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의 생일이란

중년의 진로수업

by 화요일

케이크대신 수액으로

아침저녁으로 변덕스러운 날씨에 맥없이 감기가 걸렸다 나았다 반복. 감질나는 체력은 주중에 몰아 쓰고 주말에는 이렇게 앓는데 쓴다. 오늘은 마침 50살 생일이라 병원에 누워있으려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든다. 차츰 꺼져가는 체력에 기분도 열정도 수직하강하는 듯한 느낌. 그냥 굴복하긴 싫어서 운동도 하고 병원도 제때 챙겨가지만 괜한 서글픔은 어디서 오는 건지. 자동으로 발송되는 쇼핑몰의 생일축하 메시지가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이래선 안 되겠다. 내 몫의 건강, 내 몫의 행복을 스스로 찾고 지켜보자 마음먹는다.




우리 케이크 하나 더 사요.
실은 내일이 제 생일이거든요.


셀프 축하로 맞이하는 날

한 달에 한 번 하는 모임, 베이커리 카페서 총무가 음료와 빵을 주문한다. 얼른 쫓아가서 쟁반에 작은 케이크도 하나 더 슬쩍 넣는다. 내일이 내 생일이라고 멋쩍게 말하고는 케이크도 먹고 주인공이 되어 생일축하 노래까지 야무지게 받는다. 지인들의 박수와 축하에 기분이 조금씩 좋아진다.


카톡에도 생일공개

실은 지인들에게 괜한 부담을 줄까 싶어 카톡에 생일공개를 비공개로 바꿔뒀었다. 근데 이번에는 공개로 수정. 긍정의 기운이 필요한 날이었다. 생일날 아침, 지인들의 생일축하 댓글 샤워를 받고 덩실덩실 귀여운 이모티콘에 내 마음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





나이 들면 여유와 이해심이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물론 많은 경험과 연륜 덕에 일희일비의 폭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희로애락의 감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이 더 빨리 느끼고 감지한다. 그런데 감정을 처리하고 표현하는 것은 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실은 내 감정과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감정을 감추고 참기만 하다 보니 엄한 순간에 폭발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고.



내 욕구를 드러내기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상대나 주변사람의 욕구나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먼저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줄 만한 옷을 고르고 우리 형편에 맞는 대학교를 고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쭙잖은 아이 어른으로 자라났다. 지친 엄마에게 먹고 싶은 과자를 더 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고 칭얼대는 동생들 속에서 내 몫의 사랑을 더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언젠가 알아차리고 챙겨주길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늘 서툴고 어려웠다. 이제 와서 작은 케이크 하나를 더 사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생일을 축하해 달라고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실은 어린 나에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이 반백이 돼서야 비로소 내 욕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니.




외로움이 아닌 고독

동생 셋의 맏언니. 늘 처음으로 뭔가를 시도하는 첫 아이였지만 부족하고 실패하는 모습은 절대 보이기 싫었다. 뭐든 최선을 다하고 또 혼자서 해냈다. 누구에게도 쉽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먼저 빨리 해결해내곤 했다. 언니니까 잘해야 했고 언니니까 책임져야 했다. 동생들의 끼니를, 바쁜 부모님의 빈자리를. 그래서일까. 늘 리더이고 맏언니인 게 익숙했다. 챙기고 돕고 나서는 게 쉬웠고. 하지만 그 익숙한 일은 내게 외로움과 불안함을 남겼다. 부족한 내가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남들 눈치를 살폈고 늘 도움에 익숙한 이들이 떠나고 홀로 남은 나는 말 못 할 외로움을 느꼈다. 타인의 칭찬과 고마움의 말로도 해결되지 않은 공허함은 언제나 같은 비율로 가슴에 덩그러니 있었다. 미련하게도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했다. 알고 보니 그건 누구나 자기 몫으로 가진 원초적 고독이었다. 타인에 의해 채워질 수 없는. 그것과 친해지는 것이 어른됨의 시작임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애쓴 내 몸에 대한 예우

실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들 사이에 고민하며 체력을 바닥 내고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게이지를 조절하는 것. 그 많은 일중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뭔가 선택하면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난 둘다를 갖고 싶은지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앞에서 우왕좌왕이다. 더 하고 싶고 더 도전하고 싶은 것들을 보고 문서를 열었다 닫았다 신청서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결국 뭔가를 선택하고 욕심을 내면 백발백중 몸이 아프다. 제일 먼저 몸이 알아차린다. 불굴의 의지로 아픈 걸 감내하고 도전하고 이뤄내는 이의 모습에 나도 따라 해 보자 했다가 또 아프고 좌절한다. 내 몸을 잘 돌보는 일. 반백의 내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임무다. 몸과 마음을 살피고 돌보는 것, 조심조심 어르고 달래며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50년 동안 잘 버텨준 내 몸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오랜 인연의 반가운 인사

카톡에 공개한 생일 프로필을 보고 졸업한 제자들이 인사를 건네온다. 반가운 이름들이다. 열정을 다했던 시절의 내 작은 정성의 씨앗들. 그때의 추억, 즐거움으로 다시 돌아가 반가운 마음에 그들과 안부를 나누고 기억을 되새긴다.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나에겐 매일 쓰고 지우던 선택하고 포기했던 지지부진하고 우유부단했던 일상이 키워내는 나무일지도 모른다. 때론 잘 익은 열매의 인연이라는 열매가 맺히기도 하고 때론 벌레에게 뜯어 먹히고 비바람에 다 익은 열매가 떨어지기도 하는. 그저 매일을 후회 없이 버티고 살아내고 나면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둘레의 크기의 나무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내 벗들, 제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품어본다.


또다시 흐뭇한 얼굴, 감사한 마음으로 지인들과 제자들의 메시지 하나하나 다시 찾아 읽는다. 내 곁에 늘 있었던 행복이라는 이름의 세 잎클로버를 찾아 나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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