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까마귀 반백파티
얘들아. 반백(살)파티할까?
별 볼 일없는 동네였지만 매일 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매일 즐겁고 매일 재밌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오랜 친구, 자칭 '누렁까마귀'들은 국민학교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좌충우돌 10대를 거쳐 20대 격동의 시기를 지나 30대엔 육아 혹은 일을 하면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일구고, 슬슬 아프기 시작했던 40대를 통과해서 이제 막 50살이 되었다. 긴 세월에도 변함없이 이렇게 연락하며 지낼 수 있다는 건 누구 한 사람만의 노력은 아닐 거다. 요즘 같은 세상에 40년 지기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니라 기적에 가깝다. 이런 친구들이 50살이 되면 여행을 한번 가자고 했다. 목적지도 안 정하고 돈도 따로 안 모았지만 무작정 어딘가로 가자고만 얘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말이 기억났고 마침 방학이었던 터라 먼저 근처 갈만한 곳을 알아보고 친구들에게 톡 했다.
얘들아, 우리 이제 모두 50살 됐으니까
반백파티하자.
영종도에 방하나 잡아놨으니까
여기로 모여.
Sexy, Cute, Elegance 컵셉으로 의상도 준비해 와. 패션쇼도 할 거야.
20대 어린 시절, 한복, 드레스 등등 평소엔 밖에서 입지도 못할 옷들을 싸들고 와서 친구집서 밤새 패션쇼를 하며 사진 찍고 놀았었다. 친구들도 그 추억이 떠올랐을까.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즉시 알아듣고 좋다고 만장일치로 오케 사인을 보냈다. 이렇게 해서 반백파티가 성사되었다.
앗. 예약날짜가...
뭔가 빠르게 진행된다 했다. 여행할 때 단박에 일정을 잡고 빠르게 결정되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다. 그 기분에 너무 취해서였을까. 약속한 날 이틀 전, 호텔안내문자를 보고 꺅~~ 하고 소리 지르고 말았다. 실수로 토일 1박을 금토 1박으로 예약한 것이다. 일단, 토일 숙소 예약하나를 더 잡고 이 사실을 여기저기 알린다. 잘못 예약한 숙소는 너무 늦어서 환불도 안되고 대신 갈 사람도 못 구해서 졸지에 나 혼자만 2박 3일 영종도 여행을 하게 될 상황. 다행히 남편과 막내딸이 동행해 주어 첫 일박은 무사히 보냈다. 참으로 어설픈 나라는 사람,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어이없어 헛웃음만 나오고, 덕분에 바닷바람은 원 없이 맞았다.
기다릴게
다음날 아침, 남편과 막내는 다른 일정으로 조식만 먹고 먼저 가고 난 혼자 친구들을 기다린다. 산책 삼아 영종도 근교 산책도 하고 맛집과 카페도 알아본다. 어디나 통창이 있고 어디나 오션뷰라 어딜 가든 좋지만 조금 더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있는 곳을 찾아보고 부실한 신체의 중년여인들 허리보호를 위해 의자까지 꼼꼼히 체크한다. 동선과 거리까지 알아보고 한적한 커피숍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린다. 창문 가득 바다가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어서 와. 친구들~
점심시간쯤, 친구 두 명이 먼저 도착했다. 셋이서 맛나게 밥을 먹고 장을 보고 근처 공원을 산책한다. 처음 와서 잘 모르는 곳이지만 하염없이 걷는다. 걷다보니 바닷가도 나오고 레일바이크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한적한 풍경에 취해 휘적거리다 멋진 카페를 발견한다.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안은 사람들로 꽉 차있고 간신히 자리를 찾아앉고 커피를 주문한다.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다 늦게 오는 두 친구에게도 주소를 찍어 보낸다. 잠시 후, 5명 완전체가 되었다. 그간 밀린 이야기를 하고 시시콜콜 사는 얘기를 나누면서 사부작사부작 시간은 흘러간다.
