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요일 Nov 19. 2023

어른 노릇

<자전거 도둑> vs. <How to steal a dog>

<자전거 도둑>의 주인영감


"네놈 오늘 운 텄다."

그리고는 수남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과 턱을
두둑한 손으로 귀여운 듯이 감싼다.
영감님이 기분이 좋을 때면 수남이에 대한 애정의 표시로 으레 그렇게 했었고,
수남이도 그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싫다. 영감님의 손이 싫다.


수남이는 세운상가의 작은 전기상회에서 심부름을 하는 꼬마다. 주인영감은 성실하고 착한 수남이를 귀여워하지만 자신의 손해를 입히는 일은 딱 질색인 영락없는 장사치였다. 어느 날 사고가 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고. 자전거를 타고 심부름을 하던 수남이는 실수로 고급차에 상처를 내고, 변상을 요구하는 차주의 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자전거를 빼앗긴 뒤, 고민하던 수남이는 결국 자신의 자전거를 몰래 훔쳐 달아난다.  허겁지겁 달려온 수남이를 주인영감은 차에 상처를 내고 빼앗긴 자전거를 훔쳐 달아난 수남이를 오히려 칭찬한다. 수남이는 도덕적으로 자기를 견제해 줄 어른을 그리워했다. 자기가 잘못한 일을 나무라기는커녕 손해 안 난 것만 좋아하던 주인 영감이 싫어졌던 것이다.



<How to steal a dog>의 Mookie



Sometimes, the more you stir,
the worse it stinks.

때때로 뭔가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냄새가 더 지독해지기 마련이지.



주인공 조지아는 사춘기 소녀다. 싱글맘 엄마, 남동생 토비와 함께 자동차에 산다. 가난과 불안이 싫었던 조지아는 이 궁핍한 상황을 해결할 묘책을 생각해 낸다. 길거리에서 실종 반려견을 찾아주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는 포스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근처 이웃의 개를 훔치기 위한 계획을 한다. 어느 날, "윌리"라는 강아지를 포착하고 잽싸게 훔쳐 달아나는 데 성공한다. 산속 깊은 곳 폐가에 강아지를 숨겨두고 상금 포스터가 걸리기를 기다리는데, 어느 날 떠돌이(bum) 무키(Mookie)가 윌리를 돌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조지아가 개를 훔쳐서 뭔가를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혼내거나 섣부른 조언을 하지 않고 묵묵히 조지아를 기다리고 도와준다. 한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계속 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걱정하며 무키가 건넨 말이 조지아에게 오랫동안 남았고, 결국 그녀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집주인에게 개를 돌려준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처럼 좋은 아저씨는 없나요?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좋은 어른의 모델을 보여주는 명품드라마였다. 주인공 박동훈(이선균)이 직장 상사이자 이웃으로 이지안(아이유)을 살뜰히 보살피고 성장하도록 도왔다. 로맨스로 흐를법한 이야기였지만 결코 뻔한 결말을 만들지 않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 좋은 어른의 모습을 중심에 두고 묵직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보여주며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최근, 현실 속 아저씨, 이선균은 마약혐의로 연일 뉴스 일면을 장식 중이다.  이 시대의 어른은 어떠해야 할까.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이 참으로 커 보였다. 말하는 모든 게 맞고 아는 것도 많아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큰 사람이었다. 크면서 그런 완벽한 어른이라는 것은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았지만 그 실망이 클수록 내 안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어른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네이버 국어사전 캡쳐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

