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하나만 투어 (3) : 고흐마을
파리에서만 10일
파리 한 곳에서만 머문다 해도 볼 것은 너무 많지만 그래도 한 번은 근교로 나가고 싶었다. 실은 모네의 작품 <수련>의 배경지가 된 지베르니를 가고 싶었는데 겨울에는 휴관이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 그래서 택한 파리근교 "고흐마을, 베르사이유 투어"
그런데 이 둘을 나란히 붙인 투어를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고흐마을로 출발!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집합장소에 간다. 잠시 후, 8시쯤 밴이 도착한다. 8명을 꽉 채워 차가 출발하고 한 시간 후,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우아즈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봤던 풍경처럼 도시가 낯설지가 않다.
고흐의 그림 속 배경지였던 시청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 한번, 시청 한번 보는데 신기할 뿐이다. 그리고 그 앞에 고흐가 살았던 집이 있다. 그는 이곳에 약 70일 정도 살았는데 80점의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 그림의 대부분이 지금은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으니 "고흐마을"이라는 별명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고흐가 살던 집 옆의 작은 골목을 올라가는 곳곳에 실제 그의 그림의 배경이 된 장소가 줄줄이 나온다.
그림과 나란히 배치된 실제 풍경을 보니 그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훨씬 대단하게 느껴진다. 평범한 풍경에 색을 입히고 붓칠을 해서 더욱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그림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만들다니
그는 죽기 며칠 전에 <뿌리>라는 제목의 그림을 남겼는데 최근에 실제 배경지가 밝혀졌다고 한다. 그림을 보고 드러난 나무의 뿌리를 보니 진짜 닮았다.
고흐 이야기로 걷는 마을
가이드님이 설명해 주는 고흐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릿느릿 동네를 걷는다. 길가의 작은 집들이 흙벽에 원색의 창문, 작은 식물로 장식되어 있다. 동화 같은 마을풍경에 있으니, 스산한 겨울날씨에도 따뜻한 풍경에서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다.
고흐의 큰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조카도 모두 이름이 빈센트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 큰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서 그림을 팔던 때, 그는 그 일에 별로 소질이 없었다. 손님이 오면 손님이 원하는 그림을 팔아야 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사라고 어설픈 훈수를 두는 통에 일을 망치곤 했다고.
그랬던 그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제안했던 것이 동생 테오였다. 테오는 고흐가 하던 일을 대신하여 시작했는데, 그림 파는 실력이 좋았다고 한다. 그는 형이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내가 팔아줄게 하면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광부들의 칙칙하고 궁핍한 삶을 묘사한 그의
그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오는 파리로 형을 불렀다. 파리 몽마르트에서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연구해보면 좋겠다하고. 동생 테오의 지원은 참으로 넓고도 깊다. 잘 적응하면서 지내나 싶더니 거기서도 적응하긴 힘들었나 보다. 곧 아를이라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외로웠던 그는 함께 작업할 화가를 구했으나 아무도 답이 없었는데 오직 고갱만이 손을 들었다고. 그런데 막상 같이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다툼과 갈등이 멈추질 않았다. 하루는 고갱이 그린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고흐가 크게 화를 냈고 논쟁끝에 분노에 못 이겨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엽기적인 고흐의 모습에 깜짝 놀란 고갱은 결국 그를 떠나고 말았다.
또다시 혼자 남은 그
그는 테오의 권유로 이곳, 오베르 쉬르우아즈에 정착하게 된다. 아름답고 작은 마을, 형을 돌봐 줄 의사도 있는 이곳에 그를 데리고 온다.
어느덧 동네의 꼭대기 성당 앞에 도착했다. 작고 아담한 성당이 우뚝 서 있다. 그 모습이 멋져서 사진으로 찍고 남겨 두었는데 익숙한 장소가 오르세 미술관에 작품으로 있었다. 고흐의 그림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반갑고 신기했다. 칙칙한 갈색과 고동색으로 차분했던 건물이 그의 그림에서는 밝은 원색을 만나 춤추듯 빛이 난다.
테오와 함께 묻히다.
언덕을 넘어 공동묘지로 가는 길, 화려한 장식의 묘지들이 즐비한 가운데, 안쪽 끝에 위치한 고흐의 묘가 있고, 그 옆에 동생 테오의 이름도 보인다. 그 모습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덩굴로 이불을 나누어 덮은 사이좋은 형제처럼 정답다. 그의 사망원인에는 의문점이 많다. 고흐 자신은 자살을 했다고 말했지만. 상처의 방향이나 깊이 등으로 유추해 봤을 때는 자살은 아닌 것 같다고. 모두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아마도 고흐는 자기 때문에 누군가가 곤란해지거나 힘들어지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그에게 총을 겨눌 정도로 그를 싫어하고 증오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그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뿐, 진실은 고흐,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동생 테오도 곧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형의 그림을 팔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형이 죽고 나서 고흐 그림만을 놓고 전시회를 열었다. 그런데 그 전시에서 고흐의 그림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살아생전에는 그의 그림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그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형의 그림을 팔면서도 대중에 대한 묘한 배신감과 괴리감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는 곧 형, 고흐를 따라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소박한 그림, 강렬한 빛
I dream my painting and
I paint my dream.
나는 내 그림을 꿈꾸고
나는 내 꿈을 그린다.
-반 고흐-
고흐는 24~37세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생전에는 지극히도 외로웠던 그, 그러면서도 작고 소박한 것들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길가의 풍경, 너른 들, 까마귀, 카페, 집, 성당, 하늘, 일하는 사람들... 그가 사랑했던 것들은 지극히 평범했던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는 소박한 것들을 그리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망을 담은 그의 그림이 널리 많이 알려지고 보일수록 더 많이 사랑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의 작은 바람이 나에게도 닿았을까. 루브르와 베르사이유에서 화려한 그림 수 만점을 보고 왔어도 유독 작고 소박한 고흐의 그림만이 강렬한 빛으로 내게 남아있다.
#라라크루10기
#7-1미션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