Now, Showtime
바닷가 오션뷰에 앉아 해물찜 한 상을 먹고 숙소에 도착,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쇼를 준비한다. 주섬주섬 꺼내는 옷들이 재밌다. 강사장은 야심차게 테*에서 산 반짝이 치마를 꺼낸다. 그런데 트렁크에서 꺼내자마자 반짝이가 후드득 떨어지며 흔적을 남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거기에 반짝이 신발 까지 세트로 준비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는 그녀. 역시 패션 간첩 강사장이다. 여의도 서실장은 은갈치 실버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섹시한 자태를 뽐내는가 싶더니 돌연 흰색 양말을 발목까지 끌어올려신는다. (나이가 들면 손발이 시리긴하다) 50대 건강제일 패션센스로 조신한 분위기로로 승화시킨 그녀. ㅁ파주댁 임모씨는 파격적이고 화려한 민소매드레스를 걸쳐입더니 방바닥을 휘젓고 다니며 호령한다. 마지막은 김포사모님, 검정 상의에 검정치마, 검정 썬글라스까지 세트로 세련미를 완성한다. 다들 가져올 만한 옷이 없다고 앓는 소리하더니만 완전 내숭쟁이들이다. 어느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욕심쟁이 언니들이였다. 완벽한 이벤트 컨셉을 위해 싸구려 풍선까지 준비했다. 숫자 50풍선도 불고 'happy birthday' 가렌드도 붙여서 파티 분위기를 업시킨다. 이제 준비완료, 모두 다 차려입고 대기한다. 패션쇼 음악까지 준비하고 이제 큐, 쇼가 시작된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끼리 재밌었던 날, 한 명씩 호명하며 그 작은 방을 휘젓고 다니며 워킹을 하고 옷 갈아입고 또 워킹하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그 모습이 웃겨서 손뼉 치며 깔깔 거리며 또 웃고. 연변처녀(자유여신)상, 섹시조신상, 패션간첩상, 세련청순상 내 맘대로 상이름까지 붙여서 시상식까지 하고 나니 너무 웃어서 지쳐 쓰러질 지경.
우아, 진짜 원 없이 실컷 웃었다.
수다만으론 부족해
50살에 할 얘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너도 나도 폐경에 갱년기에 질병한두개는 기본, 매년 건강검진하면 또 하나씩 늘어난 병자랑만 해도 밤을 셀 지경이고, 다 큰 애들이나 덜 큰 애들이나 왜 그렇게 속을 섞이는지, 아롱이다롱이 자식 얘기만 해도 3박 4일은 다 채울 수도 있다. 거기에 시댁, 친정 얘기, 직장얘기하면 아라비안 나이트가 될 수도 있다. 말은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만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다 그렇지모. 그래 건강이 최고야! 애들 언제 철드냐'로 끝나는 수다는 왠지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뭔가가 더 필요하다.
요즘같은 세상에 심심하면 스마트폰 보면 되지~라고 말 할수도 있다. 유*브에 인*타에 여기저기 이쁘고 멋진 연예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하하 호호 웃음을 주는 재밌고 즐거운 콘텐츠가 차고 넘치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만든 D.I.Y 재미에 비할 수는 없다. B급 감성이 충만한 어설픈 우리들의 무대는 스팽글이 떨어져도 색깔이 촌스러워도 이벤트 풍선 숫자가 거꾸로 찍혔어도 우주 최강이다. 날 것의 즐거움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멋진 장비와 유명 유튜버들이 만들어 낸 재미와는 차원이 다르다. 찐 웃음 그 자체. 얼굴 근육이 다 움직이고 배꼽이 빠지고 눈물이 나는 찐하고 순수한 100% 웃음 그 자체. 이젠 어디서 찾기도 어렵고 만들기도 어려운 꼭꼭 숨겨진 그것이다. 그 순수한 웃음을 나이 50에 소환해냈음에 그저 뿌듯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얘들아,
우리 다음엔 어디 가서 뭐 할까?
#중년
#라라크루14기
#영종도
#여행
#6-1