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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김민섭 찾기

[북리뷰]+샛길여행 with B.T.F.

by 화요일

지난해 겨울

우리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주관했었다. 이를 계기로 김동식 작가와 김민섭 작가를 알게 되었다. 두 분 작가는 사서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고 행사도 진행해 주셨지만 담당 부서장으로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은 가히 충격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짧고 굵은 SF 창작 단편 소설집이었고, 그와 반대로 김민섭 작가의 책,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제목처럼 몽글몽글 인간미가 넘치는 에피소드가 실린 수필집이었다. 이 둘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하고 들어보니, 김민섭작가님께서 김동식작가님을 알아보시고 책출판을 기획, 진행하셨다고 한다. 최근 유퀴즈에 나온 김민섭 작가님의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의 유명세로 이 두 분은 말 그대로 핫한 유명인이었다. 친근감 넘치는 말투의 김동식작가님의 강연은 중학생들의 열띤 환호를 받았고, 김민섭작가님의 강연은 차분하고 또렷한 목소리와 수려한 말솜씨, 따뜻한 이야기로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회색인간>김동식,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김민섭


우리 김민섭 작가 보러 갈까?

그리고 작년 12월, 20대 청춘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 B.T.F.(Book Talk Freinds)에서 우연히 두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김민섭 작가님의 책을 읽고 그분이 운영하시는 강릉의 <당신의 강릉>이라는 서점에 가보자고 급제 안 했었다. 모두 오케이 했고 그리고 지난 주말, 나는 4명의 20대 청춘들과 강릉에 도착해 있었다.



저희, 내일 갈 예정인데요~

강릉으로 향하는 차 안, 빠른 실행력이 빛나는 주연이가 김민섭작가님이 운영하는 서점에 전화를 했다. 혹시나 작가님을 직접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내일 우리가 서점에 갈 때쯤 작가님이 계신지 확인해 본 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난 주연이가 지금 전화받은 분이 작가님 같다고 내일 몇 시쯤에 오는지까지 물으시는 걸 보니, 우릴 기다리고 준비해 주실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아. 진짜?
진짜 작가님이 전화를 받으셨다고.?!
와~ 진짜 신기하다.



직접 작가님이 전화를 받으실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점에 근무하시는 직원분이 받으시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작가님과의 직접 통화했다고 하니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진짜 작가님이 진짜 우릴 위해 시간을 비우고 기다려주실까 사실 반신반의했다.


새벽 3시, 아직 식지 않은 열기

강릉에 도착해서 이곳저곳 둘러보고 마지막 멤버, 석환이까지 합류한 시간이 저녁 9시. 다 같이 모여 늦은 저녁을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무엇보다 내일 김민섭 작가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뭔가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책 내용부터 확인한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에피소드를 정리해서 말한다. 아직 책을 못 읽은 사람을 위한 속성과외를 시작한다. 헌혈을 주기적으로 하게 된 사연, 비행기표 환불대신 동명이인 김민섭을 찾아가는 여정과 그를 둘러싼 훈훈한 이야기, 교통사고가 고소로 이어지는 이야기, 눈물겨운 다이어트 챌린지 성공기까지. 책 내용을 쭉~훍고 복습하니 왠지 든든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질문과 소감들을 주고받는다.


혹시, 나에게도 김민섭 작가의 헌혈 같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런 행동이나 의식이 있을까?

나에게도 김민섭작가처럼 환불해도 얼마 받지 못하는 비행기표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


각자의 자리에서 뭔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들을 말한다. 나는 글쓰기가 헌혈 같은 존재라고. 글을 통해 내 작은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기록하는 일이 어찌 보면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일이고 내가 경험한 실수와 성공을 나눔으로써 그 노하우가 필요한 사람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더 나아가 나 자신에게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이 됨을 추구하게 되는 의식 같은 행동이라고 고백해 본다.

김민섭 작가님처럼 나에게 누군가와 나눌 표가 생긴다면, 나는 아마 기꺼이 나눔 했을 것이다. 실제로 공연이나 전시 표가 급작스러운 일로 남게 되면 나는 기꺼이 모르는 타인이라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곤 했다. 하지만 이름까지 같은 사람을 만약 찾아야 한다면 그건 조금 곤란할 것 같다. 내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동명이인 찾기는 낙타가 바늘에 들어갈 확률만큼이나 낮아서 영문은커녕 한국어 이름이 같은 사람 찾는 것도 쉽지 않을 듯.


이런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다 보니 시곗바늘은 새벽 두 시를 넘어 세시를 향하고 있다. 서둘러 잠자리에 들고 내일 있을 만남을 준비한다.


김민섭씨 찾기 성공!

눈을 떠보니, 아침 8시. 씻고 준비하고 서둘러 나간다. 숙소에서 로 10여분, 김민섭 작가가 운영하는 <당신의 강릉>에 도착, 주차할 곳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그 순간, 건물입구에서 검정 티셔츠를 입은 유퀴즈에서 보던 그 사나이가 걸어온다. 수줍은 듯 인사를 하고 주차할 곳을 안내해 주는 그.


앗싸! 드디어 김민섭님을 찾았다.



