그 힘이 무엇일까 그 선택을 한 그 사람의 배경이 더욱 궁금해졌다.



예술이라는 것에 겁먹지 말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혀보면 어떨까? (중략) 예술을 경험히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생각이 흐르는 데로 작품이 이끄는 데로 나를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작품 속 자신을 만나라고 조언한다. 정답을 찾기 위해 이성과 지성을 풀가동 해 작품을 해석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면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술작품이 어렵다고 느끼는 건 뭔가 큰 의미나 의도가 있을 거라는 기대나 추측 때문일지도 모른다. 직관적으로 작품이 읽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것 대신에 그대로 바라보기.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기만으로도 충분한 감상이 되지 않을까. 작품이 묻는 질문과 대화의 단서에 몰두하고 내가 어느 지점에 시선이 오래 머무는지 인식만 해도 족하다는 생각. 나만 모르는 정답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접고 그저 보면 되는 여유를 즐기면 말랑말랑한 뇌가 살아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무한의 상상력과 무언의 대화들이 꽉 찬 미술관의 충만함이 다시금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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