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를 아시나요?

우정의 글쓰기

by 화요일

반복되는 삶

다른 듯 반복되는 계절, 알록달록 꽃피는 이 즈음이면 가슴이 콩닥콩닥 밖으로 나가고만 싶은

소녀 감성이 폭발하고 만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더욱) 이심전심, 마음이 통한 어린 시절, 같은 동네 살던 40년 지기 친구들의 호출.



야. 우리 바람 쐬러 가자.





폭풍 같던 시절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고 일하느라 정신없던 30~40대, 어릴 때는 밤이고 낮이고 놀러 다니던 친구들은 어느 순간 각자의 집에서 엄마로 아내로 살면서 그 흔한 외출은 너무나 힘든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세월은 흐르고 아이들도 커서 스스로 라면으로 한 끼쯤은 해결할 수 있을 때쯤, 친구들의 호출은 잦아졌다. 50살 기념으로 교외로 나가기로 급결정했다. 결전의 날, 차를 운전하는 친구가 있는 곳으로 삼삼오오 모인다. 길가에 흩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린다. 벚꽃 블루밍과 벚꽃 엔딩 사이 그 어디쯤, 흩날리는 꽃잎과는 반대로 무겁고 느려진 몸이지만 꽃놀이가 즐거운 건 언제나 똑같다.



만개한

만개한 수선화

화담숲에 도착했다. 마침 수선화가 한창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촘촘히 들어선 노란색 꽃잎이 도도하고 싱그럽다. 허리가 아픈 친구, 무릎이 불편한 친구. 아이고 아이고 하는 중년의 소리와 봄을 만끽하는 소녀의 탄성이 섞여서 호들갑스럽다.


야. 너무 이쁘다.
(아고 허리야~)



한번 들어서면

결국 한 바퀴를 돌아야 하는 길. 산책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초반 호들갑스러움은 어느새 끙끙 앓는 소리로 바뀌어있다. 쫓기는 일정은 없으므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꽃과 나무가 가득한 언덕 어딘가에 잠깐 앉는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고단한 몸은 잠시 쉰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응차! 얕은 기합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선다. 시시때때로 눌러대는 카메라가 없었더라면 더 빨리 걸었을까. 중년의 친구들은 웃고 떠들고 끙끙거리며 2시간의 코스를 어찌어찌 꽉 채워 걸었다.






수선화의 꽃말

자기애, 고결, 신비, 외로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수선화는 나르시스라고도 불린다. 신화에서는 나르치스라는 젊은이가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매료되어 그 물속에 빠져 죽고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년의 삶은 수선화랑 닮은 점이 있다. 세상살이 익숙해지고 자기만의 가치와 신념이 확고해지는 때, 자칫하면 지나친 자기 확신과 자기애로 치우쳐 편협한 생각으로 소통이 힘들어지고 마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소위 꼰대라는 것은 자기만의 경험과 생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가르치려는 오만함에서 비롯됨이 아닐까.




외로움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가치가 누구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아. 그 친구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었겠다.
맞아. 그건 내가 실수했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신념, 지켜야 할 규칙은 각자의 다른 처지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행여나 서로 다른 기대로 충돌이 생겼을 때는 상대의 의도를 묻고 듣고 조율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 수도 있지만 괜한 추측으로 상대의 의도를 곡해하면 불신이라는 이름으로 부지불식간에 스며들고 만다. 험담은 소외와 불신을 만들지만 솔직한 대화라는 앞담화는 신뢰와 성장을 만든다. 궁금하고 불편했던 점을 말하고 왜 그랬는지 묻고 서로의 오해를 풀어나가다 보면 심각한 문제가 별거 아닌 에피소드로 끝나기도 하고 더 좋은 관계로 한 단계 발전하기도 한다. 관계가 무르익고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고 자꾸만 피하고 덮는다면 편협된 자기 생각에 갇혀 관계의 끈이 하나씩 끊기고 불편함과 오해가 쌓여 관계가 소원해지고 만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 물을 주고 볕을 주고 잔가지와 잡초를 뽑고 다듬어야하는 정성어린 과정이다.