그런데 자기 일이 어디까지일까. 내가 스스로 내 몸을 건사하고 먹고사는 일을 책임지면 그만일까. 결혼을 하면 나는 물론이고 배우자와 가족까지도 책임져야 할 의무를 가진다. 여기까지만 하는데도 너무 벅차서 다들 헉헉 거린다. 그런데 좋은 어른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내 가족을 넘어서 이웃, 동료등에도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요즘은 순수한 의도라 할지라도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고 훈수를 두었다간 당황스러운 일을 면치못하곤 한다.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들에게 어설프게 잔소리를 했다간 더 큰 욕을 듣기도 하고, 싸우는 사람들 말리다가 괜한 오해를 사서 골치 아픈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정말이지 좋은 어른이 되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전거 도둑>의 수남이는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누군가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토껴라. 토껴!" 나지막이 속삭이는 어른들. 자전거를 훔쳐 달리며 그는 묘한 쾌감을 느끼고 나중에는 그런 자신을 질책한다. 또 자전거를 훔쳐 달아난 자신에게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지 않은 어른인 주인영감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둑질은 절대로 하지 말라"라고 가르쳤던 아버지를 찾아간다. 어른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수남이는 좋은 어른이 어떠해야 하는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반대로 <How to steal a dog>의 조지아는 무키의 진심 어린 조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했지만 잘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구하는 좋은 선택을 스스로 한다.


이렇게 거짓말과 도둑질이라는 잘못된 행동에 어른의 상반된 태도가 결국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아이들은 아이에서 조금 더 자란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결국 어른이란.

새로 정의하는 어른은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성장해 나가는 것, 변화를 거듭해 껍질을 깨고 더 편한 내가 되는 것. 누가 자신에게 잘해주든 못 해주든 그것을 보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어른 성장여정이 계속 수정되고 변화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변화를 멈춘 사람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나. 아직 완성형이 아닌 나를 인정한다면 누구에게 섣불리 조언도 충고도 하기 힘들다. 그런데 때때로 우린 자신이 완벽한 어른인 것처럼 쉽게 하나의 답을 말하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은 쉬운데 나는 어려운 것을 그들은 무조건 따르라고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듣는 이는 뒷걸음치고 그를 피하고 만다. 그러다가 결국 외로운 어른, 꼰대가 되고 만다.


나의 오랜 제자 석환이가 찾아왔다.

긴 구직활동 끝에 드디어 원하던 곳에 합격한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취업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계속된 구직활동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고 인터뷰에서 듣는 질문에 대답하는 경험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고. 그간 같이 했던 독서모임 때 미리 고민해 두었던 자기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이 이번 취직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며 고마운 이야기를 주었다. 기쁜 마음에 이런저런 쓸데없는 조언을 해주었지만 중요한 것은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활동을 해도 모든 아이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석환이 스스로가 같이 나눈 질문을 더 깊이 생각했고 더 고민했고 자신의 경험과 잘 연결했기 좋은 결과가 있었던 거라고 말했다. 결국 더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주변의 많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고 해석해서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려있는 거라고 그의 노력을 칭찬해 주었다.


누구에게나 어른이 필요하다.

실은 나도 내가 따르고 배우고 싶은 더 좋은 어른을 찾고 있다. 때때로 나만의 고민과 생각이 깊어지면 내 생각을  들어주고 같이 방법을 찾아주는 멘토 같은 어른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이것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했었나. 결국 밖에서 찾고 구했던 답은 마땅치 않았다.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열심히 얘기했던 고민들은 말로 체화되면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리곤 한다. 불편한 감정의 실체를 로 맞닥뜨리게 되면 나 자신도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서 나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기도 한다. 결국 좋은 어른은 나를 잘 비추어주는 사람.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신체는 다 성장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엔 한참 먼 나는 그저. 나를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잘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이 되고자 한다. 나도 그들에게 비친 나를 보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잘 반사해 준다면 그걸로 어른 노릇은 다 한 게 아닐까.


다만 나를 비추는 그 거울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기 싫은 내 모습도 피하지 않길,

상처와 눈물로 얼룩진 표면도 손으로 닦아내면 다시 깨끗해질 거라고 믿고.

때때로 튀는 구정물에 속상해하지 말길.

흩날리는 가벼운 먼지를 털어내고 맑은 거울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환하게 비추면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라고 되뇌어본다.


문득, 손디아의 <어른>이 듣고 싶다.

깊은 밤, 낮은 볼륨으로 흐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사를 한 글자씩 음미한다. 나지막하게 따라 부르며 가사에 내 모습을 비추어본다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깰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깰 거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저도 꿈꿔도 될까요?: 중년에 처음 품은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