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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ug 24. 2022

밥生밥死 : 다정했던 밥 한끼의 추억

 <H마트에서 울다> 북리뷰

입원 17일 차.


2주만 입원하기로 한 계획은 지난 주말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틀어져 퇴원이 1주일이나 연기되었다.  덕분에 짬짬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지만 이런저런 걱정이 들기도 한. 잠이 안 오는 어느 날 저녁, 동생이 사다준 책 <H마트에서 울다>를 꺼내 읽는다.

<H마트에서 울다> 미쉘 자우너, 인터넷 캡쳐


'언제 한번 밥 먹자!'그 흔한 말 한마디


'밥 먹었어?, 식사하셨어요?, 밥 한번 먹자'는 진짜로 식사 약속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쓰는 인사말 중 하나이다. 밥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음식 사랑은 유별나다. 생일마다 꼭 챙기는 미역국이며, 소풍 하면 생각나는 김밥, 비 오는 날엔 빈대떡, 입학식, 졸업식엔 짜장면을 꼭 먹어야 한다는 국룰도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어떤 날씨, 계절, 행사, 특별한 날, 지역에 딱 맞는 음식들이 줄줄이 따라 나온다.  게다가 누구네 집에는 총각김치가 맛있고 누구네 집에는 콩나물 잡채가 맛있고 집집마다 가족마다 특별한 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그에 따른 추억도 가득하다.  이 책의 주인공 미쉘도 마찬가지다. 미쉘은 한국인 엄마,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쉘이 접한 한국 음식은 외국인 같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묘사되어 그 표현이 무척 재밌고 신선하다.


엄마는 차례가 오면 김밥을 쌌다.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밥을 한 솥 가득해서는 거기에 노란 단무지, 당근, 시금치, 소고기, 계란을 넣고 얄브스름한 대나무 발로 돌돌 말고 또 말았다. 그러고는 모두 한입 크기로 도막도막 잘라 알록달록한 동전처럼 생긴 김밥을 완성했다. 수업에 가기 전에 엄마와 나는 채소들이 들쭉날쭉 튀어나온 꽁다리로 배를 채웠다. (140쪽)


김밥 싸는 엄마 옆에 앉아있다 얻어먹는 꽁다리의 맛을 어찌 잊을까. 한입 크기로 썰어 쉽게 먹을 수 있는 완성된 김밥도 맛나지만 재료를 한 가지씩 올려 한줄한줄 싸고 자르기를 기다렸다가 얻어먹는 김밥 꼬다리의 맛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로 별미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한국 음식이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느낌과 재료, 먹는 법 등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어 처음 보게 될 독자가 한국인이 아니었으므로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45주간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최근 BTS를 비롯한 한류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일까. 한국인의 정서와 음식 그리고 문화그려낸 이 책이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는 점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음식, 그 너머에 있는 것.

 우리나라 사람에게 있어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때우기 위한 리적 필요를 넘어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생선의 가시를 발라 숟가락에 한 점씩 올려주는 할머니 젓가락질엔 사랑이 가득하고, 큰 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기 접시를 좋아하는 사람 가까이에 놓아주는 손길에는 배려가 있다. 아무리 배고파도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시길 기다렸다 함께 먹는 밥상에는 존경의 마음이 담겨있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또 어떠한가. 좋은 식재료를 사기 위해 여러 상점의 채소를 비교하고 살펴보고 고르는 수고로움이 있고, 좋은 재료가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르고 손질하는 손길에는 정성스러움있다. 메뉴를 고를 때도 서로 어울리는 음식을 요리해서 한상에 올리는 센스가 더해지고, 뚝배기를 쓸까, 스텐을 쓸까 요리의 성질에 맞는 그릇을 선택할 때도 경험에 따른 안목이 추가된다. 음식을 내어놓을 때도 쉽지 않다. 덥고 찬 음식의 성질에 맞게 순서까철저하게 계산해둬야 비로소 맛있는 한상을 만날 수 있게 다. 이쯤되는 그냥 밥 한 끼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도 할 정도다. 먹고사는 것은 이렇게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미쉘의 한국인 엄마, 정미는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나누는 행위를 통해 딸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시나브로 심어준다. 


우리는 낄낄거리다 서로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간장게장을 손으로 집어먹었다
  토실토실한 생게 다리를 쪽쪽 빨았다가 혀끝을 껍질 사이로 밀어 넣었다 하면서 짭조름하고 몽글몽글한 살을 발라먹는 틈틈이 손가락에 묻은 간장을 핥아먹었다. 엄마는 깻잎조림을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서 말했다.
'넌 진짜 한국사람이야.'


말기암으로 힘들어하던 엄마에게 추억의 맛을 선사하고 싶었던 그녀. 기억했던 그 맛을 내기 위해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길고 긴 항암치료에 지쳐 입맛을 잃어버린 엄마를 도울 수 없다는 자책감만 커졌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방황의 시간을 이겨내고 일으켜 세운 것도 결국 음식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영상을 따라 어렵사리 만들어낸 잣죽이 그녀가 원하던 딱 그 맛이었던 것이다.  이후로 그녀는 엄마와의 다정했던 기억이 담긴 한국음식을 하나씩 도전해서 만들어 낸다. 추억의 맛을 재현해내며 또다시 살아갈 용기도 서서히 찾아가게 다. 이쯤 되면 고향의 맛, 어린 시절의 음식이 사람을 죽게도 살게도 만드는 '밥生밥死' 명약쯤 될 것이다.


다정했던 밥 한 끼의 추억 속으로
추억의 갈치조림

 여수 근처에 있는 섬이 고향이었던 우리 엄마는 바다에서 나는 재료로 요리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무엇보다 신선하고 물 좋은 생선을 고르는 안목이 있었다. 좋은 재료로 요리하니 더 맛있었을까. 생선을 손질하는 솜씨도 거침없어서 생선이 들어가는 요리는 뭐든 맛있게 뚝딱  만들어내셨다. 삶은 고구마 줄기를 깔고 국물을 자작하게 해서 조려낸 고등어조림은 기본이고 살이 도톰하고 부드러운 알배기  병어구이,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간자미 무침에 알맞게 삶아낸 오징어 숙회까지. 화려하거나 거창한 음식은 아니었지 간이 딱 맞아 입에 착 붙는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갈치조림이였다. 무를 깔아도 맛있고 감자를 깔아도 맛나다. 익은 생선살에 양념이 적당히  파근파근한 감자를 부서지지않게 살짝 쪼개서 밥 한술에 올려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그 감칠맛에 홀려 자매 넷이 게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곤 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넷이 다리를 포개고 전쟁하듯 먹던 그 시절,  소박했던 우리 가족의 밥상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밥상 한가운데 갈치조림 한 냄비를 두고 머리를 맞대며 치열하게 가락을 부딪히며 복작대던 밥 한 끼가 지금의 건강한 나를 키워냈겠지. 요즘 같아선 작고 많은 뼈를 발라내기 귀찮아서 해먹지도 않는 갈치조림이다. 퇴원하면 실한 갈치 한 마리 사다가 오랜만에 추억의 한상을 차려 야겠다. 그때 그맛이 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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