추위를 이겨내고

수선화는 추위에 강하다고 한다. 나이 듦은 차가운 고통과 수많은 경험이라는 시간을 거쳐 깊은 이해와 지혜로 무르익어가는 시기다.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건 많은데 신체의 시들어짐은 자꾸만 나를 멈추게 한다. 결국 뭔가를 포기하게 만들고 절제하도록 만든다. 이런 부조화 속에서 하고 싶은 걸 내려놓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버려야 할 때 종종 짜증이나 화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멈추고 살펴야 한다. 내가 든 짐의 무게가 무겁진 않은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거나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않은지, 두루 살피고 속도를 늦추고 평정을 찾아야 한다.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일을 버리고 정리하고 중요한 가치를 선택하다 보면 삶이 한결 가벼워진다. 결국 추위를 이기고 봄이 오듯이, 흔들리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뿌리는 더욱 단단해지듯이 중년의 흔들림은 성숙함이라는 꽃을 이렇게 피워낸다. 안에서 나를 보지 않고 내 밖에서 나를 볼 수 있는 초자아, 메타인지, 반성적 사고가 꼰대탈출의 필수요소인 셈이다.


이 나이는 나도 처음이라

나이 들수록 이면의 것이 보이고 밝고 어두운 것이 동시에 보인다. 세상을 보는 눈의 확대는 자칫 염세주의나 비관론에 빠지게도 하지만 척박한 것들 속에서도 긍정과 밝음을 발견하고 이미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찾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알게 되었다. 삶에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 게 아니라 웃고 또 잊어야 더 밝게 비추어 어둠을 밀어내고 밝은 기운이 성하게 만들어야 함을 깨달았다. 팍팍한 세상살이에도 끊임없이 즐거움과 재미를 찾는 용기와 열정은 오지랖이고 역마살이 아니라 삶의 긍정을 만들어내는 나만의 생존기술이었다.



어디를 볼 것인가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노든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별들과 연한 구름들이 보였다. 노든은 외로웠다. 그래서 하늘을 계속 바라보았다. 오늘도 긴긴밤이 될 것이다.

<긴긴밤> 루리, 75~76쪽

누군가는 어둠만 보고 좌절하지만 누군가는 어둠 끝에 별을 찾아 삶을 비춘다. 수선화를 원 없이 보던 날, 긴긴밤 긴긴 이야기 속에서 중년의 우린 서로의 거울이 되어 생각의 부대낌을 '같이 성장'의 재료로 삼았다. 긍정과 부정의 마음을 동시에 인식하고 균형 잡으려는 노력, 삶의 결핍에 집착하여 어두운 좌절과 불만족으로 내 삶을 이끌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더 나빠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감사함을 발견해서 긍정의 빛으로 끄집어내는 지혜. 우리 삶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다시금 기억해 냈다.




고결하게 함께 가는 길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 리 길도 십리길 된다.



요즘 핫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가난한 젊은 부부를 돕는 이웃들의 정이 빛나는 순간, 천리길도 십리길로 만드는 비법은 같이 걸어감에 있었다. 한번 들어서면 결국 다 걸어야 하는 길, 그 긴 여정도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고비고비 힘든 지점을 좀 더 쉽게 재밌게 갈 수 있었던 힘은 친구와 함께함에서 나온다. 혼자 걷는 길도 운치 있고 좋지만 함께 하는 길은 즐겁고 빠르다는 걸 우린 잘 안다.


너나 나나 다 아프고 힘든 여정에 어쩌면 지나칠 수도 있는 찰나의 꽃길을 볼 수 있게 해 준 그 한마디,


같이 가자!




그 말이 우릴 살렸다. 중년의 봄은 이렇게 유난히도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