친절하게 건물을 소개해주시고 앉을자리까지 안내해 주신다. 카페와 서점을 뛰어다니며 종횡무진 일하시는 그를 붙들고 인도 받고 싶고 여쭐 것도 있는데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냐고 묻자, 우리가 10시에 온다고 해서 11시까지 시간을 비워놓고 기다렸는데, 지금 시간이 늦었으니 11시에 약속한 팀과 먼저 일 보시고 잠시 들러주신다고 하신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급 미안한 마음에 죄송스럽다. 그래도 다시 뵐 수 있으니 고맙고 또 다행이다. 기다리는 동안 차도 시키고 서점과 카페도 구경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당신의 강릉 & Cafe Sie>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허겁지겁 작가님이 나타나셨다. 간단하게 모임 소개를 하고 준비한 질문도 하나씩 여쭤본다. 작가님은 급작스러운 질문에도 미리 준비하신 분처럼 청산유수로 말씀하신다.



Q1. 다이어트 챌린지 성공하시고 여행은 다녀오셨나요?

네. 코로나 때문에 해외는 못 가고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하고 왔습니다.


Q2. 혹시, 2003년생 김민섭 님도 찾으셨나요?

아뇨. 그건 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Q3. 저도 글을 쓰고 있는데요. 수필을 쓰다 보면 안전하고 무해한 글을 제가 쓸 수 있을까.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글을 쓰려고 하지만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피해가 되는 글도 있게 마련인데요. 작가님은 악플, 혹시 비슷한 경험 있을까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음.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가령 여행에 대한 글을 써도 그 여행에 대한 나의 감상과 변화,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요. 무해하고 책임감 있는 글에 대한 생각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Q4. 작가님의 글을 보면 먼지 같은 존재에서 헌혈이라는 행동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시작하셨고 최근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내신 것 같은데요. 혹시 기분은 어떠신지.

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 저 자신을 위한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상대가 그 도움이 필요하다면 좋은 거고 감사한 거죠. 실제로 뭘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 봉사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예전의 저도 실은 먼지 같은 존재 아닐 수도 있는데 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안타깝죠. 지금은 책이름과 같은 비영리단체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김민섭 작가님과의 즉석 북토크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

나는 무료 PT3 회를 마치고 나면 개인운동으로 전환하려 했지만 50여 만원을 들여 10회 PT권을 결제하고 말았다. 이것이 애초에 이 챌린지가 가진 상술이라거나 그가 나에게 동정을 구한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가 처한 구조적인 처지도 모두 진실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위한 일이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 211쪽

남과 나누고 즐기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때때로 신나게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문득 허탈감에 시달리곤 했다. 내가 이용당한 건 아닌가, 나만 바보같이 좋아하는 건가. 내 것도 못 챙기고 헤헤거리며 사는 건 아닐까. 내 시간과 노력을 손해 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싸일 때가 있다.


요즘은 종종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두고도 잠자코 있거나 남들이 하도록 그냥 두고 기다리기도 한다. 건강이 급격히 안좋아진 탓도 있지만 어떤 일을 앞에 두고 계산하는 내가 탐탁치않다. 내가 좋으면 됐지, 실컷 나누고 주고 애써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왜 어렵게 되었을까. 내 의도나 노력이 순수하지 못한 건 아닐까 어줍지 않은 계산을 하며 나약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김민섭 작가의 말처럼 모두 나를 위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텐데. 강릉까지의 여정에 4명의 20대와 50대 여자 1인, 내가 함께 했다. 무턱대고 김민섭작가를 보러 가자는 말에 또 무턱대고 따라나선 청춘들. 다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새학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의식.



괜한 걱정, 다 큰 청춘

서울에서 강릉.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속으로는 조금 걱정했었다. 석환이는 퇴근하고 멀리 오느라 고생스럽지는 않았나. 병호는 긴 시간 운전하느라 힘들진 않았나. 주연이는 넉넉지 않은 예산 쪼개서 쓰고 계산하느라 버겁지는 않았나. 애써 준비하고 조사한 장소 다 못 가서 지우는 서운하지 않았나. 괜스레 걱정하고 마음 쓰는 나.


동명해변 푸른 바다와 하늘


문득

있는 그대로

곱고 아름다운 바다가 쏟아진다.


가늘고 고운 입자로 무엇이든

스르르 안아주는 모래가 반짝이고

깨끗하고 청량한 빛으로 파도가 출렁이고

푸른 물결 위에 또다시 푸르름을 얹어놓으며 구름이 흘러간다.


맨 처음 만났던 때, 철부지 중학생처럼

모래사장을 걷고 뛰고 파도를 따라다니는 아이들

출렁이는 파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청춘들


괜한 걱정을 했다.


벌써 다 컸구나.

웬만한 어려움은 버티고 이겨낼 만큼 다 컸구나.

괴로움과 고통 끝에

자기 몫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 깨닫고 가져갈 만큼 너희들 참 많이 컸는데 내가 그걸 몰랐다.




김민섭도 찾고
나도 찾고
다 큰 너희들도 찾았다.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대성공!


김민섭 작가님의 친필 싸인


#라라크루10기

#11-2미션완료

#김민섭

#당신이잘되면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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